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을 “경제 전시 상황”이라고 28일 말했는데,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숫자 몇 개만 봐도 알 수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1.4%였다. 11년 만의 최저치다. 4월 무역수지는 99개월 만에 첫 적자가 확실시된다. 3월 사업체 근로자는 22만5000명이 줄었다. 근로자 수가 준 것은 2009년 관련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생산·소비 위축은 역대급이다. 늘어놓으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그러니 대통령이 “위기 극복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위기 국가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코로나19가 준 마지막 기회 #일자리 지키고 국난 극복 총력 #대통령의 진정성 보여줄 때다
대통령은 방법도 제시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한국판 뉴딜, 국가 프로젝트”다. 역시 백번 옳은 말씀이다. 이쯤에서 서생의 문제의식이 발동한다. 도무지 이해 안 되는 게 있다. 탈원전이다. 이런 ‘경제 전시 상황’에 명분 없고 실익은 더 없는 탈원전을 왜 계속 붙들고 있나. 탈원전을 폐기하고 당장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자. 백 가지 득이 있되 실은 하나도 없다.
우선 한전 적자를 줄여 전기요금 인상을 늦출 수 있다. 코로나19로 민생이 참담한 시국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전의 눈덩이 적자를 두고 볼 수도 없다. 둘째, 일자리를 지키고 늘릴 수 있다. 두산중공업은 올 들어 650여 명을 명퇴 처리했다. 2600개 협력업체에선 수천~수만의 일자리가 이미 사라졌다. 셋째, 국민 세금을 아낄 수 있다. 두산중공업 지원에 쓰일 수조원의 돈을 서민 지원에 쓸 수 있다. 넷째, 우리끼리 잘할 수 있다. 세계는 신보호주의가 급부상 중이다. 경수로형 원전 건설은 한국이 세계 최고다. 다른 나라 도움도 필요 없다. 제일 잘하는 걸 팽개치고 엉뚱한 ‘한국판 뉴딜’ 찾느라 허송할 이유가 없다. 다섯째, 세계 원전 시장은 지금 호황이다. 지난해 발주가 시작된 신규 원전만 158기에 이른다. 잘만 하면 수십조원의 먹거리를 만드는 건 덤이다. 어디 이뿐이랴. 에너지 자립, 미세먼지 감축, 산업 경쟁력 강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문제 해소까지, 역시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탈원전은 국민 공감도가 크게 떨어지는 정책 중 하나다. 알려진 대로 영화 한 편을 보고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결정했다는 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 중에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를 그렇게 정하는 나라는 없다. 누군가의 잘못된 정보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잘못을 바로잡을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정권 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공론조사 때였다.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권의 바람과 반대 결과였다. 이때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났으면 됐다. 억지로 없던 설문을 끼워 넣고 군색하게 탈원전을 고집할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2018~19년 초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때다. 석탄 화력발전소를 줄이고 대신 원전 가동을 늘리겠다며 슬쩍 물러설 수 있었다. 세 번째, 작년 4월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를 발족할 때다. 유엔도 온실가스 감축에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할 때니 절호의 기회였다.
코로나19로 네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가 왔다. 이번마저 놓치면 더는 돌이킬 수 없다. 여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대통령만 질끈 자존심을 접으면 된다. 모양새가 빠지는 것도 아니다. 사법·행정·의회 권력을 모두 쥔 압도적 상황이다. 승자의 아량으로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어느 때보다 대통령의 진정성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때다.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맨 채 나라 곳간만 쳐다보고 있다. 재난지원금을 놓고도 30대 70의 편 가르기, 국민 갈등이 불거질 판이다. 정부·여당은 관제(官製)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슬쩍 묻어가려는 모양인데, 양보와 희생, 배려는 억지로 안 된다. 솔선수범, 특히 기업과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대통령의 솔선수범이 꼭 필요하다. 측근들이 섣불리 말도 못 꺼낼 정도라는 그것, 탈원전 폐기보다 안성맞춤인 게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