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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양육권 포기한 남편, 암 투병 아내…누가 아이 키워야하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95)

저는 이혼을 앞둔 엄마입니다. 결혼한 지 15년 되었고, 중학생인 아들과 같이 살고 있어요. 남편은 5년 전부터 지방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잡고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한 달에 두어번 집에 왔는데 지금은 명절에도 같이 지내지 않고 있어요. 생활비도 차츰 줄여서 저도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일자리를 마다치 않고 일을 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하자고 합니다. 문제는 중학생 아들입니다. 아이는 아직 모르지만 제가 암 진단을 받아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남편은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 pixabay]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하자고 합니다. 문제는 중학생 아들입니다. 아이는 아직 모르지만 제가 암 진단을 받아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남편은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 pixabay]

그런데 지난달에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네요.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제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저도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달리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모르는 척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이렇게는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저도 딱히 잡을 생각은 없어요. 문제는 아들입니다. 물론 저는 아이를 사랑합니다. 아이도 아빠보다는 저와 사는 것이 더 편하겠죠. 아빠가 재혼할 것이 분명한데 새엄마 눈치를 보고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제가 걱정하는 이유는 제가 아이를 키울 형편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아직 모르고 있는데 제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아파도 참으며 살았더니 암이 제법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운이 좋으면 수술을 하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살 수 있겠죠. 아마 제 한 몸 건사하면서 사는 것도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아직도 어린 우리 아들을 키울 수 있을까요? 아이 아빠는 양육비는 법이 정한 것보다 더 줄 수 있지만 아이는 키우지 못한다고 딱 잘라서 말합니다. 아이도 지방으로 전학을 가는 것은 싫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실제로 재판을 해보면 아이를 서로 키우지 않겠다고 하는 부모는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 아동보호시설들을 살펴보면, 부모가 서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하여 입소하게 된 아동들이 많다고 합니다. 물론 그 부모들이 모두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 방치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죠. 아마 원양어선에 승선하는 등 다른 지역에 일자리를 구했는데 같이 살 수 없는 까닭에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 가장 흔한 사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를 시설에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사유로 시설에 오게 되는 아이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두 분 사이에 이혼은 협의가 이뤄졌지만, 누가 아이를 키울지에 대해서는 협의가 되지 않은 경우 법원이 친권자를 정하게 됩니다. 협의이혼 과정에서 자녀의 친권자를 정하는 심판 사건을 청구할 수도 있고, 이혼 여부부터 재판으로 다툴 수도 있겠죠. 전에 말씀드린 바 있는데 자녀를 서로 키우겠다고 다투는 양육권 분쟁은 참 힘이 듭니다. 하지만 법원의 경우, 자녀를 서로 키우지 않겠다고 하는 사건이 더 난감할 것 같습니다. 자녀를 키우지 않겠다는 당사자 둘 중 어느 일방이 키워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과연 그 자녀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이 들 것입니다. 당사자들도 자녀를 상대방이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많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과장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사례자는 아이를 사랑하고 지금까지 아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사례자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이혼 후 사례자가 친권자가 되는 것이 여러모로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사례자의 건강상태를 솔직하게 가족들에게 공개하세요. 그리고 사례자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아이와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술을 받게 될 경우의 간병에 관한 사정, 입원 기간 혼자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사정,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아침 식사를 포함한 전반적인 가사에 관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사정, 어쩌면 아이가 사례자의 보호자가 될 수도 있는 사정 등을요. 이것은 사례자가 이혼하지 않더라도 수술과 투병을 위해서도 준비해야 할 것이니 사례자의 부모 형제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과도 생각을 나누셔야 합니다.

서로 키울 수 없다는 말을 아이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많은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당장은 사례자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이의 마음도 잘 살피셔서 아이가 수긍할 수 있고 사례자와 아이 모두가 감당 가능한 결론이 정해지기를 바랍니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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