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지켜주고 있는 마스크‧장갑 등 방역용품과 일회용품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구를 공격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멀리하기 위해 전 세계인은 앞다퉈 일회용품을 가까이하고 있다. 방역과 환경. 둘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방역 폐기물 무단투기, 무분별한 일회용품 사용은 언젠가 부메랑이 돼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中 버린 마스크 홍콩 무인도에 떠내려와 #미국·영국 세계 거리에 마스크·장갑 버려져 #하수도·바다로 흘러가 오염, 해양생물 피해 #배달 급증, 美 비닐 부활 英 무단투기 기승 #방역 폐기물, 쓰레기봉투에 넣어 묶어 버려야 #"방역·환경, 하나만 아닌 둘다 잡을 수 있어"
세계 거리 곳곳에 버려지는 마스크‧장갑
홍콩에 있는 '소코섬' 해변에는 최근 많은 마스크가 떠다니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지난 23일(현지시간)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환경단체 오션스아시아는 최근 이 섬을 세 차례 방문했을 당시 해변에서 마스크 폐기물 100여 개를 발견했다. 오션스아시아의 게리 스톡스에 따르면 이 마스크들은 중국이나 홍콩에서 이곳까지 흘러온 것으로 보인다.
스톡스는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 등 방역 관련 폐기물이 바다로 흘러오기까지 6~8주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소각해야 할 '코로나19 폐기물'이 이런 섬에까지 흘러들어오는 이유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리기 때문이다. 미국‧영국 등 세계 곳곳의 거리에선 버려진 마스크, 라텍스 장갑 등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 미국 CNN에 따르면 마크 벤필드 루이지애나 주립대 교수는 시카고의 거리에 코로나19 폐기물이 얼마나 버려져 있는지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몇 발자국 가지 않아 마스크·장갑·물티슈 등 폐기물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벤필드 교수는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미국 거리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폐기물은 장갑"이라고 설명했다.
바다로 흘러온 폐기물, 해양생물은 먹이로 착각
아무렇게나 버려진 마스크‧장갑 등 폐기물은 하수도나 바다로 흘러가 물을 오염시킬 수 있다. 폴리프로필렌과 같은 플라스틱을 포함한 부직포로 된 마스크 등은 분해하면서 유해한 화학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폐기물이 하수도나 바다까지 도착할 수 있는 상황은 수십 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리스의 해양 생물학자인 아나스타샤 밀리우는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거리에 버려진 장갑과 마스크들은 비가 내리면 물에 씻겨 내려가 결국 바다에 도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갑을 꺼내다가 실수로 호주머니에 넣어 둔 마스크를 길바닥에 흘리거나 쓰레기통에 넣어도 가벼운 무게 탓에 바람에 실려 날아갈 수 있다.
바다로 간 폐기물은 바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전문가들은 해양 생물이 폐기물을 먹이로 착각할 확률이 높다고 우려한다. 결국 사람들이 함부로 버리는 마스크와 장갑이 해양 생물의 배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벤필드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장갑은 해양 생물들에게 마치 해파리처럼 보이는 최적의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스톡스는 "최근 연구에 따르면 플라스틱이 바다에 오래 머물러 있을 경우 박테리아가 자라기 때문에 이 냄새가 마치 먹이 냄새처럼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장‧배달 급증...美 일회용 비닐봉투 부활
코로나19 시대에 포장과 배달이 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도 급증하고 있다. AP통신,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오리건주, 뉴햄프셔주,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 워싱턴주의 벨링햄 등 여러 주와 도시들이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 금지령을 철회했다. 감염 공포 탓에 재사용이 가능한 쇼핑백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서다.
미국 전역의 식당들이 일제히 문을 닫고 포장‧배달 영업만 하는 것도 일회용 비닐봉지 금지령 철회에 영향을 미쳤다. 스타벅스 등 커피 전문점들은 카페 안에서의 일회용품 사용을 일시 허용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 2~3월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나온 재활용 쓰레기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정도 늘었다. 택배 박스, 일회용품, 배달 용기 등이 급증했다.
영국에선 쓰레기 급증과 관리 소홀을 틈타 쓰레기 불법 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햄프셔‧맨체스터‧하트퍼드셔 등 곳곳의 길가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영국에 봉쇄령이 내려진 이후 쓰레기 불법 투기량이 88% 증가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문제는 봉쇄령으로 미국‧영국 등의 상당수 재활용 센터들이 문을 닫으면서 재활용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길도 막혔다는 점이다.
"방역·환경 둘 다 잡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노력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마스크와 장갑 등 방역 폐기물은 제대로 버려야 한다. 우선 공공장소에 버려선 안 된다. 전문가들은 마스크와 장갑이 플라스틱 소재라고 할지라도 재활용 쓰레기로 취급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두 가지는 바이러스 전파 방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데이비드 비더먼 북미 고형 폐기물협회 이사는 “일반 쓰레기와 함께 쓰레기봉투에 넣은 후 봉투를 단단히 묶어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용기나 비닐봉지를 휴대해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는 경우 다 쓴 마스크나 장갑을 넣을 수 있도록 한다.
방역 폐기물 불법 투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CNN에 따르면 미 매사추세츠주 에식스 카운티의 스왐스컷 경찰은 방역 폐기물을 불법 투기하다 적발되면 최대 5500달러(약 67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애초에 방역용품을 제작할 때부터 환경을 고려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업체 포드는 에어백 소재를 활용해 50회까지 세척해 재사용할 수 있는 의료용 가운을 제작하고 있다. 또 미국 네브래스카대는 자외선이 마스크에 묻은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비정부기구(NGO) '폐기물 없는 유럽(Zero Waste Europe)'의 조앤 마크 사이먼은 “공중 보건과 환경 둘 가운데 하나를 희생하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염병에 대비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사용한 일회용품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