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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자유는 사람들이 듣기 싫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다…조지 오웰의 직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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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호 12면

[박보균의 현장 속으로-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조지 오웰의 ‘정치와 말’ 서거 70년 맞아 조망하다

런던의 BBC 건물 외벽에 새겨진 오웰의 '자유론', 앞은 그의 동상. ’자유가 무엇인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다“.

런던의 BBC 건물 외벽에 새겨진 오웰의 '자유론', 앞은 그의 동상. ’자유가 무엇인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다“.

자유는 도전적이다.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통찰은 선명하다. “자유가 무엇인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다.”

스페인 내전서 ‘혁명의 배신’ 경험 #『동물농장』 통해 불편한 진실 폭로 #『1984』 악몽은 역사와 언어 개조 #황교안은 매력적 구호 생산 못해 #언어 운용의 빈곤 탓에 총선 참패 #거대 국가의 디지털 감시·정보 독점 #코로나 19에 ‘IT 빅 브러더’ 그림자

오웰은 말과 정치의 관계를 추적했다. “정치 혼란은 언어의 쇠퇴와 결부돼 있다(『정치와 영어』).” 지도력의 위축은 말의 빈곤 탓이다. 오웰은 좌파 사회주의자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거기서 혁명의 배신을 경험한다. 그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유사성을 간파했다. 그의 소설 『1984』는 냉혹한 상상력의 절정이다. 코로나19 방역 전선은 강력한 통제 리더십을 요구한다. 그 속에 깔린 ‘빅 브러더(Big Brother)’의 그림자는 불길하다. 오웰의 매력은 풍부하다. 나는 오랫동안 오웰을 찾아다녔다. 올해가 오웰 서거 70주년이다.

BBC 앞 오웰 동상, 언론 자유를 말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반, BBC 방송국에 근무할 당시의 조지 오웰.

제2차 세계대전 중반, BBC 방송국에 근무할 당시의 조지 오웰.

오웰의 ‘자유’는 영국 런던의 BBC방송본부 건물 외벽에 새겨져있다. 그 앞은 그의 동상(2017년 11월 건립). 글귀는 그의 『동물농장(Animal Farm)』 서문(‘언론의 자유’)에서 따왔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2년간 BBC에서 일했다(선전담당 프로듀서). 그의 사무실은 101호. 『1984(Nineteen Eighty-Four)』의 고문실 번호와 같다.

『동물농장』은 우화(寓話)다. 지도자 돼지(나폴레옹)는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소설은 스탈린 체제의 잔혹한 공포와 억압을 풍자한다. 민중은 고난과 착취의 늪에서 허덕인다. 나는 코로나 창궐 전에 BBC에 갔다. 동행한 데론 파머(61·길드홀겔러리 연구원 출신)의 설명이다. “『동물농장』은 공산주의 환상에 대한 공세적 도전이었다. 그 시절 유럽은 친(親)소련 지식인들로 넘쳤다. 그 때문에 출판이 1년6개월 늦춰졌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BBC와 오웰은 애증 관계였다. 동상건립은 곡절을 겪었다. 동상은 사실적이다. 큰 키(1m88cm)에 깡마른 체형, 손가락 사이 담배꽁초, 구겨진 양복, 배추머리다. 파머가 덧붙인다. “걸출한 조각가 마틴 제닝스는 오웰의 특징적 인상을 포착해 동상에 담았다. 오웰은 지나가는 BBC 기자들에게 저널리즘 가치를 지키라고 시위하는 듯하다.”

조지 오웰은 필명이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그는 인도(벵골)에서 태어났다(1903년). 인도·버마(현 미얀마)는 영국 식민지였다. 그는 명문 이튼스쿨을 나왔다. 졸업 후에는 버마 경찰관(19~24세)이다. “경찰본능은 오웰에게 사물이 겉과 다르며, 정밀한 탐사·조사만이 진실을 생산한다(yield the truth)는 점을 알려주었다(영국 저널리스트·역사가 폴 존슨 『지식인』).” 식민 제국주의는 환멸이었다. 그는 경찰을 떠났다. 이젠 작가의 길이다. 그는 밑바닥 삶에 몰입했다. 그것은 탄광촌 광부·노동자·접시닦이다. 그는 현장 체험 없이 글을 쓰지 않았다. 폴 존슨은 “『동물농장』·『1984』의 통찰·상상력은 현장 경험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런 글쓰기가 그의 경쟁력이다.

1936년 7월 스페인 내전이 터졌다. 프랑코 군부의 반란이다. 인민전선(좌파연대) 공화정부 대(對) 우파(군부·팔랑헤당) 국민전선의 충돌이다. 20세기 모든 이념이 격전지에 출동했다. 스페인 내전은 6·25전쟁과 비슷하다. 이념의 집단적 광기(狂氣)는 동포애를 파괴한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의 좌파 의용군 오웰이 싸웠던 아라곤 전선의 알쿠비에레 진지(2005년 복원).

스페인 내전의 좌파 의용군 오웰이 싸웠던 아라곤 전선의 알쿠비에레 진지(2005년 복원).

오웰은 바르셀로나에 갔다(36년 12월). 그곳은 카탈루냐 지방 중심. 그는 신문기사를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총을 들었다. 그 경험담이 논픽션 『카탈루냐 찬가(Homage to Catalonia)』다. 세상이 뒤집혔다. 바르셀로나는 노동자 해방의 혁명도시다. 격식·관행은 깨졌다. 서로가 동지(comrade)로 불렀다. 그는 마르크스 통일노동자당(POUM)·의용군(militia)으로 입대했다. 1937년 1월 오웰은 아라곤(Aragon)전선에 투입됐다.

나도 아라곤으로 떠났다. 코로나19 사태 오래전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북서쪽 320여㎞. 역사관광 가이드 후안 알론소(59·미술품 판매상)의 운전은 차분하다. 사라고사 방향 고속도로(AP-2)에 올랐다. 3시간20분쯤 달렸다. 목적지가 불쑥 나타난다. 작은 마을 알쿠비에레(Alcubierre). 차는 다시 1.5㎞ 쯤 산등성이(해발 500m)로 올라간다. ‘오웰 도로(Ruta de Orwell)’표식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내려 200m쯤 거리. 오웰의 산악진지(몬테 이라조)다.

인민전선 깃발이 걸렸다. 빨강-노랑-보라색이다. 안내판은 이렇다. “파시즘의 프랑코에 맞서 싸운 영국 소설가 오웰, 이 길은 스페인 현대사 기억의 여정이다. 우리 선조들이 직면했던 시대와 삶의 조건을 떠오르게 한다.” 진지는 복원됐다. 모래주머니·나무·돌로 만든 참호. 바리케이드, 철조망으로 꾸며졌다. “오웰은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안내판 문구가 참호 속에서 실감난다. 오웰의 부대는 ‘오합지졸(rabble)’이었다. 과반수가 10대 소년들. 총은 녹슬고 낡았다. “전쟁의 냄새는 똥과 음식 썩는 악취였다(『카탈루냐 찬가』).”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 신념을 다졌다. “의용군 체제의 민주적이고 혁명적 방식의 규율은 예상보다 믿을 만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오웰 진지’ 프랑코 땐 불가능한 역사 귀환

오웰의 겨울 진지는 추웠다. 내가 갔을 때는 늦봄. 풍광은 푸르다. 모양은 80년 전과 비슷하다. “키 작은 관목들, 나선형 산허리, 가파른 경사, 흰 뼈처럼 드러난 석회암.” 가이드 알론소가 설명한다. “진지는 오웰 탄생 100주년(2003년)때 시작해 2년 뒤 완성했다. 프랑코 시대엔 상상할 수 없는 인민전선 역사의 귀환이다.”

‘알쿠비에레 산속 조지 오웰’ POUM의용군 활약 안내판.

‘알쿠비에레 산속 조지 오웰’ POUM의용군 활약 안내판.

참호의 구멍을 들여다봤다. 반대편 산등성이 한쪽이 200~300m쯤 멀리 펼쳐진다. 나는 소설 장면을 흉내냈다. 적군을 향해 함성지르기다. ‘비스카(Visca 만세) POUM! 파시스타스 마리코네스 (Fascistas maricones! 파시스트는 호모).’ 1937년 5월 오웰은 테니엔테(teniente·병사 30명) 지휘관(소위)이다. 그는 목에 총탄을 맞았다. 총알이 동맥을 1mm 쯤 빗나갔다. 기적적으로 살았다.

그동안 바르셀로나의 ‘내전 속 내전’은 악화됐다. 소련 지원의 공산주의자들 득세다.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통일노동자당 당원은 투옥·숙청됐다. 그들은 ‘프랑코 앞잡이, 트로츠키 오열’로 몰렸다. 오웰은 람블라스 거리를 방황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탈출했다. 영국으로의 귀향에 성공했다.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골목 안 ‘조지 오웰 광장’과 박보균 대기자.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골목 안 ‘조지 오웰 광장’과 박보균 대기자.

람블라스는 바르셀로나의 낭만을 압축한다. 골목에 ‘조지 오웰 광장’이 있다. 동네 놀이터 크기. 초현실주의자 L.크리스토폴의 조형물(전체 8m)이 서 있다. 원형의 돌을 쇠파이프가 힘차게 감고 올라간다. 오웰의 진실 추적 열정과 고뇌가 드러낸다.

옆 아파트에 붙은 광장 표식.

옆 아파트에 붙은 광장 표식.

오웰은 고백한다. “『카탈루냐 찬가』는 솔직히 정치적이다.” 그는 자부한다. “이 책에서 나의 문학적 본능을 어기지 않고 모든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했다(『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 그것은 전체주의 본질의 해부·폭로다. 프랑코·히틀러의 파시즘과 스탈린 공산주의의 작동원리는 비슷하다.

어떤 책도 정치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1927년 말 오웰의 하숙집(런던 노팅힐)

1927년 말 오웰의 하숙집(런던 노팅힐)

『1984』는 최후 승부수였다. 그는 결핵을 앓았다. 1946년 외딴 곳에 갔다. 스코틀랜드 서쪽 주라(Jura)섬의 반힐(Barnhill). 그는 거기서 그 책을 완성했다(1948년 12월). 병세가 악화됐다. 50년 1월 그는 숨졌다.

하숙집 2층에 붙은 푸른색 기념판.

하숙집 2층에 붙은 푸른색 기념판.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 가상 국가다. 그곳의 1984년은 암울하다. 국민 지배·감시 시스템은 섬뜩하다. “빅 브러더(대형)가 너를 지켜본다!”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Thought Police)’이 동원된다. 권력 장악·통제 수단은 교묘하다. 역사와 언어의 변조·재편이다. 기억은 조작된다. ‘가짜 과거’의 등장이다. 구호는 그 의도를 압축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 슬로건은 대칭적 역설이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노예다. 무식함은 힘이다.” 신어(newspeak)는 언어구조를 단순화한다. ‘이중사고(double think)’는 말의 감각을 제거한다. 반(反)체제 어휘는 소멸한다. 가상의 미래 『1984』는 디스토피아적 절망이다. 북한 세습독재는 그 장면들을 떠올린다.

『1984』는 묵시론, 그런 일 없도록 하라

자유 질서가 언어를 풍요롭게 한다. 역사 개조의 유혹은 『1984』의 음모만이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있다. 한국 현대사 논쟁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의 나라 만들기, 박정희의 산업화는 상처투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바꾼다. 자유와 개방은 시련 속이다. 중국 방역체제는 거대 국가의 통제·디지털 감시·정보 독점이다. 중국식 ‘IT 전체주의’ 논쟁은 ‘빅 브러더’를 소환한다.

오웰의 감수성은 정치와 미학의 융합이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political bias)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나는 왜 쓰는가』).” 정치는 말로 작동한다. 리더십 언어는 대중을 격발시킨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시절의 메시지 운용은 한심했다. 그것이 4·15 총선 참패의 핵심요인이다. 그는 매력적인 구호를 내놓지 못했다.

오웰의 문체는 명료하다. “명확한 언어의 거대한 적은 위선(insincerity)이다.” 그는 장황함을 배제한다. “단어를 자를 수 있다면 항상 잘라내라(『정치와 영어』).” 그 솜씨는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의 단문 기법과 유사하다,

『1984』는 악몽의 묵시론(黙示論)이다. 그 속에 대응의 해법이 암시된다. 그것은 불편한 진실과의 대담한 마주하기다. 『1984』의 출판 때다. 그의 직설은 유언처럼 기억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그것은 당신에게 달렸다(Don’t let it happen. It depends on you).”

런던(영국) 바르셀로나·아라곤(스페인)=글·사진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bg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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