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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김정은 사망 의혹’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중앙일보

입력

12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지구 항공 및 반항공사단 관하 추격습격기연대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이륙하는 전투기를 응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지구 항공 및 반항공사단 관하 추격습격기연대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이륙하는 전투기를 응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2주 가까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사망설·원산 자가격리설·중국 의료진 대북 파견설 등 온갖 설(說)과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 사망설에 세계적 관심 #1986년 ‘김일성 피격설’ 경험 #정부, 논란 증폭 차단 필요해 #한·미 정보공유 중요성 부각

지난 21일 한때는 한국 증시가 급락하고 외국인이 주식을 순매도하기도 했다. 정부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상반하는 다양한 설들은 마치 진영싸움으로 국민에게 보일 수도 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미확인 북한 첩보에 의한 무책임한 설(說)…설(說)…설(說)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북한 최고지도자 신변에 관한 두 가지 과거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첫 사례로 1986년 11월 14일 ‘김일성 피격설(說)’ 보도와 3일 뒤 17일에 나온 ‘김일성 피격’이라는 오보는 하루 뒤 18일 북한 언론매체가 김일성 주석의 공개활동을 보도하며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1986년 11월 17일 본지 지면. 당시 김일성 사망 의혹이 나왔을때 국내 언론에서도 이를 추종 보도하면서 단정적으로 사망을 확정했다. 다만, 유일하게 본지는 피살이 아닌 피살 '설'을 적시하고 사망을 부인하는 주장도 균형있게 실었다. 편집기자는 이듬해 8월 한국기자상(편집부문)을 수상했다. [중앙포토]

1986년 11월 17일 본지 지면. 당시 김일성 사망 의혹이 나왔을때 국내 언론에서도 이를 추종 보도하면서 단정적으로 사망을 확정했다. 다만, 유일하게 본지는 피살이 아닌 피살 '설'을 적시하고 사망을 부인하는 주장도 균형있게 실었다. 편집기자는 이듬해 8월 한국기자상(편집부문)을 수상했다. [중앙포토]

여기서 ‘피격설(說)’은 미확인된 첩보(諜報, Information)로 추측성 루머에 불과한 것이며, ‘피격’이라는 표현은 직접 사실로 확인된 정보(情報, Intelligence)를 의미한다. 그런데 당시에 ‘피격설’이 난무하면서 ‘피격’됐다는 오보로까지 왜곡되었고, 결국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두 번째 사례로는 1994년 7월 8일 새벽 2시 김일성 주석의 사망 사실과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사실은 각각 34시간, 51시간 30분이 지난 뒤에야 북한의 보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이 사망 사실을 보도하기 이전에는 한국이나 미국 정보기관에서도 인지하기가 어려웠다는 의미다.

이러한 두 가지 과거 사례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도출한 바 있다.

첫째는 북한체제의 폐쇄성과 최고 존엄에 대한 철저한 보안통제로 대북정보 활동이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미 간 긴밀한 대북정보 공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우선적인 과업을 식별하게 됐다.

둘째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정보수집 활동을 집요하게 거부 및 방해하기 때문에 역으로 한·미의 정보력을 노출하지 않는 보안활동을 강화하면서 대북정보 수집수단 증강과 전문가를 양성해 왔다.

1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북한 노동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꾼들이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15일 찾았다고 보도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news1]

1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북한 노동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무력기관 책임일꾼들이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15일 찾았다고 보도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 news1]

최근의 신변이상설은 김 위원장이 지난 15일 ‘태양절’(108번째 김일성 주석 생일 기념일)에 참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발점이었다. 이후 20일 탈북단체에서 운영하는 데일리NK 보도와 21일 CNN 보도내용이 기폭제가 됐다. 현재까지 이른바 북한발 미확인 소식통의 첩보(說)는 추측성 소문일 뿐 김 위원장의 신변에 이상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팩트는 단 하나도 없다.

단지 원산 일대에서 간접적으로 김 위원장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여러 조짐 중의 하나인 전용 열차 활동, 그리고 김 위원장 유고 시 나타날 수 있는 군부 동향 등에서 이전과 대비해 특이 변화활동이 없다는 한·미 정부 당국자들의 공통된 언급내용 등이 나름대로 해석되고 평가된 유의미한 정보일 뿐이다.

북한도 김 위원장 신변이상설을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보도는 아직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연이어 나온 보도를 통해 최소한 김 위원장이 살아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27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에 기여한 일꾼들과 근로자들에게 일종의 포상인 '감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사진 news1]

27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에 기여한 일꾼들과 근로자들에게 일종의 포상인 '감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사진 news1]

27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원산 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을 지원한 간부와 근로자에게 감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22일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시리아 알 아사드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 명의의 답전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고, 26일 대내용 라디오 매체인 조선중앙방송을 통해서 김 위원장이 삼지연시 건설에 참여한 근로자들에게 감사를 보냈다는 김 위원장 명의의 동정보도 2건도 나왔다.

지금까지의 한·미 정부 당국자들의 유의미한 언급내용이나 북한 언론매체의 김 위원장 명의의 동정 보도 만을 토대로 종합분석하면 김 위원장은 그동안 다양한 설(說)중에 사망이나 식물인간 등 통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은 아닌 쪽에 무게를 두고 평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직접 확인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간접적·정황적·희망적 분석의 오류를 가지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언제, 어떤 이상이 발생했으며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김 위원장 곁에 있는 소수의 측근 외에는 직접 팩트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강원도 원산 북서쪽에 위치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각(별장). [사진 구글어스]

북한의 강원도 원산 북서쪽에 위치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각(별장). [사진 구글어스]

물론 김 위원장 신변에 모종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시기와 요인으로 지난 12일 평양에서의 최고인민회의 불참 시점부터 14일 동해 문천일대에서의 순항미사일 발사와 전투기 공대지훈련을 참관했지만, 미보도를 가정 시 그 이후 15일 밤 12시 태양절 참배에 불참한 시간 사이의 어느 시간대에 평양지역으로 복귀할 수 없는 건강 상의 어떤 사유가 발생했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같은 심각한 전염 위험성을 행사 불참의 원인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가정을 포함한 정황적 분석일 뿐 김 위원장의 유고설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미흡하다. 북한만이 정답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또한 간접적·정황적인 첩보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데는 북한체제의 폐쇄성은 물론 한·미 정보판단에 혼선을 기하려는 북한의 예상치 않은 의도까지를 추가로 고려해 볼 때 김 위원장 신상에 대한 정보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도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변이상에 대한 오판은 북한 내부의 불안정 사태 파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한반도 위기관리 및 대비태세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반도 상공에 자주 등장하는 미군의 코브라 볼(RC-135Sㆍ사진 위)과 E-8C 조인트 스타즈(J-STARSㆍ사진 아래)는 미국의 대북 핵심 정찰 자산이다. [사진 연합뉴스]

한반도 상공에 자주 등장하는 미군의 코브라 볼(RC-135Sㆍ사진 위)과 E-8C 조인트 스타즈(J-STARSㆍ사진 아래)는 미국의 대북 핵심 정찰 자산이다. [사진 연합뉴스]

따라서 이러한 대북정보의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에 신중하게 임하면서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원칙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정보력이 단연 한국의 정보력에 앞서는 부분이 많지만, 미국보다 우수한 한국의 정보력도 있기 때문에 국가안보와 국익 그리고 불필요한 국론 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 긴밀한 정보 공조와 같은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다.  마치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발화 원점에 대한 신속한 초기 진화가 중요하듯이 북한 최고권력자인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한·미 간 긴밀한 정보공유체제 유지와 초기 상황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보 불안감으로 인한 경제손실과 국론분열은 물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미치는 폭발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조만간 김 위원장이 깜짝 등장할 가능성이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확인될 때를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서는 대북정보에 대한 정밀분석과 함께 유사시의 위기관리메뉴얼에 입각한 위기상황 관리체계도 신중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언론이나 방송 매체들도 근거가 불분명한 경쟁적 추측성 보도로 국민에게 불안감과 혼란을 가중하는 원인을 제공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는가에 대한 자성도 필요하다. ‘안보와 국익 앞에서는 여야, 남녀노소, 진영논리가 따로 없다’라고 국민이 먼저 외치도록 모범을 보여야 할 때이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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