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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생존기] "마스크 16만장 3억에 만들어달라" 시장상인 살린 교육청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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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도 충분히 마스크나 가운 같은 방역 물품을 만들 수 있는 데 부족한 관심이 너무 아쉽습니다." 손중호(70) 광주광역시 시장연합회 회장은 지난 1일 상인회원들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수급난에 빠진 광주시교육청에 자체제작한 면 마스크 16만장을 납품했었다.

코로나19에 매출 직격탄 맞은 재래시장 #광주시교육청 마스크 납품계약 제시하자 #시장 상인들끼리 납품 물량 나누며 제작 #광주 학교에 보내질 면 마스크만 16만장

코로나 직격탄 맞은 재래시장 면 마스크 16만장 납품

손중호 광주시 상인연합회장. 사진 광주시 상인연합회

손중호 광주시 상인연합회장. 사진 광주시 상인연합회

 지난 3월 광주시교육청 직원들이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 있는 광주시장연합회 사무실을 찾아와 "마스크를 만들 수 있냐"고 물어왔다. 손중호 회장은 "광주시교육청의 제안은 그야말로 목마름에 물을 적셔준 격이었다"며 "재래시장에서 하겠다. 우리가 해보겠다고 해서 계약부터 덥석 받았다"고 했다.

 양동시장은 광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쩍 손님이 줄었다. 수산물·정육·채소·잡화 등 대부분 상점의 매출이 뚝 떨어졌다. 손중호 회장이 운영하는 의류점도 코로나19 사태 전보다 90% 가까이 손님이 줄었다.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광주시교육청에 납품할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광주시교육청에 납품할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오랜 세월 재봉 일을 해온 상인들이라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손중호 회장은 "광주시교육청에 우리가 하겠다고 약속한 뒤 시장 내 방송 마이크부터 붙잡고 마스크 만들 상가를 모집했다"며 "손님은 없고 임대료는 내야 하는데 마스크 16만장 계약이면 상인들 숨통이 트일거라 봤다"고 했다. 손중호 회장과 시장연합회가 나서면서 면직물 재봉이 가능한 커튼·이불·수선 등 상점 8곳이 면 마스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처음 마스크를 만들 때 어려움도 있었다. 마스크용 원단 수급이 쉽지 않았다. 마스크 시제품 생산도 만만치 않았다. 손 회장과 상인연합회 사람들은 마스크 생산 경험이 있는 의류 업체와 협업해 부족한 기술력을 극복했다. 면 마스크가 오염물질 차단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만큼 필터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기능도 더했다.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광주시교육청에 납품할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광주광역시 양동시장 상인들이 지난달 30일 광주시교육청에 납품할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광주시교육청

"다른 곳 가격의 절반 이하, 재래시장이니까 가능"

 마스크 1장당 납품단가는 1750원이다. 손 회장은 "재래시장이니까 가능한 가격"이라며 "다른 곳에서 3000원, 5000원 받을 일이라면 우리는 절반 혹은 그 아래로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납기일도 빠듯했지만, 시장상인들이 밤낮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서로 일감을 나눠가며 해결했다. 상점마다 재봉이 가능한 옆집에 물건 납품을 나누고 나누면서 애초보다 2배 많은 20곳의 상점이 면 마스크 제작에 뛰어들었다. 손중호 회장은 "면 마스크를 만드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인데 받아온 원단을 서로 옆집에 가져다주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마스크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고 했다.

 광주시교육청이 면 마스크 제작을 의뢰할 당시 초·중·고 개학 예정일은 4월 6일이었다. 광주시교육청에 상인들에게 건네받은 마스크를 포장해서 각지 학교로 보내는 과정까지 고려해 16만장의 면 마스크를 일주일 내로 만들어야 했다. 양동시장 상인들은 이번 면 마스크 납품계약으로 2억8000만원을 받았다.

 손중호 회장은 "광주시교육청에 8곳 상점이 독점 납품하기로 계약했지만, 총 20곳이 면 마스크 제작에 참여했다"고 했다. 빠듯한 일정의 납품기일 조건이었기 때문에 제때 면 마스크를 학교에 건네주지 못할 것을 걱정한 상인들이 욕심부리는 대신 납품 물량을 다른 상점에 나눠준 것이다.

지난 1일 광주시교육청 직원들이 양동시장 상인들이 납품한 면 마스크를 각급 학교에 보내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일 광주시교육청 직원들이 양동시장 상인들이 납품한 면 마스크를 각급 학교에 보내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재래시장도 마스크·가운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재래시장이 할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도 했다. 손중호 회장은 "너무 전문적인 방역 장비는 어렵겠지만, 이번처럼 의료진들의 마스크, 가운, 장갑 등은 우리도 만들 수 있다"며 "재래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하고 대기업부터 먼저 찾는 점에 야속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했다. 손중호 회장은 시장상인들과 또 마스크를 제작해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개학을 앞두고 마스크 수급에 고민하던 교육현장도 덕분에 한시름 놨다. 광주시교육청은 지난달 31일 양동시장 상인들에게 납품받은 면 마스크 16만장을 3일에 걸쳐 포장한 뒤 각급 학교로 보냈다. 시교육청이 코로나19 사태 직후 각급 학교에 방역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학생 1명당 3000원의 예산을 보내긴 했지만, 턱없이 모자라 걱정하던 와중에 납품된 마스크들이었다.

 광주시교육청은 양동시장 상인들에게 받은 면 마스크를 포함해 개학 전까지 면 마스크 41만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비축용 보건 마스크 62만장, 보급용 일반마스크 26만장도 확보한다.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지금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긴 하지만, 양동시장에 제안할 당시에는 더 어려웠다"며 "광주시교육청이 자체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 만큼 어려운 재래시장 상인들과 상생하는 방안으로 면 마스크 납품계약을 추진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상생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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