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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른 정 vs 낳은 정, 두 엄마의 선택은 이유가 분명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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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부모란 뭘까, 가족이란 무엇으로 지탱되는가. 23일 개봉한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감독 바트 프룬디치)이 담아낸 고민이다. 상영시간 110분을 채운 사연도 극적이다.

새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아동 재단 거액 기부자 알고 보니 #20년 전 사랑했던 남자의 아내

인도에서 고아원을 운영 중인 이자벨(미셸 윌리엄스)은 재정난에 허덕이던 중 미국의 세계적 기업 대표 테레사(줄리안 무어)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제안받는다. 단, 이자벨이 뉴욕에 와야만 한다는 조건이다. 하는 수없이 뉴욕에 간 이자벨은 테레사의 딸 그레이스(애비 퀸)의 결혼식까지 초대받는다. 그곳에서 이자벨은 20년 전 자신이 등졌던 남자 오스카(빌리 크루덥), 그리고 평생토록 가슴에 묻어온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 여자인지 몰랐어.” 그날 밤 테레사는 남편 오스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정말 몰라서, 남편의 옛 연인을 불러놓고 행복에 겨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 걸까. 당장에라도 인도로 돌아가고 싶은 이자벨을 붙잡는 건 고아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릴 후원금이다.

영화에서 흥미를 더하는 건 여성들의 각기 다른 선택. 이자벨과 테레사는 각자 소신껏 일하며 살아왔다는 점은 닮았지만 ‘엄마’로서 걸어온 길은 달랐다.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인도 시골과 모든 것이 완벽히 짜인 뉴욕 최상류층의 극과 극인 삶처럼 말이다.

영화의 주연 줄리안 무어(오른쪽)가 남편 바트 프룬디치 감독과 제작까지 겸했다. [사진 영화사진진]

영화의 주연 줄리안 무어(오른쪽)가 남편 바트 프룬디치 감독과 제작까지 겸했다. [사진 영화사진진]

오래전 인도에 정착한 독신자 이자벨은 길에서 발견한 한 살 아기 제이를 8년째 친아들처럼 보살피고 있다. 숲이 산새를 품듯 아이가 원하는 삶의 곁을 지켜주는 방식이다. 테레사는 완벽한 ‘워킹맘’을 추구해왔다. 그는 미국 최대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한 지금의 회사를 22년 전 맨손으로 설립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한 살 딸을 둔 조각가 남자와 사랑에 빠져 낳은 쌍둥이 아들들까지 세 아이를 부족함 없이 보호하며 키워왔다.

“엄마 역할에 대해 잔소리하지 마. 그런다고 당신이 더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내 기억엔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어. 입 딱 다물고 산송장처럼 있었잖아.” 각자 입장차에 따른 가족들의 엇갈린 대사가 공감된다. 부모·자식 관계를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풀어낸 대사도 인상 깊다. 인제 와서 테레사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이자벨을 향한 그의 진짜 속내는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진다.

감정의 결을 살린 연기도 돋보인다. 테레사 역의 줄리안 무어는 연출을 맡은 바트 프룬디치 감독과 부부 사이. 남편의 데뷔작 ‘사랑의 이름으로’(1997) 주연으로 만났다. 무어는 “일과 가정을 모두 중요시하는 그런 인물을 대변한 것 같아 이 캐릭터가 좋았다”고 했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등의 연기파 미셸 윌리엄스도 이자벨의 변화무쌍한 마음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아역들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여성의 심리를 잘 표현한 이 영화는, 두 남성이 주인공인 덴마크 원작 영화의 성별을 바꿔 리메이크했다.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애프터 웨딩’(2006, 감독 수잔 비에르)이 토대다.

프룬디치 감독은 “제작자가 이 영화 리메이크를 제안했을 때 명분을 찾기 어려웠다. 이미 훌륭한 작품이어서다”라며 “‘크로스 젠더’ 리메이크를 할 경우 영화 속 여성들의 중요한 선택과 그 결과를 통해 현시대의 분위기를 더 잘 반영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남편과 제작까지 겸해 각본 작업부터 지켜본 줄리안 무어는 “주인공이 여자라서 ‘선택’의 명분이 더 필요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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