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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의료진 우울증 위험…“방역 성공하려면 의료진 보호해야”

중앙일보

입력

미국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살피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환자를 살피고 있다 [EPA=연합뉴스]


스페인 타라고나 지역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근무중인 누리아 버르로 아레발로는 최근 불안과 우울감이 심해졌다. 신종 코로나감염증(코로나19)이 한 달 전 타라고나를 강타했고 빠른 속도로 지역 사회 의료 시스템을 잠식했다. 버르로 아레발로는 일주일 사이 14명의 환자가 중증 까지 악화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바이러스 앞에 기저 질환이 없는 청년층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더 괴로운 것은 동료들이 쓰러져가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해당 병원에서는 두 달 사이 의료진 63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인공호흡기가 부족해 누구를 살릴지 의료진이 결정해야하는 상황을 매일 마주하는 것도 괴롭다. 그는 “태블릿PC나 휴대전화로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환자들을 보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코로나19 국면이 길어지면서 세계 의료진들의 ‘심리 방역’이 무너지고 있다. 최근 미국ㆍ이탈리아ㆍ중국 등의 의료진을 대상으로한 정신 건강 모니터링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의료진들은 병원 내 감염과 같은 신체적 위협 뿐 아니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ㆍ우울증ㆍ불면증 등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medRxiv)에 공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탈리아 내 1379명의 의료진 중 절반이 ‘자신에게 PTSD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답했다. 심각한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답한 비율도 약 20% 정도다. 이 중 여성 의료진들이나 동료가 감염돼 사망하는 것을 지켜본 의료진들의 심리적 타격이 가장 크다고 나타났다. 2월 초 중국 전역 34개 병원의 의료 종사자 125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또 다른 조사에서도 의료진 72%가 정신적 압박(distress)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래트닝더커브' 의료진들에게도 해당"

플래트닝 더 커브(Flattening the Curve) 모델. 하나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발병률이 급증했음을 나타내는 가파른 봉우리고,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인 감염을 나타내는 완만한 곡선이다. [자료 미국 CDC]

플래트닝 더 커브(Flattening the Curve) 모델. 하나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발병률이 급증했음을 나타내는 가파른 봉우리고,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인 감염을 나타내는 완만한 곡선이다. [자료 미국 CDC]

과학 저널 사이언스는 22일(현지시간) 이를 코로나19 사태에서 완만하게 조절해야 할(flattening the curve) ‘두 번째 곡선(curve)’이라고 분석했다. ‘플래트닝 더 커브’가 가리키는 곡선은 매일 발생하는 환자의 숫자다. 이는 감염 확산 속도를 최대한 늦춰(곡선을 평평하게 만들어) 단기간에 감염자가 급증하는 것을 조절해보려는 대책이다. 폭발적 감염으로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는 것을 막고 최대한 치료에서 배제되는 환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사이언스는 최근 연구 결과와 함께 위와 같은 의료진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감염자 숫자 뿐 아니라 의료진들이 겪는 정신적 문제도 평평하게 만들어야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의료진들의 ‘심리 방역’을 지켜 의료 시스템이 마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보호 장구를 쓰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페인 마드리드 한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보호 장구를 쓰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와 함께 신체적 감염을 예방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도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 방역체계의 교훈은 의료진을 보호한 것이라고 전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병원은 환자를 안전하게 검사ㆍ치료할 수 있도록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장비를 갖췄다”고 소개했다. 방역 최전선에 있는 의사와 의료진을 감염 위험에서 보호할 수 없다면 바이러스 통제 능력을 잃기 때문에 병원이 무력해지고, 결국 방역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반대 사례로 든 국가가 스페인·이탈리아·미국이다. 보고서는 “세 국가에서는 의료진이 마스크와 같은 필수적 장비를 착용하지 못해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됐다”고 분석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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