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위장한 살인"···'부천 링거' 간호조무사 징역30년

중앙일보

입력 2020.04.24 11:10

업데이트 2020.04.24 11:23

24일 오전 10시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형사 법정. 녹색 수의를 입고 흰색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들어선 A씨(32·여)는 두 손을 모으고 서서 판사의 주문을 들었다. 이날 부천지원에서는 모텔에서 링거로 마취제를 투약해 남자친구 B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전직 간호조무사 A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그는 이날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임해지 부장판사)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B씨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 뒤 미리 준비한 약물을 이용해 살해한 것이 인정된다고 봤다. 남자친구와 동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했다는 A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해지 재판장은 “A씨는 범행 전 부검으로 주사 쇼크를 알 수 있는지 등을 검색하는 등 자신의 의학지식을 이용해 보관하던 약물을 B씨에게 투약하고 자신은 약물을 빨아먹는 방법으로 동반 자살을 위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전혀 반성하는 기미 없이 살인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B씨 가족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어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돼 참회하고 유족에게 속죄하는 게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에 대한 선고가 내려지자 법정을 찾은 B씨의 가족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지난 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A씨에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앙심을 품고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임에도 A씨는 살인 혐의를 부인하며 적반하장식 주장을 하고 있다”며 “A씨를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게 유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라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반면 A씨 측은 “검찰은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A씨가)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검찰 측 증거와 피고인 측 참고자료를 토대로 피고인이 잔혹한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위계 승낙 살인죄에서 살인죄로 죄명 변경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심석용 기자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심석용 기자

A씨는 2018년 10월 21일 오전 11시30분쯤 경기도 부천시 한 모텔에서 B씨에게 약물을 투약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B씨는 A씨와 밥만 먹고 오겠다며 집을 나선 뒤 다음 날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출동 당시 모텔 내부에서는 빈 약물 병 여러 개가 발견됐다. B씨 오른팔에는 두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 투여에 따른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현장인 모텔 객실에 A씨와 B씨외에 목격자가 없었고 살인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아닌 주변의 정황 증거만 있는 상황이었다. A씨는 “B씨가 금전적 어려움을 호소해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며 타살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A씨가 B씨를 속여서 죽게 한 것으로 봤다. B씨 휴대전화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정황이 없는 점, A씨가 B씨에게는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약했으면서 자신에게는 치료 농도 이하를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해 A씨를 위계 승낙 살인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휴대전화 문자내역 등을 분석한 뒤 B씨에게 사망 이전 자살 징후가 없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A씨에게 살인의 고의성이 있었다고 보고 살인죄로 재판에 넘겼다.

피해자 가족이 국민청원 올리기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B씨의 누나가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는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B씨의 누나는 “동생이 금전적으로 힘들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부천=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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