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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실 바닥엔 피범벅" 형제복지원 끔찍했던 증언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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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이의 사과 기자회견 중 오열하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가족들. 황선윤 기자

2018년 9월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이의 사과 기자회견 중 오열하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가족들. 황선윤 기자

국내 최대의 인권유린사건의 하나로 꼽히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공공기관 공식 보고서가 처음으로 나온다.

국내 최대 인권유린 형제복지원 사건 #부산시,대학에 맡겨 진상조사 용역 중 #강제구금·폭행·살인 등 상세기록 예정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진상 조사한 용역보고서를 오는 5월 말 발표할 예정이라고 27일 밝혔다. 앞서 오거돈 전 부시장은 2018년 9월 16일 “부산시는 형제 복지원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해 시민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피해자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부산시는 이어 진상조사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해 지난해 7월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24일 부산시의회에서 동아대 산학협력단이 맡은 용역 최종보고회를 가진데 이어 피해 규모와 피해지원 대책 등을 최종적으로 확정해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근거해 1975년부터 87년까지 12년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부산 사상구 주례동 형제복지원에서 총 3만7000명 이상을 수용해 불법감금과 강제노역, 구타, 살인·암매장이 자행됐던 사건이다. 1987년 35명이 집단탈출해 한명이 사망하면서 복지원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공식적인 사망자 수만 513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제복지원이 운영될 당시 강제수용된 아이들의 모습. 형제복지원 자체 기록에는 12년간 운영되며 513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중앙일보 DB]

형제복지원이 운영될 당시 강제수용된 아이들의 모습. 형제복지원 자체 기록에는 12년간 운영되며 513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중앙일보 DB]

용역보고서 내용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배경과 위법성,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 후속대책 및 제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피해자 실태 조사는 피해자로 신고된 일부인 149명(남 143명, 여 6명)에 대한 설문조사, 이들 가운데 21명과의 심층 면접으로 이뤄졌다.

보고서의 증언 중에는 “원장실 바닥에 피가 범벅돼 있었다”“원장실엔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이 30개 걸려 있고, 형사실의 취조실처럼 만들어놨다”“내 손으로 매장했는데, 지금도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나고 술 마실 때도 생각난다”“형제복지원에서 성폭행을 당해 아이까지 출산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양이 돼버렸다” “강제 낙태를 당했다” 같은 끔찍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용역팀이 조사한 피해자 149명 가운데 수용자들은 당시 15세 이하가 74.5%로 가장 많았으며, 79.7%는 납치 또는 강제 연행으로 수용됐다고 말했다. 성추행(38.3%), 강간(24.8%) 등 성 학대가 빈번했고, 자상(67.2%)을 비롯해 평균 4.7개 신체 부위를 다쳤다. 수용 기간 시설 내에서 사망자를 보거나 직접 들은 경험은 83.2%에 달했고, 3.4%는 사망자 처리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고 답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런 형제복지원의 실상은 『살아남은 아이』(2012, 전규찬, 한종선), 『숫자가 된 사람들』(2015, 형제복지원 구술 프로젝트) 등에도 기록돼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용역보고서는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배상을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 등은 지지부진하다.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요구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등으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으나 2019년 10월 ‘과거사정리법’이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이번 20대 국회에서 통과가 불가능해 21대국 회에서 다시 법 제정이 이뤄져야 할 상황이다.

법무부 과사위원회도 특별법 제정과 추가 진상규명, 피해보상을 주문해 검찰이 당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비상상고 했지만, 아직 대법원이 심리 중이다. 박 원장은 2016년 사망했으며, 해당 복지법인은 명칭이 몇 차례 바뀐 뒤 2015년 법인설립허가 취소로 해산하고 없다.

당시 검찰의 수사를 받은 박 원장은 상고심을 거쳐 원심파기까지 7차례 재판을 받았지만, 대법원이 1989년 7월 횡령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형(2년 6월)을 선고했다. 특수감금 혐의는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 따른 부랑자수용이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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