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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비대면 수업과 사라진 40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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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어김없이 수업 시간이 되면, 이제는 컴퓨터에서 ‘강의실’을 열어놓고 학생들의 ‘입장’을 기다리게 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컴퓨터의 화면을 차츰차츰 가득 채워가는 스물 몇 명 학생들의 모습도 이제 약간은 익숙해졌다. 어떤 학생들은 조용한 자기 방에서 접속하고, 어떤 이들은 어수선한 카페가 배경이다. 이들의 손톱만한 얼굴들을 바라보면서 세 시간 동안 수업을 내달려야 한다.

코로나시대 비대면 수업은 #어려움만큼 가능성도 존재 #상호 작용과 인내의 과정을 #새로운 형식들에 담아내야

수세기를 이어오면서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교단, 칠판, 책 등의 전통적 교구(校具)들처럼, 가르치는 선생님과 배우는 학생이 만나는 강의실의 다이내믹스만큼 변화하지 않은 것 또한 드물다. 정보화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굳건하게 변하지 않던 우리의 교실이,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바꾸는 와중에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화상회의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비대면수업에 대한 일선의 첫 번째 반응은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인 듯 하다. 무엇보다도 강의자와 학생들이 어디에 있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물리적 제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명백한 장점일 터다. 교수가 학기 중에 출장을 가게 되더라도 더이상 휴강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특히 시차에 대한 양해만 구할 수 있다면 해외 저명 학자들을 강의실의 학생들 앞으로 바로 초청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연필보다는 키보드가 익숙한 학생들은 수업이 진행되는 중에도 끊임없이 강의실 채팅창에 메시지를 올린다. 어떤 메시지들은 전체 수강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들은 강의자에게만 보이는 질문들과 코멘트들이다. 예전 강의실의 무거운 분위기에서는 굳이 말하지 못하던 이야기들도 채팅이란 휘발성에 쉽사리 실려서 오가는 것을 보면 소통의 새로운 채널이 생긴 것을 실감한다. 강의자가 수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채팅을 확인하는 일이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비대면 강의의 또다른 특징은 학생들의 ‘숨을 곳’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강의실 뒷구석’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므로 코앞의 카메라가 켜져 있는 이상, 나의 표정과 시선은 노출되어 있고 나를 바라볼 잠재적인 시선은 적어도 세 시간 동안은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드시 장점인지는 모르겠으나, 강의자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피로감의 원인은 이것이 아닌가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전세계적인 유명 대학들이 만들어 제공하는 온라인 공개수업(MOOC)을 생각해보면, 전통적 대학들이 존재의 위협을 받은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세계 유수 학자들이 제공하는 수업을 안방에서 동영상을 보고 인터넷으로 과제물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수강할 수 있게 된 환경에서, 전통적 방식의 수업과 교육이 어떠한 방식으로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준비되기도 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변화를 강제하게 된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까지 피해왔던 질문, 가르치고 배우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번잡스러운 일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장면에 서게 되었다.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 한 번도 만나거나 악수한 적도 없는, 길에서 마주치면 몰라볼 수도 있는 어느 학생을 과연 한 학기 동안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는가. 이 학생을 ‘대면’하는 것이 교육에 있어서 얼마나 필수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은 아직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위해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이 있다. 60분 분량 수업을 촬영하면 꼭 20분짜리 동영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강(인터넷강의)’에 익숙한 이 신인류들은 빨리보기를 통해 이를 10분 이내에 주파할 것이다. 전통적 수업은 40분, 혹은 50분을 허비하는 비효율적인 수업이라고 자조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교육의 본질적인 부분은 그 사라진 40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학생들은 어리석은 질문들을 던지고, 답변은 반복될 것이며, 서로의 안색을 살피는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흐를 것이다. 그 침묵의 어색함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대면의 시간이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은 상호작용이자 서로에 대한 인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긴다. 선생은 학생들의 무지를 견디고, 학생들은 무지의 부끄러움을 견디는 것, 그리고 이것이 진행되는 그 어색한 침묵의 순간을 견디는 것.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 이외에 무엇이 교육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침묵이 덧없이 흐른 후 가끔, 아주 가끔은 어느 인생이 바뀌는 영감과 깨달음이 예고없이 번개처럼 지나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 질서가 바뀌고 경제체제가 붕괴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풍습조차 바뀌는 이 시간에 학교와 교육 또한 어떠한 형태로건 변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싫건 좋건 비대면 수업이 열어놓은 신세계는 불편하고 피곤하지만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는 불확실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떻게든 이 신세계에 그 사라진 40분을 찾아 넣을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며, 그 성패에 또한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