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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 曰] 4·15 에필로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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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4호 30면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4·15 총선이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사람들은 언제 선거가 있었냐는 듯 떠들썩했던 정치판의 일을 벌써 다 잊어버리고 일상의 삶으로 복귀한 모습이다. 여당의 압승보다 야당의 참패로 기록되는 4·15 총선은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 구호가 얼마나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 구호 심판한 총선 #거대 여당, 42% 보수 표와 협치 펼쳐야

‘정권 심판’이란 담론만을 내세운 야당에 맞선 여당은 코로나 사태의 회복을 바라는 민심의 안정 희구 성향을 정확하게 조준했다. ‘정권 심판’ 프레임에 맞서 국정 안정에 발목 잡는 ‘야당 심판’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요란한 구시대적 슬로건 대신 ‘K 방역으로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자’며 조용하게 민심을 파고드는 로우키 선거운동이 돋보였다. 논리나 이성을 앞세우지 않고 감성과 공감에 좌우하는 한국 정치판의 특성을 제대로 짚은 결과였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선거 구호를 ‘프레임’ 전략의 개념으로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선거 때마다 번번히 공화당의 프레임에 말려들어 패배했던 민주당의 실수도 문제였지만 이번처럼 아예 ‘코로나는 생각하지 마’식으로 일관하며 새로운 프레임을 제때 내놓지 못했던 미래통합당의 구태의연한 사고 역시 패인으로 작용했다.

이제 보수는 더 이상 다수가 아니다. ‘샤이 보수’의 궐기를 외치며 역량을 총결집했음에도 보수세력은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숨은 표 10%는 없었고, 연단 아래 ‘아스팔트 보수’의 극단적인 목소리는 공허했다.

하지만 180석의 슈퍼 여당의 탄생도 민심이 일방적이었다고 해석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전국 253개 지역구 투표에서 유권자의 49.9%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지만, 미래통합당 후보를 찍은 표도 41.5%에 달했다. 비례투표 결과도 미래한국당(33.84%)이 더불어시민당(33.35%)을 앞질렀다. 승자 독식의 선거제도로 인해 의석 비(60: 34.3)가 한쪽으로 쏠렸지만, 실제 보수 야당 지지세력은 7: 6 정도로 이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날뛸 필요도, “니들끼리 잘해봐라.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며 냉소나 한탄할 일도 아니다.

보수(3): 진보(3): 중도(4)의 정치 지형 구도에서 절반 이상의 중도층 스윙보트들이 진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 당시 제3당인 국민의당 지역구 지지자(15%) 이상의 표가 이번엔 여당으로 기울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결과는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민심의 향배가 유동적으로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거대 여당이 출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153석, 친박연대 14석, 친박무소속연대 12석 등 보수 여당 계열의 의석이 179석을 휩쓴 적이 있었다. 승리의 자만과 오만이 이어지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정권이 흔들거리는 위기를 겪었다. 17대 총선에서도 탄핵 반대 바람에 힘입어 152석의 의석을 휩쓴 열린우리당의 과욕이 참사를 빚었다. ‘탄돌이’라 불리는 108명 초선의원 그룹 중심의 강경한 정국 운영으로 민심이 이탈하면서 18대에서 열린우리당의 후신 통합민주당은 81석의 참패를 기록했다.

마치 그때의 데자뷔를 보는 듯한 느낌은 무엇일까. ‘양당 아닌 1.5당 체제로 전락했다’ ‘아나운서나 법조인 아니면 의원감이 그리 없나’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21대 국회에서 협치의 정치문화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압승을 거둔 여당에 대화와 양보를, 대패를 당한 야당에 변화와 승복의 자세를 주문해 본다.

영원한 승자란 없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니 ….

홍병기 중앙CEO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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