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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 정권의 어떤 급변 가능성에도 철벽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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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건강 이상설’에 휩싸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활동 소식이 보름 넘게 끊어진 가운데 그의 생사 여부를 놓고 추측 보도가 난무하면서 혼란이 증폭되고 있다. 핵을 가진 북한의 최고 지도자 ‘유고’설은 진위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큰 불안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정부와 유관국 및 국제사회의 냉정한 대처가 절실하다.

김정은 안위 예단은 금물이나 #급변사태 대비엔 만전 기해야 #한·미동맹 재건해 근간 삼기를

김 위원장이 북한의 최고 국경일인 ‘태양절(김일성 생일)’에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점에서 그의 신변에 뭔가 이상이 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평양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한 안보와 남북관계에 중대 변화를 가져올 상황을 섣불리 예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만에 하나 김 위원장의 ‘유고’를 포함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우리의 안보와 국익을 수호할 대책 마련에는 만전을 기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여섯 차례 핵실험을 통해 30여 기의 핵탄두를 축적한 핵보유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북한에 힘의 공백이 생길 경우 북한 전역에 은닉돼 있을 핵무기의 안전 확보가 발등의 불로 떠오르고, 중국의 입김이 강화되는 등 동북아 정세가 요동칠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는 지난 3년간 외교·안보의 핵심 역량을 남북교류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한·미 동맹의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기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이 휴지 조각이 될 뻔한 위기를 맞으면서 한·미·일 협력도 허술해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에 급변사태가 터질 경우 우리가 의지할 가장 중요한 보루는 역시 한·미 동맹일 수밖에 없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의지는 아랑곳없이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전형적 무대가 한반도다. 철저하게 국익만을 잣대로 행동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급변사태를 당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려 들 것은 자명하다. 특히 북한의 안정을 자국의 사활적 이해로 간주해 온 중국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북·중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켜 왔다. 북한 정권이 붕괴 위기를 맞을 경우 중국군이 평양~원산 선까지 진입한 뒤 평양에 친중 정권을 세울 수 있다는 설이 나올 정도다. 따라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우리의 선택은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초로 중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실현에 노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국과 물샐틈없는 공조 아래 ‘충무·부흥계획’ 등 그동안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해 수립해 둔 작전 계획을 재점검하고, 주시→대비→액션(행동) 등 상황별로 작성해 둔 시나리오를 현실화할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한·미 연합방위 태세도 어느 때보다 더 굳건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조속히 타결짓는 게 적절하다.

마침 27일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합의한 4·27 선언 2주년이다. 김 위원장의 동태가 심상치 않은 데다 미국이 대선 정국이라 생산적 대화가 재개되기란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정부는 북한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하되, 코로나 방역 협조 등 인도적 문제를 고리로 대화를 시도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