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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코로나로 효과 본 원격의료, 모니터링부터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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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한순간에 많은 걸 바꿔놓았다. 근무·교육·쇼핑·전시·공연·스포츠 등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비대면·원격 활동이 훅 들어왔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 일본·중국, 동남아 등 많은 나라에서 경증 환자나 증상이 의심스러운 사람이 의사를 직접 찾아가지 않는 원격의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국가별 방역 성공 여부를 떠나 원격의료가 유용하게 쓰이는 것만은 틀림없다.

10년째 규제에 묶인 원격의료 

한국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는다. 의료인이 전화·영상·채팅 등으로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며 상담·관리해 주는 ‘원격모니터링’과 질병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원격진료’가 모두 막혔다. 2010년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무산됐다. 코로나 19가 터지자 보건복지부는 2월 말부터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 또는 처방을 허용했다. 일부 생활치료센터에선 원격모니터링이 허용돼 의료진이 환자의 스마트폰과 앱을 활용해 증상을 살피며 코로나에 대응했다. 고도의 기술은 아니지만, 원격의료에서 소기의 효과와 가능성을 엿본 사례다.

현실은 포털서 의료상담 하는데 #의협 “동네병원 다 망한다” 반대 #만성질환자 등 단계적으로 허용 #한국의 ‘넥스트 반도체’로 키워야

원격의료 가로막는 관련 규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원격의료 가로막는 관련 규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개업의가 주축인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우수한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려 동네 의원이 줄줄이 문을 닫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환자를 직접 만져봐야 알 수 있는 합병증을 놓쳐 오진이 늘어날 것도 우려한다. 이들은 ‘의료를 산업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봐선 안 된다’고 비판한다. 중요한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는 단계적으로라도 허용될 필요가 있다. 이미 규제는 현실에 뒤처졌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손안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온라인상에선 사실상의 원격 의료상담이 활발하다. 네이버 지식인(iN)의 ‘건강’ 코너에는 고화질의 사진과 함께 ‘손톱이 이렇게 갈라지는데 피부병인가요’, ‘입 안에 하얀 구멍이 생겼는데 병원에 가야 할까요’ 등 수많은 질문이 올라오고 전문의가 사진과 설명을 토대로 답을 달아준다.

산업적 가치가 큰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이 가진 최고 수준의 ICT 기술과 의료 경쟁력을 합친 원격의료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이자 ‘넥스트 반도체’가 될 수 있는 분야다. 수많은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은 헬스케어 시스템과 기기들로 인정을 받아 수출에 성공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선 규제 탓에 사업을 접고 해외로 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최고 기술 갖고 한국만 소외되나

원격의료는 고령화 시대에 개인이 주도적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데 유용하다. 통증이 심하거나 접종, 발치 등 시술이 필요한 환자는 병원을 찾게 돼 있다. 하지만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자가 굳이 같은 약을 타러 매번 병원을 방문할 이유가 없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산간 도서 지역에 사는 고령자는 아파도 병원 방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스마트폰이나 지역 복지센터 등에 설치된 원격의료 설비로 더 큰 병을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다. 원격의료에 필요한 클라우드 서버와 고가의 인프라는 국가에서 지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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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까지는 할 수 있는’ 규제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규제는 다르다. 우선 원격의료 중 전화·화상상담을 포함한 원격모니터링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하면서 장점은 누리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대형병원이 단순한 만성질환 환자나 경증 환자를 원격진료하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개인병원이 걱정하는 불이익을 차단할 수 있다. 의료계야말로 전문 지식을 가진 의료인이 주축이 돼 창업하고, 기업과 병원을 연결하는 중심 역할을 하며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고령화 추세 속에 원격의료는 세계 의료시장의 필수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때 한국이 의료기기와 시스템을 수입에만 의존할지 이번 코로나 국면 대응처럼 다른 국가의 모범이자 표준이 될지는 원격의료의 출발점인 규제 개선에 달렸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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