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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미스터 트롯 방식이면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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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중국에서 사회주의 하는 것과 한국에서 자본주의 하는 건 세계사의 양대 불가사의란 우스갯말이 있다. 아주 작은 이익에도 물러설 줄 모르는 중국 사람들과 달리 우린 형평, 공정에 대한 욕구와 기대가 남다르단 뜻이 담겼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민족이다. 코로나가 불평등과 양극화를 드러내고 위기감을 키우자 권력은 왼쪽으로 밀려갔다. 큰 정부와 좌파 정권이 총선 민의다.

역사적 4연패에도 당권 암투뿐 #리더십 붕괴된 국민밉상 야당 #계급장 뗀 경쟁으로 얼굴 찾아라

야당이 내심 믿었던 건 700만 자영업자의 분노였다. 이걸 눈덩이처럼 불리기 위해 ‘경제에 무능하고 오만한 정권을 심판하자’고 경제 실정론을 외쳤다. 삶의 곡절이 큰 3040 세대에게 ‘논리가 없다’고 퍼부은 배경도 개발연대 발상이 앞섰기 때문이다. 결과는? 영 딴판이었다. ‘죽겠다’는 자영업자마저 야당을 경제 코로나 해결사로 보지 않았다. 무반성에 밉상 야당으로 찍혀서 졌다. 하지만 ‘야당=부자당’이란 등식이 더 큰 패인이다.

수치로 나와 있다. 투표자 대상의 ‘총선 사후조사’를 보면 통합당 비호감도는 70%를 넘는다. 60% 수준이던 한국당 기록을 경신했다. 이유는 주로 ‘서민을 위한 노력 태만’이나 ‘민생·경제능력 부족’이다. 꽤 많은 사람이 ‘당의 대표 인물이 마음에 안 들어서’를 꼽았지만 그리 큰 숫자가 아니었다. 꼰대들이 모여 꼰대 같은 얘기만 하는 웰빙 기득권 정당이란 이미지에 갇혔다.

‘김종인 비대위’ 아이디어엔 그런 고민이 담겨 있다. 2년 뒤 대선이라고 뭐가 달라지겠나. 확장성이 관건이다. 기업 오너에겐 3심(心)이 있다고들 한다. 대부분 욕심 많고, 의심도 많은데 무엇보다 변심이 많은 게 공통점이란 것이다. 영원히 총애를 받는 2인자란 없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나라의 오너라고 다를 게 없다. 변심한 국민이 자유와 경쟁보다 협력과 분배를 요구하면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김종인 비대위’여야만 하는 건 아니다. ‘40대 대통령을 말하며 80대 비대위원장’이란 비판엔 나름의 일리가 있다. 문제는 뭘 좀 바꿔 보자는 쪽을 놓고 벌어지는 ‘통합당스러움’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참패를 당하고도 당권 암투로 달려갔다. 이미 평가가 끝난 사람들끼리 벌이는 딱하고 한심한 자리다툼이다. 같은 방식으로 4연패했는데 단 한 번도 반성이 없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야당이다.

원래 야당은 이럴 때 거꾸로 갔다. 반세기 전 김영삼, 김대중이 주창한 파격의 40대 기수론은 국민과 함께했기에 기성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40대 경제통’을 찍어서 키울 순 없다. 후계자는 북한이나 만든다. 나이가 많든 적든, 경제를 알든 모르든 모두가 총출동해 진보 세력과 맞설 방안을 놓고 미스터 트롯 방식으로 겨루면 된다. 각자의 철학과 비전을 쏟아내고 완전국민참여경선제로 뽑는 ‘슈스케 토너먼트’ 말이다. 대선까진 시간도 많다.

언제 어디서나 먹혀드는 법칙과 리더십이 있을 리 없다. 상황이 자꾸 바뀌어서다. 통하는 정치 리더십이란 것도 그때그때 다르다. 아버지 박정희 시대의 수직적 리더십을 다시 들고나온 딸 대통령이 고전 끝에 임기를 다하지 못한 것도 시대와 맞섰기 때문이다. 영국을 구한 대처 전 총리는 지나치게 비대한 공공부문과 싸웠다. 30년 뒤 캐머런은 반대로 달렸다. “부자와 빈자의 두 나라가 된 영국을 막겠다”는 온정적 보수주의로 13년 만에 보수당 정권을 되찾았다.

정치공학만으론 보수를 재건할 수 없고 대안 세력, 수권 세력으로 거듭날 수도 없다. 자신들은 문재인 정부가 잘한다는 사람을 찾기 어렵고, 실정뿐이라는데, 선거에선 왜 야당이 심판받고 생사의 기로에 섰는지 답을 찾아야 한다. 보수는 앞으로 지역과 이념, 세대와 계층을 어떻게 포용하고 조화롭게 묶어낼지 길을 열어야 한다.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미래도, 통합도 없는 미래통합당을 부수고 국민 앞에 모두가 노래 대결을 하면 산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