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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장성택 처형때 썼던 14.5㎜ 고사총으로 우리 GP 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엔군사령부가 3일 일어난 북한군의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안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에 대해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유엔사 정전협정 위반 조사...북, 이틀째 침묵

비무장지대(DMZ) 안 북한군 감시초소(GP) [사진 국방부]

비무장지대(DMZ) 안 북한군 감시초소(GP) [사진 국방부]

유엔사 관계자는 4일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조사팀이 당시 총격을 받은 GP 외벽에서 탄흔과 탄두를 조사했다”고 말했다. 유엔사는 북한군이 14.5㎜ 고사총을 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도 이날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북한군이 고사총을 발사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

항공기나 헬기를 격추하는 용도의 고사총은 4개의 총열을 한데 묶어 4발이 한꺼번에 나간다. 이번 GP 외벽에도 4발의 탄흔과 탄두가 발견됐다. 고사총은 북한이 2013년 1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과 2015년 4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을 때 사용했다.

북한은 총격 사건에 대해 이틀째 침묵하고 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에 전통문을 통해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면서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했고, 이러한 행위에 대해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도 촉구했다”면서도 “아직 회신은 없었다”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북한이 계속 답하지 않을 경우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북한으로부터 답변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는 게 국방부의 고민이다. 지난해 11월 23일 북한군이 서해 창린도에서 해안포를 쏴 9ㆍ19 남북 군사합의를 위반한 데 대해 당시 국방부가 강력히 항의했지만, 북한은 들은 척 만 척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총격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이라 믿는 당국자는 한 명도 없다”고 귀띔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은 민족 공조에 나서지 않는 한 한국과 일절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여전히 우발적 총격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총격 당시 북한군 GP 근무 교대 시간이었고, 짙은 안개가 끼었으며, GP 근처 밭에서 일상적인 영농 활동이 목격됐다”며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각종 기술 정보도 의도적 도발이 아니라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한이 오리발을 내밀거나 한국에 책임을 돌리는 대신 입을 다물고 있자, '도발'이 아니라 '오발'이라는 국방부의 설명이 궁색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침묵이 오히려 의도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라는 점에서다.

한국군 GP에 정확히 탄착된 점 역시 도발의 근거 중 하나다. 비무장지대의 화기가 정조준한 상태로 거치돼 있긴 하지만 점검 과정에서 오발된 것이라면 조준점이 흔들렸을 텐데 한국군 GP에 정확히 탄착됐다는 점에서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비무장지대에서의 사격은 군사 합의 위반인 동시에 심각한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부의 지시나 양해가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며 "북한이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제된 도발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남북 간 총격이 벌어진 곳이 남북이 6.25 전사자 유해를 공동으로 발굴하기로 합의하는 등 일종의 '평화'의 상징인 화살머리고지가 있는 강원도 철원이라는 점도 정치적 계산이 깔렸을 수 있다는 근거로 거론된다. 북한이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와 한·미 공군과 해병대가 각각 실시한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인 ‘메아리’는 이날 “남조선(한국)이 북침 전쟁준비를 위한 무력 증강과 군사적 대결 책동에 광분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총격 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용수·이철재·김다영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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