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군사기술까지 유출한 군 기강 해이, 쇄신이 시급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최근 군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져 국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교수의 학생 폭행에다 병사가 비밀인 암구호를 카톡방에 올리는가 하면, 육군 상병이 면담 중에 야전삽으로 여군 대위를 폭행하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극상, 성추행, 안전수칙 위반, 군 기밀 유출 등 헤아릴 수도 없다. 이런 가운데 국방과학연구소(ADD) 퇴직자가 68만 건에 달하는 국방과학기술 정보를 유출했다고 한다. 국방과학기술은 우리 안보를 보장하는 핵심이다. 사실이라면 우려를 넘어 안보의 기반마저 무너질 참사다.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ADD 고위직을 지낸 연구원이 퇴직 전에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첨단 자료를 USB 저장장치에 넣어 빼갔다는 것이 그 혐의다. 수사기관은 최근 퇴직한 연구원 20여 명도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국내 방산업체에 취직했으나 일부는 중동 지역 국가에도 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30여 년간 ADD에서 연구가 축적된 자료가 무단으로 빼내져 국내외 사기업체로 흘러들어간 구도다.

핵심 국방기술 유출 과정을 철저히 수사하는 게 우선이다. 국방부도 그렇지만 ADD 또한 부서마다 등록된 ‘보안 USB’를 1∼2개씩 사용한다. 보안 USB는 암호화돼 있어 일반 컴퓨터에선 작동이 안 된다. 외부에 가지고 갈 땐 일일이 신고한다. 반대로 일반 USB는 ADD 내부 컴퓨터에 끼워도 인식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ADD 기술 정보를 대규모로 외부에 유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ADD 내부 기술을 반출해 갔다면 매우 심각하다. 고도의 해킹 기법을 활용했거나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유출 배경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공무원 신분이 아닌 ADD 연구원들은 정년퇴직한 뒤 대부분 일자리가 없다. 방산업체 취업은 극소수다. 평생 무기만 연구해 일반 산업의 재취업도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최근엔 중동 등 일부 국가에서 고액의 스카우트 유혹도 이어진다. 우리 국방기술이 국내 방산업체도 아니고 해외로까지 빠져나간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 같은 문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선 국방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원에겐 정년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북한만 해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2만여 명이나 투입하고 있고, 정년도 없다고 한다. ADD 연구원 2500여 명의 10배에 가깝다. 한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산실이었던 ADD는 올해로 창립 50년을 맞는다. ADD 국방과학기술 유출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재발을 차단하되 신분 보장과 창의적인 구조 개선 등 근본적인 보완대책도 신경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