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지음, 이영래 옮김/라이팅하우스
찬바람 불면 고가(高價)인데도 자식들에게 사줘야 해서 부모들의 원성을 사는 '등골브레이커'의 원조.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성장. 포춘지 선정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 2019년 UN지구환경대상 수상.
미국 3대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 #"환경 위한 사업일뿐, 우리 옷 사지 말라" #회사 가치 오르고 금융위기에도 성장 #"제품 입으면 경영철학 동참 자부심"
미국의 3대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의 간추려본 특징들이다. 선량하게 기업을 운영하는데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이런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겉으로만 착한 척, 속으로는 냉혹한 회사인 건 아닐까.
남미의 최남단 지역 명칭을 회사 이름으로 삼은 파타고니아는 1950년대 중반 출발했다. 설립자인 이본 쉬나드(82)가 2005년 사내 교육 매뉴얼로 쓴 게 이 책이다. 하지만 곧 10개 국어로 번역되고, 하버드대의 경영학 연구 자료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기업이면서 어떻게 환경기업이기도 할 수 있는지, 쉬나드의 경영철학과 회사 성장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쉬나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 15세부터 암벽등반을 한 그는 당시 선우중옥(80)씨 등과 함께 인수봉에 두 개의 루트를 완성했다. 이후 한국의 등반가들은 그의 이름 영문 그대로의 발음을 따 이 루트를 취나드(Chouinard)A, 취나드B로 부른다. 이때 등반 장비를 한국의 대장간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책에서 쉬나드는 파타고니아의 '근원'은 대장간이라고 밝힌다.
이 암벽등반이 친환경 장비를 만들어 환경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쉬나드는 1960년대, 요세미티 엘캐피탄 곳곳의 바위가 자신이 직접 만든 피톤(안전 확보를 위해 바위틈에 박는 금속)으로 패인 현실을 깨닫고 절망했노라고 밝힌다. 더이상 피톤을 생산하지 않고 자연에 해를 가하지 않은 장비를 사용하는 ‘클린 클라이밍’으로 전환하게 됐다.
1988년, 직원들이 두통을 호소했다. 원단에 섞인 유독물질이 원인이었다. '피톤'에 이은 충격이었다. 1996년부터 모든 제품에 유기농 면을 쓰고 있는 이유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때 파타고니아는 뉴욕타임스에 이런 광고 카피를 게재했다. ‘이 재킷을 사지 마시오.’ 환경을 보호하려면 자사 제품의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자가당착적인 상황을 오히려 마케팅에 활용한 것이다. 사람들은 되레 재킷을 더 사갔다고 한다. 사소한 부분까지 수선해주고 가능하면 고객의 직접 수선을 유도하되 품질은 보증해주는 ‘철두철미(ironclad) 보증제’와 ‘원 웨어(worn wear) 정책' 등은 환경을 지키려면 오래 입을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지독한 땀으로 겨드랑이 부분이 해진 셔츠를 수선 맡겼더니 직원이 전화해 “보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는 전설적인 얘기도 떠돈다.
파타고니아는 매장도 친환경이다. 국내 도봉산직영점은 마감재의 80%가 친환경·재활용 소재다. 양양점은 기존 창고를 그대로 활용했고 점주는 현역 서퍼다. 파타고니아는 2014년부터 공정무역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미연방법원으로부터 기각됐지만, 미국 서부 스네이크 강의 연어가 돌아올 수 있도록 댐 4개를 철거해달라는 청원 서명을 이끌어 7만5000명의 동참을 끌어내기도 했다.
등반가이자, 낚시꾼·서퍼·카약커·대장장이인 쉬나드는 자신을 사업가라고 하지 않는다. "클라이밍은 반자본주의적이지만 비즈니스는 자본주의적"(산악문학 작가 심산)이라는 통념을 거부한다. 오히려 "사업은 환경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매출의 1%나 수익의 10% 중 많은 쪽을 환경단체에 ‘지구세(earth tax)’로 낸다.
이런 경영철학이 오히려 제품 가치를 높인다. 실제로 2005년 일본 이베이에서 1980년에 생산된 재킷이 4000달러(약 490만원)에 거래된 적이 있다. "파타고니아를 입는다는 것은 경영철학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함께 얻는 것”이라는 파타고니아 브랜드 클라이머 전미현(40)씨의 발언이 반드시 홍보성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파타고니아(등반 장비를 만드는 쉬나드 이큅먼트)의 초창기 카탈로그에는 ‘5월부터 11월까지는 빠른 배송을 기대하지 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일도 중요하지만, 등반이나 서핑을 하러 간다는 얘기다. 책 제목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은 직원들에게 언제든지 놀다 오라는 말이다. 일과 놀이의 구분을 없애는 경영철학이다. 400페이지 넘는 책이지만, 하루에 다 읽었다. 종이가 재생 종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