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감각과 경륜으로 봤을 때 김종인 말곤 대안이 없다.” (17일 중앙일보 통화)
“인제 그만 정계에 기웃거리지 말라.” (25일 페이스북)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을 향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대표의 평가가 8일새 돌변했다. 통합당의 총선 참패를 수습할 적임자로 김 전 위원장을 띄웠던 홍 전 대표는 입장을 바꿔 김 전 위원장의 뇌물 전력을 거론했다. 부정으로 얼룩진 인사가 당의 간판이 돼선 안 된다는 논리다.
8일새 돌변한 홍준표
홍 전 대표의 입장 변화 계기는 김 전 위원장의 24일 인터뷰가 주요 이유로 꼽힌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권 후보로 “가급적이면 70년대생 가운데 경제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이 후보로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지난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 시효는 끝났다고 본다”고 했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홍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이후 홍 전 대표의 비판 강도는 높아졌다. 페이스북에 “차떼기 정당 경력을 가진 우리당 대표를 뇌물 경력 있는 사람으로 채우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인가?”(25일), “정치판에서 개혁 운운하며 노욕을 채우는 것은 더는 용납할 수가 없다”(26일) 등이었다.
특히 홍 전 대표는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당시 김 전 위원장의 뇌물수수 자백을 자신이 직접 끌어냈다고 주장했다. 당시 주임검사이던 함승희 전 의원의 부탁으로 조사실에 들어가 “가인 김병로(초대 대법원장) 선생의 손자가 거짓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냐”고 말하자 김 전 위원장이 범죄사실을 털어놨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홍 전 대표에게 조사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8년 전 악연도 소환
일각에선 홍 전 대표의 날 선 비판 저변엔 8년 전 ‘김종인과의 악연’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012년 19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홍 전 대표와 새누리당 비대위원이던 김 전 위원장은 강하게 충돌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 침체한 당을 되살리기 위해 들어선 ‘박근혜 비대위’ 일원으로 한나라당에 몸담은 김 전 위원장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 인적 구조에 칼을 들이대는 등 이른바 개혁 작업을 주도했다. 당시 언론에선 비대위원 6인의 ‘무차별 난사(亂射)’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유탄은 홍 전 대표에게도 날아왔다. 당시 비대위에선 “현 정권 공신이나 당 대표를 지낸 사람들이 ‘우리 책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쇄신을 하면 누가 믿겠느냐”며 정권 실세 용퇴론을 제기했다. 이상득·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에서 여당 대표를 지낸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몽준·안상수·홍준표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홍 전 대표는 그 당시에도 김 전 위원장을 거세게 공격했다. 그는 “실세 용퇴론 주장에는 동의하나 김종인, 이상돈 두 위원이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김 위원은 (동화은행 뇌물사건으로) 수형까지 됐던 것은 공직 자격이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하지만 비대위의 거듭된 견제에 홍 전 대표는 19대 총선 공천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거취를 당의 판단에 맡겼고, 결국 서울 동대문을에 전략 공천됐지만 낙선했다.
‘김종인 흔들기’에 홍준표도 상처
홍 전 대표의 날 선 공세에 통합당 비대위원장 결정 여부를 하루 앞두고 김 전 위원장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당선자 총회를 열기 전에 전국위원회를 열어선 안 된다”(3선 의원 모임)는 주장도 나온다. 당내에선 ‘김종인 비대위’ 여부를 결정할 전국위가 성원이 안 돼 무산될 것이란 전망부터, 개최되더라도 부결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김 전 위원장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이 결국 홍 전 대표 자신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당내 비판도 상당하다. 정진석 의원은 26일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전 당 대표가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를 향해 쏟아낸 말들,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비판했다. 송파병에 출마했다 낙선한 김근식 교수는 27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 전 대표가 저런 행태를 계속한다면 당에 들어올 경우에 더 큰 화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