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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코로나 직격탄 맞은 청년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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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창규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생용 학원. 20대 후반의 학원 강사는 연방 휴대전화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의 얼굴은 갈수록 일그러졌다. 심지어 머리를 쥐어뜯는 듯한 행동도 수시로 했다. “선생님에게 큰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나고 강사에게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청년 4명 중 1명 변변한 직업 없어 #기업 위한 획기적인 규제 완화로 #일자리 창출하는 선순환 만들어야

강사는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하면서 말끝에 “어휴 주식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코로나19로 학원이 휴강하는 빈도가 잦아지자 그는 남는 시간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조금 내리다가 오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주식시장이 폭락세를 거듭하자 전 재산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한다. 해당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코로나19가 만든 슬픈 풍경이다. 급증하는 실업자와 휴직자, 그리고 넘쳐나는 돈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단기 아르바이트 같은 고용시장에서도 밀려난 청년이 ‘대박’을 터트릴 곳은 주식시장밖에 없다며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증시 주변 자금만 143조원을 넘어선다. 석 달 전보다 무려 25%가량 늘었다. 3월 한 달에만 5대 시중은행에서 예금과 적금을 깬 금액이 8조원에 육박한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불확실성이 큰데도 고위험·고수익 금융상품 판매가 증가할 조짐”이라며 “냉정하게 투자판단을 해달라”고 투자자에게 주문할 정도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이들은 한국 청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월 청년(15~29세)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만9000명 감소했다. 전 연령층에서 가장 감소폭이 컸고,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월 이후 최대 규모다. 3월 청년 실업률은 9.9%. 하지만 단기 아르바이트, 취업포기자 등을 포함한 청년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은 26.6%다. 2015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높다. 청년 4명 중 1명이 변변한 직업 없다는 뜻이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기댈 곳은 인적 자원뿐이다. 미래의 성장동력인 청년 상당수가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스러지는 한국엔 미래는 없다. 청년의 앞길이 잿빛이면 한국의 미래도 잿빛이다.

서소문포럼 4/29

서소문포럼 4/29

청년이 한국 경제의 미래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도 이들의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정치권은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할지, 100%로 할지, 또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 지로 공방을 벌인다. 돈을 어떻게 풀지 논란을 거듭하는 사이 청년을 구할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다.

경제가 시들어갈 때 정부가 돈을 풀면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처방이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을 땐 얼어붙은 소비·투자 심리가 풀릴지도 불투명하다. 그래서 재정지출이 100조원 늘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0.18%P에서 0.38%P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한국경제연구원)도 나온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려면 정부의 돈 풀기보다는 사업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불법이 아닌 한 뭐든지 하려는 게 기업의 생리다. 기업의 투자가 늘면 인력도 필요하고 자연스레 일자리가 생긴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선순환의 시작이다.

지금은 어떤가. 반기업 정서 탓에 기업은 정부의 눈치만 보고 움츠러들었다. 지난해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ODI)가 618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국내 설비투자는 10년 만에 가장 낮았다. 기업이 해외로만 가고 국내에 투자를 안 하니 양질의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초거대 여당이 등장한 4·15총선 이후 더욱 두드러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 기업을 옥죄는 규제법안이 통과될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미래가 불확실하니 새로운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기업이 사업하기 편한 나라의 출발점은 규제 완화다. 미국은 규제를 하나 신설하면 두 개를 푼다(Two for One Rule). 하지만 한국은 규제법안이 갈수록 쌓이고 있다. 원격진료와 같은 수많은 규제 탓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또 국내 기업은 세계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는 오히려 기회다. 과감한 규제 완화·철폐가 경제에 마중물 역할을 하면 청년을 위한 일자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청년에게 희망이 있어야 한국에 희망이 있다.

김창규 경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