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따뜻한 식사는 사람으로 완성된다

중앙일보

입력 2020.04.28 07:00

[더,오래] 강하라·심채윤의 비건라이프(26·끝)

쌀쌀한 바람이 불던 어느 봄날, 다시마를 끓여 우려낸 물에 애호박과 작은 감자를 넣고 현미 국수를 끓인다. 국수에서 우러나온 뽀얀 국물을 한 입 삼킨다. 부드럽게 익은 감자의 고소한 맛과 보들보들 씹히는 현미 국수를 먹으니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맺힌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국수 한 그릇에 몸도 마음도 노곤노곤 따뜻해진다. 어느 날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찬 기운의 봄바람에 마음이 시리다가 또 어떤 날은 일상에 지쳐서 마음이 시린다. 저마다의 따뜻한 끼니를 먹으며 우리는 또 그렇게 다시 일어나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따뜻한 집 밥이 간절한 날이 있다. 한동안 집을 떠나면 따뜻한 밥과 국, 김치가 간절해진다. 찬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낯선 땅의 낯선 계절은 더욱 집 밥을 생각나게 한다. 낯선 곳에서도 따뜻한 식사를 할 수는 있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먹는 밥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집 밥의 힘은 세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닐 것이다. 가족을 위해 좋은 재료를 고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한다. 밥상에 오르는 식재료 하나하나를 고르다 보면 절로 농부님들께 고개가 숙여진다. 땀과 노동이 깃든 것들을 편하게 받아먹는 것이 때로는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농부님들이 정성으로 키운 채소를 집에서 편하게 받아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사진 강하라]

농부님들이 정성으로 키운 채소를 집에서 편하게 받아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사진 강하라]

어려운 시기를 경험하다 보니 일상에서 감사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된다. 한 끼의 따뜻하고 편안한 식사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이 시기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일상의 불평은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먹고 누리고 즐기는 수많은 것들 뒤에 쌓인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고를 다 헤아릴 수조차 없지만 조금 더 신중하고 사려 깊은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 해 전, 세차게 쏟아지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며 귀한 분과 먹었던 현미 국수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손님께 현미국수를 내어 드렸다. 김이 오르는 국수를 먹으며 그간 쌓인 이야기를 나눈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도 사람살이의 고충은 다르지 않음을 공감하며 따뜻한 국수와 따뜻한 대화는 그렇게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음식은 기억을 소환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우리는 서로를 토닥이고 마음을 안아준다. 대단한 해답을 얻지 못해도,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힘에 부치더라도 따뜻한 식사 한 끼에 조금 더 힘을 얻는다.

어쩌면 인간은 그런 이유로 더 자주 식사를 하는지도 모른다.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먹는 식사를 좋아하고 기쁜 순간에도 슬픈 순간에도 음식을 나누며 함께 한다. 음식이 단순히 신체의 연료로 작용하는 것뿐 아니라 마음을 안아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주기도 한다.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집으로 초대를 한다. 대단하게 차린 것은 없어도 제철 채소로 식탁을 채운다. 집에서 만든 음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어요.”라는 인사가 빈말로 쓰이지 않고 밥 두 번, 밥 세 번 같이 먹고 싶은 사람들과 그렇게 소박한 밥을 함께 먹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 따뜻한 식사는 사람으로 완성된다.

애호박과 감자로 끓인 현미국수. [사진 강하라]

애호박과 감자로 끓인 현미국수. [사진 강하라]

따뜻한 식사 (현미 국수)
1. 찬물에 다시마 전 장 하나와 큼직하게 자른 감자를 넣고 끓인다.
2. 물이 끓으면 다시마를 건지고 면을 넣는다.
3. 물이 뽀얗게 변하면서 걸쭉한 국물이 생기기 시작할 때 애호박을 넣는다. 다진 마늘을 함께 넣어도 좋다. 애호박과 감자 대신 표고버섯과 쑥갓을 넣어도 잘 어울린다.
4. 국수 식감을 확인하고 불에서 내린 후 간장으로 간한다. 입맛에 따라 들기름을 더해 먹는다.

작가·PD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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