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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뮤지컬, VR 국악 ‘집콕 홀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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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바꾼 공연 생태계

지난주말 유튜브에 공개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은 48시간 동안 1000만뷰를 돌파했다. [사진 클립서비스]

지난주말 유튜브에 공개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은 48시간 동안 1000만뷰를 돌파했다. [사진 클립서비스]

“클로즈업한 걸 보니 더 폭풍감동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사라 브라이트만까지 함께 한 피날레를 내가 보다니!”

‘오페라의 유령’ 유튜브 무료 공연 #팬들 이틀 새 1000만 폭풍 클릭 #사물놀이 등 37가지 국악 콘텐트 #360도 VR로 “버선코까지 생생” #수익 배분 등 규정 아직은 흐릿 #“무관중 촬영? 연극 이론 다시 써야”

지난 주말 유튜브로 무료 공개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 실황에 쏟아진 찬사다. 해당 영상은 이틀간 1000만뷰를 돌파했다. ‘남자 백조’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LG아트센터가 매튜 본 ‘백조의 호수’ 등 주요 내한 단체의 영상을 5월부터 네이버TV 또는 유튜브로 공개한다.

‘공연을 영상으로 보기’는 코로나 시대의 새 트렌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폐쇄된 우리 주요 공연장들도 온라인 영상 송출로 일제히 눈을 돌렸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이 2월 29일 예정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무대를 취소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돌린 것이 최초다. 경기아트센터의 연극 ‘브라보 엄사장’(3월 12일), 서울시향의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3월 16일) 등이 뒤를 이었다.

전통예술+첨단 기술 새로운 경험 선사

예술의전당은 뮤지컬 ‘웃는 남자’ 등 2013년부터 공연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통해 축적한 20여 편의 고품질 영상을 지난달 최초로 온라인에 공개해 2주간 73만뷰를 기록했다. 국립극장도 지난해 화제를 모은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 등 인기 레퍼토리를 5월 초까지 공개한다.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생중계’도 처음 시도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된 천하제일탈공작소가 배리어프리 공연으로 개발한 ‘오셀로와 이아고’(4월 3일)다. 2016년부터 일부 공연 사업의 네이버 생중계를 운영해온 경험을 살려 문자통역·수어통역·음성해설을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버전으로 발빠르게 온라인 스트리밍했다.

VR 서비스도 등장했다. 국립국악원은 3월 19일부터 사물놀이·시나위·승무·부채춤·장구춤·진주검무·동래학춤 등 37가지 레퍼토리를 8K 고화질 360도 VR로 제작한 콘텐트를 유튜브로 선보였다. VR기어 대신 화면을 움직여 원하는 시점을 선택하는 방식인데, 무대 위에서 실연자와 함께 체험하는 듯한 생동감에 호응이 크다. 네덜란드 일간지 ‘드 그로네 암스테르담’은 “코로나로 다른 공연들이 취소되는 와중에 한국의 국악은 번창하고 있다. 침체되어 가는 전통예술계에 VR이 구원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서울시향 온라인 스테이지. [사진 서울시향]

서울시향 온라인 스테이지. [사진 서울시향]

사실 VR 영상은 관람 대체용이 아니다. 아카이브용으로 개발됐다. 해외에서는 2015년부터 구글 컬추럴 인스티튜트(GCI)가 뉴욕 링컨센터 등 세계 주요극장의 대표공연을 VR로 촬영해 제공하고 있다. 국악원 VR영상도 지난해 재개장한 국악박물관 체험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코로나 국면에서 히트한 셈이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은 “공연장 관람을 유도하는 현장 맛보기용으로 만들었는데, 지금 준비중인 고궁이나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야외 VR이나 AR까지 접목되면 조선의 궁중 연향에 초대된 느낌 등 확장적 경험이 가능하다. 공연을 못 본 이들에게 국악을 알린다는 국악원의 미션을 충실히 수행할 플랫폼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아트센터는 VR 생중계도 시도했다. 3월 31일 경기도무용단 ‘포행’ 공연을 관람한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상쇠가 큰 원을 그리는 연풍대 장면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치맛폭 사이로 종종걸음 걷는 버선코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며 “앵글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춤선도 새롭게 다가왔다. 녹화 편집된 영상이 아니라 라이브로 전달되는 긴장감도 챙길 수 있었다”고 감상을 전했다.

예기치않은 공연 영상화 열기는 산업화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수요자를 위한 홍보성 무료 스트리밍을 넘어 공급자에게 부가수익을 창출하는 유료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예술의전당 ‘싹 온 스크린’이 지역 문예회관이나 영화관에서 상영된 바 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도 올해부터 부산·광주·청주 등 지역 주요 거점의 CGV 상영관에서 일부 영상을 상영해 공연단체의 수익창출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공연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유료화를 위해선 보다 품질 좋은 영상 촬영에 필요한 장비와 편집 기술 등이 필요한데 민간 공연업체는 제반 인프라가 없고, 복잡한 저작권 문제도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그런 고려없이 영상화를 서둔다면 예술가가 아니라 영상업자를 위한 것이 된다는 얘기다.

뮤지컬제작사 HJ컬처 한승원 대표는 “연극을 영상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사건이다. 무관중 촬영이 공연 형식으로 성립되려면 현장에서만 느끼는 카타르시스 등 연극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면서 “재난 상황을 맞아 영상화를 검토할 시점인 건 맞지만, 실효성과 기대효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BTS 말고는 유료화 이끌 팬덤 없을 것

세종문화회관 ‘힘콘’. [사진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힘콘’. [사진 세종문화회관]

해외에서는 2006년 시작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메트: 라이브 인 HD’와 2009년 영국 국립극장이 시작한 ‘NT라이브’, 2009년 시작된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이 대표적인 유료화 사례다. 이 같은 서비스는 초기엔 주목받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메트 오페라 관객이 영상으로 이동하면서 공연장 매출이 감소하자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신 공연도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듯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해 영상을 보는 흐름이 정착되고 있다. 메디치TV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계약을 맺고 화제작들을 스트리밍하고, 소노스트림TV가 글라인본 페스티벌 주요 작품을 보여주는 식이다. 넷플릭스도 지난해 브로드웨이 연극의 스트리밍 서비스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한정호 에투알 클래식&컨설팅 대표는 “해외에서도 세계 1위 조직 말고는 자체 유료 플랫폼이 지속될 수 없다. 부분적으로 스트리밍 업체에 파는 정도”라면서 “한국에서는 BTS 영상이라면 몰라도 공연계에 유료화를 견인할 만한 팬덤이 없다. 베를린 필처럼 완전매진되어 영상 송출로 인한 역마진을 걱정하지 않을 만한 콘텐트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영상화는 혼란기 대체재로 무료 스트리밍을 활용하는 정도의 의미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저작권과 예술가에 대한 보상체계도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한정호 대표는 “NT도, 메트도, 아티스트에 대한 수익배분 구조를 먼저 정했기에 서비스가 가능했다”며 “우리는 일단 서비스부터 하라고 시작해 놓고 연주자들에게는 소정의 사례비 정도만 지급할 뿐으로, 예술가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체계에서는 연주 수준의 저하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민간 예술가도 영상 온라인 플랫폼 올라 타세요

코로나 사태에 정작 생존 위기에 처한 건 민간 예술가들이다. 공연 영상화 트렌드로 인프라를 갖춘 국공립기관과 민간 예술가 사이 온라인 양극화까지 발생하자 민간 예술가들을 플랫폼에 참여시킬 대안도 앞다퉈 나오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서울시 추경예산 5억을 집행하는 ‘힘콘’이 대표적이다. 이번주에도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공연이 4개나 열렸다. 어린이 뮤지컬 ‘허풍선이 과학쇼’부터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의 ‘오페라옴니버스’까지 쟝르도 다양하다. 코로나로 인한 대관 취소 공연들을 공모해 총 11개 팀에게 최대 3천만원의 제작비를 지급하고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를 지원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도 취소 공연 위주의 무관중 생중계로 예술가들에게 무대를 제공한다. 17일 생중계된 ‘올 댓 리듬 Live’는 마포의 시그니처가 된 탭댄스 페스티벌에서 가장 인기를 끈 프로 탭댄스팀 ‘코리아 탭 오케스트라’와 재즈밴드 ‘골든 에이지 밴드’가 나와 반응이 뜨거웠다.

국립오페라단의 영상화 사업도 예술가 고용 창출 차원이다. 무관중 생중계로 기획한 3차례 ‘오페라 하이라이트 콘서트’를 위한 70여명의 출연진을 공모하는데, 대학 졸업 후 3년이 지난 무명 성악가들을 대거 기용한다. 국립국악원은 상반기 취소 공연 예산을 민간 예술가를 위한 온라인 콘서트로 돌렸다. 공모로 총 61개 팀을 선정해 연말까지 꾸준히 스트리밍한다. 국악 학위를 취득한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하는 ‘제1회 국악 동요 율동 공모전’도 있다. 율동을 창작해 영상으로 응모하면 총 17개 팀에게 100~500만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경기아트센터는 ‘경기도형 문화뉴딜 프로젝트’ 일환으로 경기도 예술인들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방방콕콕, 예술방송국’을 만들어 225개 단체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국립현대무용단도 취소 공연 출연진으로 선발됐던 무용수 25명의 셀프 영상을 소정의 사례비를 지급하고 매일 릴레이로 스트리밍하고 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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