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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미얀마 돈 안받아요" 태국 돈 내라는 미얀마 상점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예순에 떠나는 배낭여행(18)

18일 차, 태국 치앙라이에서 미얀마 따치레익으로 이동
호텔에서 제공하는 빵과 바나나와 커피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미얀마로 가기 위해 8시경 매사이로 출발했다. 미얀마로 가기로 했지만, 지도도 없고 관광 안내책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냥 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간다는 식이다. 아무 연구도 없이 인레호수와 바간과 만달레이만 관광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이다.

1시간 20분을 달려 매사이 시가지에 도착하자 도로변에 상점이 즐비하다. 국경도시라는 분위기가 풍긴다. 썽태우 기사와 헤어지면서 우리가 국경 심사대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돌아와서 당신과 함께 치앙라이로 돌아가야 하니까 1시간만 여기서 기다리다가 아무 연락이 없으면 가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한다.

태국 국경 심사 게이트에 가서 여권을 제출하자 지난번 입국할 때 출국신고서를 작성한 것을 여권에 붙여 놓아서 그런지 아무 문제 없다며 도장을 쾅쾅 찍어준다.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그것도 한국말을 섞어가며 우호적으로 통과시켜 주어 기분이 좋았다. 태국 심사대를 통과한 후 조그마한 매사이 강에 놓인 다리를 걸어서 강 중앙을 지나 미얀마 검문소에 가서 한국에서 왔다니까 반갑게 맞아준다. 여기서도 아무 문제 없이 도장을 찍어준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을 건너가는 교각 부근 모습. [사진 조남대]

태국과 미얀마 국경을 건너가는 교각 부근 모습. [사진 조남대]

미얀마 국경 검문소 입구 전경.

미얀마 국경 검문소 입구 전경.

쉽게 국경을 넘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 가는데 미얀마 경찰 검문소에서 우리를 부른다. 사무실로 들어갔더니 여권을 보자고 한다. 한국 여권을 보더니만 우호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가라고 한다. “상당히 어렵지 않겠나”,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고 국경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움도 없이 건너가자 안심이 된다.

양국 국경을 통과하는데 40분 정도 걸렸다. 국경 입구 유심을 판매하는 상점에 들어가 갈아 끼우면서 주인에게 여기에서 인레호수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느냐고 물으니 갈 수 없다고 한다. 총 쏘는 흉내를 내면서 위험할 뿐 아니라 오직 비행기로만 가능하단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어렵게 국경을 넘어왔는데 버스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황당하다.

태국서 걸어서 미얀마로  

미얀마 국경 부근에 있는 유심가게에서 문의하고 있는 일행.

미얀마 국경 부근에 있는 유심가게에서 문의하고 있는 일행.

국경부근에 있는 미얀마 상점가.

국경부근에 있는 미얀마 상점가.

국경 입구 유심 가게 앞에 서 있는데 행색이 남루한 동자승들이 시주하라고 한다. 신발도 신지 않고 남루한 복장의 스님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는 것을 보니 스님에 대해 전혀 다른 인식을 갖게 하는 한편 인접국인 태국에 비해 경제 사정이 훨씬 더 열악하다는 것이 실감 난다. 장애인과 구걸하는 걸인도 많이 보이고 썽태우를 운전하는 기사도 얼굴이 거의 흑인과 다름없을 정도로 검고 날카로운 인상을 하고 있다. 다리 하나를 건너온 것뿐인데 인종과 모든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유심 가게 주인이 버스로 인레호수를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 버스터미널에 가서 확인해 보기 위해 썽태우를 타고 찾아갔는데 10여 분 후에 도착한 곳은 겨우 버스가 한 대 정차해 있는 길거리다. 우리는 널찍하게 만들어진 터미널에 여러 곳으로 떠나는 버스 노선이 많은 터미널을 상상했는데 전혀 다른 형편이다. 다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버스 노선이 있더라도 제일 가까운 인레호수까지 가려면 구글 지도에서 찾아보니 15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또 가는 도로가 산악지역이다.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할 때 버스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되어 항공편으로 가기 위해 가까이 있는 비행장을 찾아갔다.

썽태우를 타고 10여 분 정도 가서 도착한 비행장은 시골의 작고 허름한 공항이다. 취항하는 항공사도 4개 항공사밖에 없는 데다 비행편 수도 하루에 몇 편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인레호수로 가는 비행기는 없고 내일 오후 4시에 있단다. 돌아와 우리 일행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만 광표 씨는 자기는 미얀마로 가지 않고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한다. 양 팀장도 미얀마가 불안하고 구경할 것이 없다며 되돌아가자고 한다.

나는 처음부터 동남아 4개국을 여행하기로 하고 출발한 일정인 데다, 비행기로 가면 육로로 갈 때의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다며 설득했다. 미얀마로 가면 태국도 제대로 관광할 수 없다며 미얀마는 다음에 가고 이번에는 태국이라도 충실히 관광하자고 한다. 미얀마가 불안하다고 하니 많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뭐 사정이 바뀌면 애초의 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하면서 되돌아가겠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

미얀마 국경마을에서 운행하는 썽태우.

미얀마 국경마을에서 운행하는 썽태우.

미얀마 국경마을 가게에 진열된 과일.

미얀마 국경마을 가게에 진열된 과일.

지금까지 4명이 함께 다니다가 경희와 둘이서만 위험하다고 하는 미얀마를 관광한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되돌아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33년간을 공무원으로 근무한 사람으로서 가다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해결하고 떳떳하게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해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없지 않다. 할 수 없어 우리 둘만 250달러를 주고 내일 4시에 인레호수가 있는 헤호로 출발하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우리는 다시 썽태우를 타고 중심지인 국경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경희는 썽태우를 타고 오는 동안 아무 말 없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다. 가만히 경희 손을 잡았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묵묵히 따라준 데 대한 고마운 마음과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다. 되돌아가겠다고 하는 나머지 일행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밀려온다.

우리 부부 단독으로 해외에서 배낭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입술이 바싹 말라 입에서 단내가 난다. 국경 주변으로 다시 와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보았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워낙 낙후된 지역이라 마땅한 식당도 없다. 한참을 찾아다니다 겨우 허름한 식당을 찾아 쌀국수를 시켰다. 갑자기 외국에서 미아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 당장 국경을 넘어 떠나지 않고 오늘 저녁 함께 지내다 내일 가겠다고 하니 그래도 좀 마음이 안정된다.

미얀마 국경마을의 오래된 이발소에서 면도하는 모습.

미얀마 국경마을의 오래된 이발소에서 면도하는 모습.

점심을 먹고 오늘 저녁 숙소를 찾아보았으나 국경 지역인데도 치앙라이에서는 그렇게도 많던 게스트하우스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국경 쪽으로 돌아와 구글 지도를 찾아 반대편으로 가보았더니 허름한 호텔이 있어 들어가자 빈방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호텔은 숙박하려면 여권을 달라고 해서 복사를 한 후 돌려준다. 1000밧에 방 2개를 예약한 후 짐을 풀어놓고 다시 국경 쪽으로 갔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며 긴장되고 섭섭했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내와 둘만 미얀마 배낭여행 

여기는 엄연히 미얀마 땅인데도 미얀마 화폐는 받지 않고 태국 돈으로 유통이 된다. 모든 상점이 태국 돈인 밧으로 만 거래를 한다. 이상하다. 미얀마의 정국이 불안하니 자기 나랏돈보다는 태국 돈을 더 신뢰하는 모양이다.

이젠 우리 부부만이 미얀마라는 나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동안 4명이 움직이다 보니 서로 의지도 되고 또 내가 주도하지 않더라도 관광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는데 이제 경희와 둘이서 해결해야 한다니 걱정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저녁을 먹는 식당 TV에서 SBS 드라마를 방영하는데 미얀마 글로 자막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방송이 여기까지 방영되는 것을 보니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오늘은 우리 배낭여행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 날이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진정한 나 혼자만의 배낭여행은 아니었다. 일행 4명과 함께한 것이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우리 부부만의 진정한 배낭여행이다. 이번 여행만 잘 마무리한다면 어디라도 자신감을 갖고 배낭여행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행과 헤어지는 서운함과 불안감도 없지 않지만, 오히려 위기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헤어지는 동료에게 기회를 줘서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내일부터 우리 둘 만의 진정한 배낭여행을 떠나 보자. 경희야 파이팅.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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