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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이헌재의 ‘코로나 경제’ 타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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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위기 때 사람들은 현자에게 길을 묻는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섭다는 코로나 경제 위기가 시작됐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도 대한민국은 풍랑 속 일엽편주와 같이 위태로웠다. 당시 한국호의 일등항해사는 이헌재(76) 전 경제부총리였다. 이헌재는 경제 대란을 한가운데에서 타개하고 전화위복으로 바꿔낸 위기 관리의 살아 있는 교과서다.

“국난 돌파하는 데 600조원 필요해 #페스트 버텨낸 뒤 르네상스 꽃펴” #위기 시대엔 현자에게 길 물어야

4·15총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세력은 무슨 사안이든 자체적으로 결정해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확보했다. 그렇다 해도 청와대와 민주당이 이헌재 전 부총리를 청해 경험에 바탕한 조언을 지속적으로 들었으면 한다. 국민을 이끌고 죽음의 계곡을 건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위험한 미로에선 중구난방식 다수결보다 성공해 본 경험자의 길 안내를 받는 게 낫다. 이헌재의 통찰력은 나침반으로 삼을 만하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코로나 경제를 헤쳐 나가는 데 정부가 준비해야 할 현금 실탄을 최소한 600조원으로 추산했다.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 이유는 코로나 경제 침체가 97년의 외환 위기나 2008년의 금융 위기보다 심각하리라는 예측 때문이다. 그때 썼던 공적자금이 국내총생산(GDP)의 30%에 해당하는 160조원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 경제의 GDP 규모가 1조7000억 달러이니 30%인 600조원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헌재는 과거를 회상하며 “살릴 만한 기업 및 금융에 투입하는 공적자금만 처음에 100조원을 예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결국 160조원이 되었다. 사회적 복지 비용은 뺀 액수”라고 했다. 요컨대 위기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불확실성의 시대엔 실탄을 최대한 비축해 예기치 못한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엊그제 청와대와 민주당이 홍남기 기재부 장관의 팔을 비틀고 소득 상위 30% 계층의 억지 기부까지 받아 관철시키기로 한 ‘국민 100% 재난지원금’은 12조원이다. 청와대는 5월 중 전 국민 지급을 지상 목표처럼 밀어붙이고 있는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12조원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향후 들어갈 600조원의 자금 마련 계획을 이 정권이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라 곳간의 관리인이자 경제 책임자인 홍남기 장관은 등에 식은땀이 날 것이다. 앞으로 무수하게 쏟아져 나올 기업 도산, 가계 대출, 대량 실업, 구조조정에 투입될 비용을 어떻게 염출할 요량인가.

그래서 콩나물값을 깎는 주부의 심정으로 추경예산안 12조원 중 1조원만이라도 지방정부가 부담하도록 요구했는데 그것마저 이재명 경기지사가 거부해 무산됐다. 이 지사는 거부 이유를 “(경기도민 긴급지원용으로) 가용 자원을 최대한 긁어모았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여력이 전혀 없다”(24일 페이스북)고 밝혔다. 이 지사의 거부 이유는 나름 타당하다. 동시에 이재명의 진실이 드러난 점도 중요하다. 경기도민 1300만 명한테 10만원씩 주느라 1조3000억원의 예산을 풀었더니 더 이상 쓸 돈이 없어졌다는 현실이다. 이재명은 앞으로 경기도에 추가 재난이 닥치거나 지역 중소기업 혹은 자영업자를 위한 긴급 금융지원이 요청되거나 불가피하게 집행해야 할 사업 예산이 발생할 때 한 푼도 쓰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사정이야 그렇다 쳐도 같은 일이 중앙정부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중앙정부마저 전 국민에게 재난 자금 한 번 푼 뒤 더 이상 돈 쓸 여력이 없다고 손드는 일이 벌어져선 곤란하다. 그래서 집권층에게 현자의 지혜를 구해 보라는 것이다. 이헌재는 나라 살림을 거덜내지 않고 600조원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에 페스트가 지나간 뒤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다. 위기는 위장된 기회다. 코로나 시기를 버티면 한국은 더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