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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견디면 일타강사"···직장 그만 두고 삽자루 밑으로 갔다

중앙일보

입력

사교육 업계에서 막대한 부와 인기를 누리는 일타강사. 업체들은 수백억의 계약금을 감수하며 일타강사 영입 전쟁을 벌입니다. 그만큼 일타강사가 몰고 다니는 수강생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이죠.

<일타강사의 세계> '강사학원'을 가다

과연 누가, 어떻게 일타강사가 되는 걸까. 중앙일보 교육팀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2월 말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강사학원 ‘에꼴 사브로’를 찾았습니다. ‘삽자루’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전 일타강사, 우형철씨가 이곳에서 스타강사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요.

매일 밤 10시까지 '연습생' 교육

오전 9시 전부터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청년들이 강의실에 모여있었습니다. 청년들은 “선생님(삽자루)이 강사는 남들에게 보이는 직업이니 옷차림부터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합니다.

곧이어 삽자루 우형철씨가 나타나자 수강생들은 칠판 앞에 서서 판서 연습을 시작합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1시간씩 판서 연습을 하는데요. 교재 연구, 강의 연습 및 촬영, 수강생 간 토론에 이어 자율학습까지 하고 나면 오후 10시가 돼야 일과가 끝나죠.

치열한 선발 과정을 뚫고 들어온 수강생들은 따로 수업료를 내지 않습니다. 커넥츠 스카이에듀에서 비용을 지원하죠. 스타강사를 발굴하기 위한 투자인 셈입니다. 우형철씨에게 물었습니다.

'에꼴사브로'에서 스타강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는 수강생들이 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남윤서 기자

'에꼴사브로'에서 스타강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는 수강생들이 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남윤서 기자

SM·JYP같은 연예기획사와 비슷한 것 같은데
똑같죠. 학원에서는 스타강사가 필요한데, 이제는 유명 강사 하나 데리고 오려면 계약금으로 200~300억 줘야 할 겁니다. 엄청난 비용인데, 이제 그런 강사도 시장에서 다 쓸어가서 남아있지 않아요. 그러면 방법은 새로운 강사를 키울 수밖에 없는 거죠.
연예인처럼 강사도 외모가 중요한가요
그럼요. 실력은 노력하면 늘지만, 외모는 바뀌지 않잖아요.
삽자루 선생님이나 예전 일타강사들도 외모가 뛰어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예전엔 송대관, 이미자가 최고의 가수였어요. 그땐 가창력만 필요했죠. 지금은 가수에게도 가창력뿐 아니라 종합 엔터네이너가 되길 요구하잖아요. 강사도 똑같아요. 소비자가 요구하는 게 시대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에꼴 사브로를 졸업한 수강생들은 스카이에듀 등 여러 학원의 강사로 진출합니다. 수강생들은 주 5일, 1년간 빠짐없이 강사 수업을 받아야 졸업할 수 있습니다. 불성실한 수강생은 바로 퇴출당합니다. 고3보다 빡빡한 일정입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너무 고된 일정 아닌가요
경험상 보통 ‘쓸만한’ 강사가 되려면 한 7년 걸리는데 이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려고 하니까. ‘수학을 왜 가르치나’ 깨닫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요. 우리는 집단지성으로 시간을 단축해요. 한 팀이 삼각함수, 다른 팀이 로그를 맡아서 책과 논문을 뒤지며 연구하죠. 그런 다음 토론하면서 새로운 걸 깨달아요. 제가 30년 강사 하면서도 몰랐던 걸 얘기하는 친구도 있어요.
2000년대 누구나 인정하는 일타강사였던 '삽자루' 우형철씨. 남윤서 기자

2000년대 누구나 인정하는 일타강사였던 '삽자루' 우형철씨. 남윤서 기자

삽자루는 2000년대 자타 공인하는 수학 일타강사였습니다. 구수한 입담과 핏대를 올리며 설명하는 열정적 강의가 트레이드 마크였죠.

삽자루 하면 ‘수포자의 구세주’라 불렸어요 
에이 아녜요. 그냥 내가 있던 회사가 그렇게 컨셉을 붙여준 거지….
그래도 삽자루가 설명하면 수포자도 알아듣기 쉽다는 얘기 많았어요
문제를 푸는 단계가 1부터 10까지 있다면, 최상위권을 가르치는 강사는 앞부분 한 5단계는 생략하고 강의해도 돼요. 잘 푸는 팁만 주면 되죠. 근데 대부분 학생은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아요. 이 학생들에겐 중고교에서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마침 제가 추구하던 스타일이 그랬기 때문에 맞아 떨어진 거죠. 또 제가 30대 때 '말빨'은 최고였거든요.
그 말발은 타고나는 건가요
타고난 '말빨'은 오래 못가요. 노력으로 극복해야죠. 운전할 때도 저는 내가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가르칠 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요. 내가 가르칠 애들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애들이 좋아하는 게임, 연예인을 알아야 돼요. 수업 전에 이 부분에서 어떤 '드립'을 친다, 무슨 농담을 한다. 대본을 짜야죠.
수십 년 강사를 했는데도 대본을 짜나요
애들은 계속 바뀌잖아요. 가장 핫한 노래가 작년 올해 다른데. 애드립과 농담을 포함해서 수업을 위한 모든 노력이 교재 연구인거죠. 커뮤니티 ‘눈팅’도 열심히 해야돼요.
에꼴사브로 수강생이 강의 연습을 하고 있다. 남윤서 기자

에꼴사브로 수강생이 강의 연습을 하고 있다. 남윤서 기자

온종일 강사 훈련을 받는 수강생 중에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온 청년도 있었고, 강사 생활을 하다가 ‘재훈련’을 받으려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신희철(25)씨는 휴학 중인 대학생이지만 강사가 되기 위해 대학 졸업장도 포기했다는데요.

그래도 대학은 졸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올해가 휴학 제한 마지막인데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기계과인데 3~4학년 과목은 사실 수학 강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수학 인강 강사로 살자고 결심했기 때문에 제 인생만 보면 졸업장 딸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강사가 되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시골 출신이라 주위에 좋은 학원이 없었어요. 그래서 인강을 처음 봤는데, 너무 잘 가르치고 멋있어 보였죠. 그때부터 나처럼 시골 애들한테도 강의 들려주는 ‘인강 강사’가 꿈이었죠.  
시골 학생들도 수준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수강생 신희철씨. 남윤서 기자

시골 학생들도 수준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수강생 신희철씨. 남윤서 기자

스타가 되는 게 목표인가요
스타가 되면 좋겠죠. 근데 스타가 되기 위한 강의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강의를 하고 싶어요. 인터넷에서 더 많은 학생, 시골에 있는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싶어요. ‘교육의 평등’이란 숭고한 가치 때문에 강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게 좋아요.
사교육 강사를 나쁘게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물론 강사는 돈 받고 강의하는 직업이고, 교사와는 다르죠. 강남에서 소논문 스펙 만들어주는 강사도 있는데, 전 그런 건 하기 싫어요. 모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강 강사가 되고 싶어요. 사교육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인강 강사는 그런 면에서는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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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삽을, 한 손에 분필을 들고 거친 말을 섞어가며 강의하던 전 일타강사 우형철씨. 그 이면에는 더 좋은 강의를 위해 교재를 연구하고 학생들을 연구하는 노력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내일의 스타강사가 되겠다는 청년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본 취재 및 인터뷰는 지난 2월 말 진행됐습니다. 우형철씨는 현재 뇌출혈로 쓰러져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남윤서·전민희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영상=김한솔·박승영·정수경, 그래픽=이경은·황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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