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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태훈의 미래를 묻다

당신의 데이터는 누구를 위해 쓰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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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데이터 주권주의 ‘마이데이터(MyData)’

김태훈 레이니스트 대표

김태훈 레이니스트 대표

삶은 데이터 만들기의 연속이다. 지하철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을 때,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날씨와 각종 정보를 검색할 때, 공공 마스크를 살 때, 업무 보고서를 만들려고 인터넷을 뒤질 때, 점심값을 신용카드로 계산할 때, 원룸 월세를 이체할 때, 멋진 사진을 SNS에 올릴 때, 이걸 살까 말까 온라인 장터를 누빌 때, 모두 데이터가 생긴다. 요즘은 사실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데이터가 된다. 이 모든 게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당신이 만든 데이터다.

개인의 지출·금융거래 데이터 #금융사가 보유하고 이익에 활용 #‘나를 위해 쓰라’는 소비자 주장이 #핀테크와 금융혁신 싹을 틔운다

그런데 이 데이터는 누가 이용할까. 당신이 이용하는 경우는 아마 찔끔 일 것이다. 월세 이체를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려 계좌를 조회하거나, 신용카드 고지서를 보고 화들짝 놀라 뭘 이렇게 많이 썼는지 사용 내역을 들여다보거나, 예전에 올렸던 SNS를 보고 감상에 젖는 정도가 보통이다. 사실 이건 ‘이용’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저 ‘확인’이다.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데이터

당신이 생성한 데이터를 이용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 누구나 그걸 안다. ‘…제공한 모든 정보는…하기 목적 외 용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개인정보 수집·수집 이용 동의서’에 수도 없이 체크 표를 했을 테니까. 그렇다. 당신의 데이터는 SNS·검색포털·통신·은행·신용카드·온라인마켓 업체 등이 이용한다. 데이터를 1차로 수집·보관하는 업체들이다.

이들은 당당하게 동의서를 내밀며 당신의 데이터를 이용할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면 당신은 대부분 OK 했다. 잠깐. 좀 이상하지 않은가. 당신은 왜 동의했나. 단지 ‘내 데이터를 절대 외부로 유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상대를 믿어서다. 가만. 뭔가 빠진 것 같다. 상대방은 당신의 데이터를 이용해 이익을 보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아무 대가 없이 “그러세요”했다. 어딘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대부분은 ‘그게 불공평하다’는 생각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당신의 활동에서 비롯된 데이터지만,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애매했으니까. 포털·통신·은행·신용카드사는 당신의 데이터를 수집해 보관하는 비용을 들였다. 그래서 당신이 생성했고, 심지어 당신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데이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했다. 참 묘하다. 내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야말로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데이터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흐름이 등장했다. ‘내 데이터는 수집·보관한 기업의 이익보다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마이데이터(MyData)’다. 시민사회에서의 ‘데이터 주권주의’다.

마이데이터에서 요구하는 대표적인 권리가 ‘데이터 이동권’이다. 내 데이터를 수집·보관한 업체에 요구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권리다. 내가 내려받을 수도 있고, 제3의 서비스 업체로 이동할 수도 있다. 옮기는 이유가 단순히 ‘데이터 주권의 발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데이터 이동권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개인의 권리다.

데이터를 옮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신의 금융 데이터를 생각해 보자. 신용카드는 최소 서너 개다. 은행 급여 통장이 있고, 개인연금도 들었다. 금리를 더 얹어준다는 소리에 지난해 인터넷 전문은행에 적금을 들었다. 요즘은 주식시장에서 ‘동학개미’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데이터는 은행과 보험·증권·신용카드 회사에 흩어져 있다. 이걸 그대로 놔두면? 지금과 다를 바 없다. ‘뭉쳐야 산다’를 외치며 데이터를 이동해 한데 모으면? 개인의 소비·지출과 재무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공지능(AI)은 이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 당신의 지출을 코칭하고, 재무 설계를 해주고, 투자 추천을 하며, 제일 이익이 큰 신용카드를 골라줄 수 있다. 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인 ‘프라이빗 뱅킹(PB)’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서비스다. 실제 이런 서비스들이 이뤄지고 있다. 개인의 금융 데이터를 모아 종합 재무관리를 해주는 미국의 ‘민트(Mint)’는 가입자가 1억3000만 명에 이른다.

금융에 통신·건강·검색·이동, 에너지·세금 등 다른 정보를 더하면? 내비게이션이 모은 당신의 운전습관 데이터를 활용해 자동차 보험료를 깎아주는 서비스가 이미 나와 있다. 통신료를 연체한 적이 없고, 가스·전기요금도 꼬박꼬박 내 온 당신이라면, 신용점수가 올라 아마 은행 대출 금리는 더 떨어질 것이다. 이렇듯 마이데이터의 융합은 데이터 주인의 삶을 유익하게 해줄 수 있다.

데이터 패권의 지각 변동 가능성

마이데이터의 핵심은 ‘개인의 이익’이다. 데이터를 옮기게 만드는 동력이 바로 더 큰 이익을 주는 새로운 서비스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은 소비·재테크·통신·교통·건강 등등 수많은 디지털 데이터를 가장 잘 확보한 나라다. 민간뿐 아니라 공공 영역도 수많은 개인 데이터를 수집해 관리하고 있다. 융합해 새 서비스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마이데이터와 데이터 이동권은 기존의 데이터 패권을 흔들 수도 있다. 누가 뭐래도 지금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가진 곳은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다. 한국은 그래도 네이버·카카오 등이 버텨주고 있지만, FAANG에게 데이터를 탈탈 털리다시피 한 나라들이 많다. 방어책은 마이데이터와 데이터 이동권이다. 그 어떤 나라도 애국심에 기대어 데이터 이동을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제3의 서비스 업체가 개인의 데이터를 넘겨 받아 명확하게 더 큰 이익을 준다면, 개인은 데이터 이동권을 발휘해 FAANG이 갖고 있던 데이터를 옮길 것이다. 결과는? 데이터 독점의 억제다.

국내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날 전기는 마련됐다. 이른바 ‘데이터 3법’ 개정안이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해 데이터 이동이 가능해졌다. 이젠 본격적인 마이데이터 경쟁이다. 승자는 개인에게 더 큰 이익을 제공하는 쪽이다. 데이터는 그 방향으로 끊임없이 흐른다. 그러다가도 더 매력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나타나면 흐름의 방향은 바뀐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데이터 주권자의 권익은 높아지는 것이 마이데이터의 본모습이다.

당신에겐 데이터 열람권·조회권이 있다

마이데이터가 주창하는 권리는 데이터 이동권만이 아니다. ‘데이터 열람권’도 있다. 당신은 네이버·페이스북과 이동통신사 등이 당신과 관련한 데이터를 얼마나 가졌는지 아는가. 열람권은 그걸 다 보여달라고 할 권리다. 데이터 공룡들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그래도 필요하다.

데이터 이동이 잦아지면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잘못됐는지를 알려면 데이터 열람권이 필수다.

열람권과 바로 연결되는 게 ‘잊힐 권리’라고도 하는 데이터 삭제권이다. 놔두기에 불편한 데이터를 지우는 것이다. 데이터 이동을 하면서 유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종전의 데이터 저장소에는 삭제를 요청할 수도 있다. 유럽연합(EU)은 2018년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시행하면서 데이터 열람권과 삭제권 등을 보장했다.

‘데이터 처리 내용 조회권’이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검색 사이트 한쪽에 광고가 떴을 때, 도대체 당신의 어떤 과거 데이터를 활용해 그런 광고를 내보낸 것인지 확인하는 권한이다. 별 관심 없는 광고가 자꾸 떠서 짜증이 나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실수로 클릭한 뒤 반복 노출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조회권에는 ‘데이터 처리(프로파일링) 거부권’이 뒤따른다. 특정 데이터, 또는 자신의 데이터 전부를 자동 분석과 광고 및 각종 추천에 활용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권리다.

모든 권리가 그렇듯, 권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권리를 100%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EU도 공익적 목적 등을 위해서는 데이터 삭제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권리 보호가 지나친 규제가 돼 4차산업 발전을 가로막음으로써 오히려 데이터 주권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결국 개인에게 마이데이터와 관련한 권리를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지는 국가가 정해야 할 문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협의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김태훈 대표

한국핀테크산업협회 부회장이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핀테크 업체 ‘레이니스트’를 창업했다. 금융 혁신에 이바지한 공로로 지난해 금융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태훈 레이니스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