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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중앙일보

입력

유튜브·인강에 익숙한 영상세대, 등교 대체한 온라인 수업 외면
과거 잣대 버리고 디지털 신문명 표준에 맞춰 사고의 혁신 필요

새 연재 -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2) #'헛짓’에 빠진 아이들의 꿈 미래는 그곳에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됐다. 교사들에겐 생소하지만 포노 사피엔스들에게 영상 수업은 이미 익숙한 방법이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학이 연기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됐다. 교사들에겐 생소하지만 포노 사피엔스들에게 영상 수업은 이미 익숙한 방법이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으로 봄꽃 만발한 계절을 살아내고 있다. 아직도 아침 온도는 차고 해 질 녘 부는 바람은 제법 매섭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진달래, 개나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스산한 우리 마음과 대비를 이룬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하필 이 꽃들은 찬 기운 여전하고 바람 매서운 4월에 꽃을 피우는지. 이 꽃들은 오랜 진화를 거쳐 스스로 이 땅에서 가장 번성하기 좋은 시기를 택했을 것이다. 얼지 않을 만큼의 온도라면 바람이 많은 시기가 꽃가루 날리기에 좋고 열매 맺기에도 유리하다. 매서운 바람이 생존과 번영에 결정적 도움이 된 셈이다.

인류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고난은 늘 새로운 성장을 위한 기회의 시간으로 작동했다. 요즘 우리 국민은 국난 극복을 취미생활로 한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생활의 근간이 부서지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우리는 극복하고야 만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표현이지만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 아프다. 그래서 고통의 시기를 도약대로 삼아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슬기로운 극복생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려면 내 마음의 표준을 포노 사피엔스로 바꿔야 하고 디지털 문명에 익숙해져야 한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특징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 사회는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에 대해 많은 반감을 갖고 있다. 게임 중독, SNS 중독, 악플러, 가짜뉴스, 인간관계 해체, 플랫폼 독점의 횡포, 인공지능의 위험, 최근에는 미성년자 성 착취 영상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작용을 떠올리다 보면 디지털 문명은 편리하긴 하지만 인류 정서에 반하는 나쁜 문명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부작용은 사실 심각하다.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하고 반대로 표준을 바꿔야 할 만큼 좋은 점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지식을 공유하는 디지털 문명의 전통

코로나19 바이러스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코로나나우’를 만든 최형빈 군(왼쪽)과 이찬형 군.

코로나19 바이러스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코로나나우’를 만든 최형빈 군(왼쪽)과 이찬형 군.

대구에서 ‘코로나나우’를 개발한 건 16살인 중3 학생 최형빈과 이진형군이다. 사이트를 개발한 실력도 놀랍지만, 전 세계 사이트의 정보를 모아 국민에게 정확한 코로나 정보를 알려주고 싶었다는 그 마음이 더 놀랍다. 어디서 배웠을까. 이 마음은 선한 인터넷 문명의 특징이다. 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그들이 개발한 소스코드를 공유하며 소위 오픈소스 활용 문화를 만든 지 오래됐다. 이런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서 코로나맵, 코로나알리미를 개발한 청년들이 된다. 질병관리본부에서 텍스트 기반 데이터를 발표하자 이 청년들은 포노 사피엔스 표준 방식인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바꿔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국민의 95% 이상이 이미 스마트폰을 사용 중이니까.

선한 영향력을 갖게 된 건 그들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코로나알리미를 만든 대학생들은 ‘멋쟁이사자처럼’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코딩을 배우고 프로그램 개발 능력을 익힌 친구들이다. 2013년 처음 시작돼 90개 대학이 참여하는 이 동아리는 IT 비전공자 학생들이 스스로 배워 아이디어도 실현하고 창업도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단체다. 이제는 구글, 아마존과 같은 거대 기업들의 스폰서를 받는 중이다. 이런 생각은 소프트웨어 개발사회에서 오래된 전통이자 표준 문명이다.

대만의 오드리 탕 장관이 각료회의에서 나온 마스크 배분 문제를 페이스북 소프트웨어 개발자 그룹에 공유하고 그 해법을 함께 찾아 무료로 앱을 개발하는 과정은 그가 해커로 성장하며 배운 문명의 전통이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과 같은 세계적 플랫폼 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디지털 문명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통이 근간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회 전체가 공포에 잠겼었다. 그런데 구글은 놀랍게도 알파고의 소스코드 80%를 개발자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거액을 들여 투자해 개발한, 심지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쓸 수 있게 풀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소프트웨어 공유 문화의 전통이다. 그 이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는 숨겨진 20%를 같이 풀어보자는 운동이 이어졌고, 우리나라 대학생 김태훈군이 무려 20개의 모듈을 만들어 공개한 일은 유명한 사건이 됐다. 그때 실력을 인정받은 김군은 2019년 1월 테슬라의 CEO 일런 머스크가 세운 인공지능 회사 오픈에이아이(Open AI)에 33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스카우트됐다. 세계 최고의 기업들을 마다하고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오직 인류공영을 위해서만 인공지능을 개발한다는 회사의 정신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니 선한 시스템에 의해 배운 마음의 표준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공부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생각의 표준도 달라진다.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 아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검색하고 학습한다. 유튜브의 세계는 국경도 없고 영역의 경계도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최고의 콘텐츠가 선택받는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또 그걸로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 선택의 습관은 학원 학습으로도 이어진다. 최고의 인강(인터넷 강의) 강사는 ‘일타강사’라는 명성을 누리며 수백억 원에 스카우트되기도 한다. 일타강사 한 명이 많게는 학생 수십만 명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학습에 익숙한 아이들이 더 좋은 콘텐츠로 몰리는 건 당연한 본능이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사태로 학교에서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을 때 그 기대치는 엄청 높았던 반면, 공교육의 틀 안에 있는 교사들이 보여준 수준은 한참 못 미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등교 대신 온라인 수업이 실시되면서 교사 3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그 원인이 명확히 드러난다. 응답자의 60%가 ‘온라인 학급을 운영한 경험이 없다’고 답했고 학생들과의 소통, 영상제작, 라이브수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심지어 20~30대 교사들조차 온라인 학습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교사들을 위해 영상 제작 방법, 온라인 수업 운영 사례, 온라인 수업 툴 활용법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아이들의 표준과 달리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문 결과다.

당황한 교사들은 강의하는 대신 과제를 내주고 그걸 채점하는 거로 영상 수업을 대체한다. 학부모들이 자신의 수업을 지켜본다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하니 교사들이 갖는 두려움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한다면 공교육에 대한 신뢰는 붕괴할 것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진짜 공부는 유튜브와 인터넷 플랫폼에서 하는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공교육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과연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기존의 교육방식이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것이 오직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교육방식이라면 말이다.

온라인 수업에 겁먹은 교사, 실망한 아이들 

구글은 거액을 투자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소스코드 80%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자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2016년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고 있는 이세돌 9단.

구글은 거액을 투자해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의 소스코드 80%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자 커뮤니티에 공개했다. 2016년 알파고와 대국을 벌이고 있는 이세돌 9단.

학교가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낸 무능함의 근본 원인은 사실 사회 전체의 표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사를 뽑는 기준은 오로지 시험, 임용고시뿐이다. 그것도 어찌나 경쟁이 치열한지 재수, 삼수는 기본이다. 그러니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실습하며 혁신을 고민하는 건 사치일 뿐이다. 그렇게 선발된 교사는 자기 경험에 비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 성적을 잘 받는 것’이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다. 유튜브로 스스로 학습한 아이들이 놀라운 코딩 실력을 보이고 드론 조종대회에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1등을 해도 우리의 표준 시스템은 그저 일탈로 여길 뿐이다. 여섯 살짜리 꼬마가 재미 삼아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을 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도 교사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배운 적도 없거니와 종일 똑같은 수업에 산더미 같은 행정 업무로 시달리니 눈 돌릴 틈이 없다. 그래서 학교는 점점 더 아이들이 배우고 싶은 방식, 배우고 싶은 내용과 멀어지고 세대 간 생각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거기다 새로운 수업 방식을 시도할라치면 이내 극성스러운 학부모의 항의가 빗발친다. 우리 아이 대학 못 가면 책임질 거냐는 항의에 교사의 창의적 열정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대학에 들어가는 조건도 일일이 교육부가 규제하니 학부모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교육현장의 선생님들 탓일까. 아니다. 수능 만능의 교육 표준이 그 원인이다. 대한민국 어른 모두가 교육 혁신 실패의 공범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서로 남 탓만 하고 부작용만 이야기하며 그저 변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가 팬데믹 쇼크 한 방에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그래서 표준이 바뀌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디지털 문명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적이고 부작용을 들춰내는 데 급급했다. 변화에 대한 도전보다 강력한 규제로 막으려 애썼다. 우버·에어비앤비·원격교육·원격진료·원격처방 등 해외에서 상용화된 무수한 신산업들을 도입 초기에 규제로 묶어둔 것은 기성세대의 일자리 보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치자. 대륙의 문명은 속도를 더하며 디지털 문명으로 전환하는데 우리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도 학교와 다를 바가 없다. 인류의 표준 생활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대거 옮겨갔는데 규제는 여전히 신산업 성장과 새로운 일자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어른들은 그저 핑계만 대며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또 이렇게 10년이 지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일자리가 남아 있을까. 만약 팬데믹 쇼크가 반복될 때마다 디지털 문명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유튜브는 철부지의 놀이터가 아니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원격의료의 빗장을 열고 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규제에 막혀 시행할 날이 요원하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원격의료의 빗장을 열고 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규제에 막혀 시행할 날이 요원하다.

강력한 규제로 견고한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선호하는 일자리는 한정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청년 40만이 노량진에 모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또 그만큼이 대기업과 공기업 등 안정된 직장을 찾아 나선다. 기회는 시험을 잘 친 이에게만 주어지고 부모 찬스에 혈연·학연·지연을 잘 쓰는 쪽이 유리하다. 이런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혁신의 부작용만 이야기할 뿐이다. 어른들이 이렇게 규제로 일자리를 지키는 사이 청년들은 좌절하고 포기하는 세대로 전락한다. 청년이 꿈꾸지 않는 미래 없는 사회가 된 것은 우리가 구 문명을 지키기 위해 치르고 있는 참담한 대가다.

이제 불평을 여기서 멈추고 혁신의 길을 찾아보려 한다. 디지털 문명으로 전환하면 어떤 기회가 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유튜버 생태계다. 2019년 광고수입 303억원으로 최고 자리에 오른 유튜버는 미국의 8세 꼬마 라이언이다. 스웨덴 청년 퓨디파이는 2019년 구독자 수 1억 명을 넘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 대표 유튜버인 도티는 샌드박스네트워크라는 회사를 차려 지난해 매출 600억 원을 올렸다. 이 정도 생태계가 되니 아이들이 손꼽는 미래 직업이 된다.

사실 유튜브는 TV가 갖고 있던 방송 권력을 빼앗은 포노 사피엔스의 플랫폼이다. 지상파 광고 매출이 폭락하는 사이 유튜버의 수입이 급증하며 생태계를 바꾼 것이다. 지상파의 권력이 유튜버를 통해 소비자로 옮겨갔다고 할 수 있다. 유튜버는 고객의 선택에 의해서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시스템의 권력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상파에 입사하려면 좋은 성적은 물론, 엄청난 스펙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방송고시, 언론고시라고 할까. 그런데 유튜버는 그런 게 필요 없다. 오직 실력이다. 재밌는 방송을 만들면 선택받고 아니면 소멸한다. 혈연, 학연, 지연, 부모 찬스도 아무 소용없다. 누구나 정당하게 경쟁하고 노력한 대로 보상을 받는다. 그러니 유튜버의 자질은 오직 실력뿐이다. 그것이 매력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런 변화를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보여준 것이 바로 유튜버 보람이 사건이다. 여섯 살 꼬마 보람이는 라이언처럼 되고 싶어 열심히 방송을 만들었고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그러자 2019년 7월 기사가 하나 떴다. 6세 꼬마 유튜버가 한 달에 37억원을 벌어 청담동에 100억원짜리 빌딩을 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방송금지 청원이 올라오는가 하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특집 방송을 편성해 키즈TV의 부작용을 성토했다. 물론 잘못된 점은 고쳐야 하고 언론은 이를 늘 감시해야 한다. 문제는 데이터는 무시한 채 구 문명 기준에 맞추려는 편향된 시각이다. 어떤 언론도 보람이가 어떻게 성공을 일궜는지 주목하지 않았다. 오직 비판만 했다.

팩트체크를 해보자. [보람튜브]의 정기 구독자는 2440만 명이다. 세계 1위 [라이언(Ryan’s World)]에 불과 30만 명 뒤처진다. 우리나라 4~7세 인구가 138만 명이니 90% 이상은 해외 구독자인 셈이다. 보람이는 아이들 세상에서 국경을 넘는 글로벌 스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1년에 300억원을 버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더구나 외화벌이다.

왜 우리는 보람이의 성공을 불편해하나

유튜브 크리에이터 보람TV 구독자는 세계적으로 2440만 명에 달한다. 불과 30만 명 더 많은 미국의 아홉 살 꼬마 라이언은 지난해 303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 사진:보람튜브 캡처

유튜브 크리에이터 보람TV 구독자는 세계적으로 2440만 명에 달한다. 불과 30만 명 더 많은 미국의 아홉 살 꼬마 라이언은 지난해 303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였다. / 사진:보람튜브 캡처

우리 지상파의 현실과 비교해보자. 지상파 키즈TV는 EBS의 TV유치원뿐이다. 시청률은 고작 0.4%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바른 방송은 세계 아이들은커녕 우리나라 아이들 138만 명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방송고시를 패스한 엘리트들이 만들고 시청료로 징수한 예산 수십억원을 써서 만들어낸 참담한 결과다. 현실이 이런데도 지상파는 보람이처럼 새로운 문명에 도전할 생각은 없고 그저 신문명의 부작용만 들춰내며 구 문명의 안락함에 안주할 명분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방송국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보람이를 비난하는 데 동참했던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 KBS에 세금을 걷어 방송을 만들게 하는 건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개인이 방송을 만들어 세계 2400만 아이들을 열광하게 하는 건 부당하다는 믿음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전 세계 아이들이 스스로 영상을 만들어 문명을 공유하고, 창조하고, 소통하는데 그것을 부작용 덩어리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시험 한 번 잘 봐서 입사하면 평생 자리를 유지하는 건 당연하고, 아무런 스펙 없이 오직 실력으로 경쟁해서 세계 최고의 방송을 만들어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기는 게 과연 타당한가.

구 문명의 기준으로 보자면 보람이는 아역배우다. 예전 같으면 기획사에 잘 보이고 방송국 PD에게 잘 보이는 게 성공의 공식이다. 그나마 국내에서 잠깐 반짝했을 뿐이다. 아역배우가 세계적 스타가 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런데 보람이는 누구에게도 아부하지 않고 그저 방송을 즐기며 글로벌 톱 유튜버가 됐다. 보람이에게선 BTS의 향기가 난다. 오직 팬덤으로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BTS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는가.

BTS와 보람이가 보여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은 이제 전 산업 분야로 번져가고 있다. 네이버 웹툰이 세계 최고의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이 되면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그리고 그 돈은 작가의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웹툰이나 소설의 작가가 되는 길은 심플하다. 고객의 선택을 받을 실력이 있으면 된다. 누구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그저 플랫폼에 습작을 올리면 된다. 연 1억원 이상 버는 웹툰 작가는 300명에 이르고, 상위 20명의 평균 수입은 17억1000만원에 달한다. 최근 [재혼왕후]라는 작품을 쓴 웹소설 작가는 작품 한 편으로 40억원을 벌었다. 세계 100개국에서 1위를 하는 네이버 웹툰 플랫폼이 우리 청년들에게 만들어준 새로운 일자리다.

게임산업도 엄청난 일자리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세계 최고 프로게이머인 ‘페이커’ 이상혁은 연봉 50억원에 더해 SKT T1팀의 지분까지 거머쥐었다. 온라인 게임이 프로스포츠로 정착하며 많은 수입을 창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문 MC·PD·촬영감독 등 숱한 고연봉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그것도 순전히 실력을 기준으로. 이것도 게임산업이 낳은 새로운 일자리 생태계다.

이렇게 되면 일자리의 개념이 달라진다. 최고의 유튜버가 되겠다거나, 최고의 웹툰·웹소설 작가가 되겠다거나 최고의 게임방송 PD가 되겠다는 꿈은 대기업 사장이 되겠다는 것과 크게 격이 다르지 않다. 연봉도, 사회적 지위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더구나 그 목표를 이뤄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진정한 실력을 키우는 일이니 가는 길도 당당하다. 대기업 사장이나 임원이 되겠다는 길이 오히려 험난해 보인다.

성공한 유튜버나 웹툰 작가, 프로게이머는 몇 명 되지도 않는데 헛꿈 꾸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말라. 대기업 취직한다고 해서 모두 사장이나 임원이 될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적어도 이 신산업은 포노 사피엔스가 성장하면서 함께 성장할 시장이고 그만큼 생태계도 일자리도 앞으로 커지고 많아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공부에 취미 없는 아이들에게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길을 열어주는 시장이다. 실제로 유통, 제조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일자리는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키워줘야 할 생태계가 아닌가. 이런 생태계가 커져야 아이들 모두가 함께 꿈을 꿀 수 있다. 꿈이 미래를 만드는 힘이다.

디지털 생태계에 걸맞게 교육도 변해야

미래 세대의 직업 생태계는 구문명 세대의 가치 기준과 확연히 다르다. 연봉 50억원을 받고 SKT 게임단으로 이적한 프로게이머 페이커.

미래 세대의 직업 생태계는 구문명 세대의 가치 기준과 확연히 다르다. 연봉 50억원을 받고 SKT 게임단으로 이적한 프로게이머 페이커.

일자리 생태계가 달라지면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프로그래밍이든, 음악이든, 춤이든, 유튜브든, 웹툰이든, 게임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하면서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더구나 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루는 곳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성공한 사례를 잘 알려주고 그런 미래를 준비하라고 꿈을 심어주는 교육도 필요하다. 수능과 대입이라는 한 가지 목표로 교육하는 시대는 지났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 맞춰 표준이 바뀌면 교육의 목표도, 그에 따른 콘텐츠도, 교육의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맞닥뜨린 교육 문제는 단순히 기존의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음의 표준을 바꾸고 새로운 세대가 만드는 문명을 편견 없이 바라볼 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된다. 어렵고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구 문명도 신문명도 부작용은 늘 있기 마련이다. 완벽한 문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탓이다. 디지털 문명이 정해진 미래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열쇠라면 이제는 우리 사회 표준을 바꾸고 거기서 부작용을 극복해야 한다.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는 태풍처럼 거센 고난의 바람이다. 봄꽃은 바람에 꽃잎을 다 떼이는 고통을 당하지만 그렇게 꽃가루를 날려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코로나19로 겪는 고통을 헛되게 낭비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를 치장했던 화려한 꽃잎을 다 떼이더라도 청년들의 꿈이 영그는 미래를 열어줘야 한다. 서로 도우며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 청년이 꿈꾸는 나라를 위해.

※ 최재붕 - 성균관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을 겸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융합을 기반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알려져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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