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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빠저든다, 수묵화 닮은 추상화 ... 샌정 개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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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미술관]

[OCI미술관]

서울 조계사 옆 좁다란 골목 안에 미술관이 있다.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이다. 2010년에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기획전시를 선보여 왔지만, 아직도 이곳을 아는 사람들보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이곳 전시를 한 번도 챙겨보지 못했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나들이를 추천하고 싶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작업하는 화가 샌정(57)의 대규모 개인전 'VERY ART'가 그곳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의 본질에 천착해온 작가의 매력적인 추상화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지난 3월 18일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개막한 이 전시는 아쉽게도 오는 16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OCI미술관 'VERY ART' # 38점 망라한 대규모 전시 #"회화 본질에 천착한 작가"

텐션(Tension)으로 승부한다 

샌정, Untitled, 2020, oil on canvas, 170X190cm. [OCI미슐관]

샌정, Untitled, 2020, oil on canvas, 170X190cm. [OCI미슐관]

샌정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OCI미술관 전시장 전경. [OCI미술관]

샌정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OCI미술관 전시장 전경. [OCI미술관]

샌정의 그림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온통 여백인 것 같기도, 또 한 걸음 떨어져 보면 그득 차 있는 것 같다.

샌정은 사람들이 틀 지우고 싶어하는 그 모든 것의 경계를 무시하고 그 위에서 팽팽하게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어린아이의 손길이 스쳐 간 것처럼 화면에 자유롭게 그어진 몇 가닥의 색과 선이 시선을 붙잡는다. 선은 서로 닿을 듯하면서 비껴가고, 어떤 것은 네모가 되었다가, 또 어떤 것은 바람에 휩쓸린 것처럼 화면 안에서 흩어진다. 뚜렷한 형태는 없는데 화면은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묘한 속도감과 움직임, 균형감이 화면에 차 있다.

아득하고, 또 아득한  

이 매력 때문일까. 샌정은 한국과 벨기에·파리·독일 등지에서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다. 2017년 벨기에 갤러리 트라이앵글 블뤼에서 전시했고, 2018년엔 독일 쾰른 초이앤라거, 또 지난해 서울 초이앤라거에서 전시를 열고, 올해 독일 하겐의 오스트하우스 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최근작 38점을 모아 공개하는 자리로, OCI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1~3층 공간을 모두 할애했다.

마치 흐린 하늘처럼 회색 공기의 느낌이 가득찬 화면엔 밝은 색채의 기하학적 이미지가 스치는 듯하다. 대형 화폭들 위에 '완료형'의 엄정한 선은 없다. "완결되기 보다는 어디론가 향해가는 지점에 있는 듯한" 선들이다. 김소라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샌정은 원시적이라 할 정도로 형상의 틀에서 벗어나 내면에서 무르익은 사유의 축적물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맑고 투명한 색감 

샌정, 'Untitiled, 2019, Oil on canvas, 130x162cm. [OCI미술관]

샌정, 'Untitiled, 2019, Oil on canvas, 130x162cm. [OCI미술관]

눈길을 더욱 사로잡는 것은 화면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색감이다. 바탕은 무채색이지만 어둡지 않고 오히려 수묵화처럼 투명해 보인다. 여기에 보태지는 선들의 색채도 맑다. 모든 것이 부유하는 형태의 추상화이지만, 친근하고 정겨워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25년 넘게 타국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의 화폭 위엔 수묵화와 오방색 등 한국적인 것들이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는 듯하다.

1963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난 샌정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의 쿤스트 아카데미와 영국 런던의 첼시 칼리지 아트 앤 디자인에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현재 뒤셀도르프를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노스탤지어, 멜랑콜리아  

샌정, Untitled, oil on canvas, 50X40cm. [사진 OCI미술관]

샌정, Untitled, oil on canvas, 50X40cm. [사진 OCI미술관]

김 수석 큐레이터는 "샌정의 회화는 얼핏 모노 톤의 화면으로 균질하게 정돈된 듯하다"면서 "하지만 그의 작품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물감의 두께감, 선의 갈라짐, 색의 충돌 등 회화적 요소로 인해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세하지만 분명한 긴장과 균열은 그의 작품 속 대기감에 파문을 일으키면서도 어느 쪽으로도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다"면서 "그 미묘함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16일까지.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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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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