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기웃대는 143조···예금 깨고 빚 끌어 모은 동학개미운동?

중앙일보

입력 2020.04.23 16:16

업데이트 2020.04.23 16:38

올해 초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아파트를 팔아 1억5000만원가량 여유자금이 생긴 직장인 조모(41·서울 금호동)씨. 그는 지난달 삼성전자 주식과 코스피200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9000만원어치 샀다가 지난 20일 3분의 2 정도를 팔았다. 코스피가 1900선까지 오르자 '매도 타이밍'이라고 판단해서다. 한 달여 만에 13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고, 나머지 주식도 조만간 정리할 생각이다. 조씨는 "은행 예금에 넣어뒀던 1500만원까지 찾아 투자 기회를 다시 엿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건물 외벽에 증권사 간판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건물 외벽에 증권사 간판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예·적금, 부동산→증시 '머니 무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증시 충격이 잠자고 있던 돈을 깨워 투자 심리를 뒤흔들고 있다. 과거 위기 때 '주가 급락 뒤엔 기회가 온다'고 학습한 투자자가 돈을 싸 들고 증시로 몰려드는 것이다. 일명 '동학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은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 이후 지난 22일까지 26조원(코스피·코스닥) 넘게 국내 주식을 사들였다. 증시 주변엔 돈이 눈에 띄게 불어났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투자자예탁금과 파생상품거래예수금을 포함한 증시 주변 자금은 총 143조5408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1월 20일과 비교하면 24.7% 늘었다. 특히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돈인 투자자예탁금은 같은 기간 61.6% 급증해 45조5013억원에 달했다.

불어나는증시대기자금.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불어나는증시대기자금.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증권가 안팎에선 "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의문이 나온다. 우선 유례없는 초저금리로 예·적금 이자에 실망한 돈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까지 내린 후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 전후에 그친다. 예·적금을 깬 경우도 늘었다.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3월 정기 예·적금 해지액은 모두 7조7389억원에 달했다. 올해 1~2월 해지액이 각각 5조원대였는데, 갑자기 2조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김현섭 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부센터장은 "원금 손실 없이 해지할 수 있어 예금에서 돈을 빼 주식을 사는 고객이 많았다"고 말했다. 주명진 NH투자증권 청담WM센터장은 "삼성전자의 경우 배당 수익률이 3%대로 예금 금리보다 높기 때문에 매매차익과 배당이익을 동시에 얻으려는 투자자도 많다"고 분석했다.

3월 신용대출 급증…"일부 자금은 증시로 유입" 

금융기관에서 낸 빚도 흘러 들어갔다.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 카드 대출이 대표적이다. 5대 은행의 개인신용대출 잔액은 3월에만 2조2408억원 늘었다. 2016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신한·삼성·KB·현대·롯데·우리·하나카드 등 7개사의 3월 한 달 카드론 취급액도 전월 대비 26% 늘어난 4조3242억원이었다. 한 은행 광화문지점 직원은 "코로나 사태에 따른 자영업자의 급전 마련 수요도 있겠지만, '대박'을 꿈꾸는 주식 투자 수요도 대출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금·대출 외에 부동산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는 '머니무브(Money Move)' 현상도 관측됐다. 사업가 강모(63)씨가 그런 경우다. 강씨는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전용면적 94㎡(옛 38평) 아파트를 28억원대에 팔고 주식 계좌에 10억원가량 넣어놨다. 그는 "매년 오르는 공시가격으로 보유세 부담이 커져 집을 팔았고, 투자처를 찾던 중에 최근 주가가 떨어지는 걸 보고 주식을 샀다"고 말했다. 다만 강남권엔 자산가가 많아 주식 투자를 위해 집을 판 경우는 드물고, 집을 팔고 난 여유자금으로 주식을 사려는 수요가 많다는 후문이다. 대치동 제이스공인중개업소 정보경 대표는 "최근 2개월간 집 판 돈으로 주식 투자하겠다는 손님을 3~4명 봤다"고 말했다.

투자자별순매수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투자자별순매수금액.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개인 자금, 증시 유입 이어질 것"

당분간 증시로 돈이 이동하는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금리 여파로 예·적금 매력도가 떨어진 데다, 주식과 함께 '재테크 양대산맥'인 부동산 시장도 투자 매력이 전보다 줄어서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대출 규제와 자금 출처 소명, 보유세 강화 등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는 개인 자금의 증시 유입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3년간 30조원 이상 풀리는 3기 신도시 토지 보상금이 증시에 들어올 것이란 분석도 있다. 김다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07년, 2009년에 2기 신도시 보상금 일부가 증시에 유입됐는데, 올해 상황도 비슷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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