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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기업, 착한 소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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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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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없다.

때로는, 혹은 자주 선할 수 있지만 키나 골격처럼 고정된 특징이 아니다. 어제 착한 일을 했다고 오늘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착한 기업’으로 불리다 이면이 공개되면 “실망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칭찬은 바로 몇 배 더 무서운 부메랑이 된다.

기업이 착한 일을 한다고 했는데 뜻밖의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잦다. 미국 신발 기업 탐스는 ‘착한 소비’의 선두주자였다. 한 켤레 살 때마다 개발도상국 빈곤 지역 아이에게 한 켤레를 기부하는 캠페인으로 순식간에 세계적 기업으로 떴다. ‘내일을 위한 신발’이라는 취지에 공감한 할리우드 유명인이 동참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창업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신발 1억 켤레를 기부하는 성과를 올렸다.

노트북을 열며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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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래지 않아 탐스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아이는 신발이 없어서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해서 신발이 없다. 빈곤은 신발로 해결할 수 없는데, 마치 가능한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다. 지역에 맞지 않는 제품을 마구잡이로 기부해 환경을 해친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지 의류 산업 생태계의 포식자가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직접 기부가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했다. 탐스는 기부 물품을 신발에서 생필품으로 바꿨지만 이미 동력은 사라졌다. 결정적으로 제품 경쟁력이 약했다. 주력 모델(알파르가타)은 유명했지만, 경쟁력 있는 후속작이 나오지 않았다. 탐스는 지난해말 부채 3억 달러를 갚을 수 없다며 경영권을 넘기고 사라질 위기다.

어려운 시기라 선한 의도가 봇물이다.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움직임은 특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착한 음식 배달애플리케이션, 착한 선결제, 착한 소비 릴레이 운동이 이 중 일부다. 좋은 마음을 의심하긴 싫지만,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어 회의적이다. 착한 공공배달 앱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왜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지 논의가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 벌써 너무 많은 집단이 숟가락을 얹었다. 그보다 이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낸 주력 사업자(우아한형제들)를 하루아침에 악한 기업으로 낙인찍는 게 과연 선함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착한 선 결제 운동은 누구를 어디서 얼마큼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도 계획도 없이 구호만 있다. 이미 업무추진비를 현금으로 돌려받을 방법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나 기업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 불변의 절대 선 같은 것은 없다는 점을 새기자고 하면 잔인한 것일까.

전영선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