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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시장을 바꾸는 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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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독일 자동차 전문매체 ‘아우토모빌보헤’(Automobilwoche)는 지난 25일 인터넷판에서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가 테슬라가 만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의 우월성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입수한 폴크스바겐 내부 문건에 따르면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 CEO는 최근 사내 회의에서 “테슬라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마치 신경망처럼 정보를 수집해 사용자에게 최선의 주행 경험을 제공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우리를 비롯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폴크스바겐은 말 그대로 ‘완성차 공룡’이다. 수퍼카 부가티·람보르기니에서 포르쉐·아우디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스코다·세아트 같은 대중 브랜드까지 소유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완벽한 포트폴리오’라 불릴 정도로 약점 없는 완성차 1위로 군림해 왔다.

폴크스바겐 수장(首長)이 테슬라의 우월성을 인정한 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디스 CEO는 지난해 “2025년까지 연간 15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해 전기차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지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룹 최초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통해 ID.3이라는 순수전기차를 출시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전기차 분야의 ‘퍼스트 무버’지만 늘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지 못했다. “2020년까지 완전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던 일론 머스크의 주장은 공언(空言)이 됐다. ‘3000만 원대 전기차가 될 것’이라며 예약금을 받았던 ‘모델3’의 실제 가격은 50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듯’ 버텨온 지난 10년이 테슬라만의 내공을 쌓아준 것도 사실이다. 자율주행차 사고 이후 모빌아이와 결별한 테슬라는 2017년 자율주행 신경망 칩(뉴럴넷) 독자 개발을 선언했고 지난해 결과물을 내놨다. 디스 CEO가 감탄했다는, HW3.0이라 불리는 자율주행 시스템이다.

‘휴대전화 공룡’이던 노키아는 애플 아이폰이 등장한 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사기꾼 같던 테슬라는 시장을 바꿨고, ‘완성차 공룡’은 멸종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자동차는 어디쯤 와 있을까. 어쩌면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