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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필드 골프장에 패소한 스크린골프, 가장 큰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22)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모든 영업은 자유롭고 공정해야 합니다. 공정함은 경쟁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와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전자회사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업 영역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자동차나 휘발유의 관계처럼 신축 아파트 수요가 높아지면 가전제품의 수요가 더 많아질 수도 있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영역이 애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스크린 골프장과 필드 골프장이 그렇습니다. 최근 골프 수요가 늘어나면서 골프 인구도 급증했습니다.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골프장의 대중화로 많은 사람이 골프를 즐기고 있고, 그러한 수요가 필드 골프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필드 골프장도 좋지 않을까요. 반드시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가 된 골프장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영업이익 중에서 필드 골프장 대신 스크린골프장을 이용한 고객으로 인한 영업이익을 추려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진 pixabay]

문제가 된 골프장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영업이익 중에서 필드 골프장 대신 스크린골프장을 이용한 고객으로 인한 영업이익을 추려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진 pixabay]

골프를 즐기는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값싸고 가까운 곳에서 스크린으로라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좋겠지요. 가족들의 원성을 감수하면서까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서울 외곽의 골프장을 찾아갈 이유가 줄어든다는 겁니다. 필드 골프장 입장에서는 스크린 골프장의 대중화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수년 전 골프장 운영자와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스크린골프 장비 제공사(골프O, 이하 ‘스크린골프 운영자’)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필드 골프장 운영자들이 스크린 골프 운영자를 상대로 부정경쟁행위 위반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겁니다. 스크린 골프 운영자가 자신들의 골프코스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은 최근 대법원이 필드 골프장 운영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되었는데요(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6다276467). 대법원은 스크린 골프 운영자가 골프코스의 이미지를 이용해 무단 사용한 것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하고 있는 부정경쟁행위라고 판단하고, 스크린 골프 운영자의 손해배상을 일부 인정한 하급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스크린 골프 운영자의 항변과 이를 배척한 법원 판단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스크린 골프 운영자는 골프코스의 이미지를 이용한 것은 마치 개방된 장소에 전시된 건축물의 이미지를 이용한 것처럼 공정한 이용에 해당해 원고에게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골프코스는 자연적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필드 골프장 운영자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물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문제가 된 골프장은 모두 회원제 골프장이어서 이를 개방된 장소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법원은 골프코스는 자연적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필드 골프장 운영자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물로 보았습니다. [사진 pixabay]

법원은 골프코스는 자연적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필드 골프장 운영자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물로 보았습니다. [사진 pixabay]

또한 법원은 스크린 골프의 활성화로 필드 골프의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에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스크린골프 운영자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물론 법원도 스크린골프의 대중화로 골프 산업 자체의 규모가 커진 사실 자체는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스크린 골프에서도 단순히 골프 연습 목적에 그치지 않고 필드 골프와 마찬가지로 실제 골프경기규칙에 따라 골프 게임을 즐길 수 있고, 시뮬레이션용 3D 골프코스 영상을 통해 필드 골프와 마찬가지로 실제 골프장을 방문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스크린골프장과 필드 골프장의 이용률이 상반된다는 사업 분석에도 주목했지요. 실제 스크린 골프 회사가 제출한 설문조사에 따르더라도 필드 골프만 이용하는 사람도 향후 스크린 골프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는 비율이 상당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스크린골프의 수요자와 필드 골프의 수요자가 별개의 집단인 것이 아니라 스크린골프와 필드 골프가 서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필드 골프장 운영자가 입은 손해는 얼마일까요. 법원의 결론대로 스크린골프 운영자와 필드 골프 운영자가 동종영업 관계에 있다면 필드 골프장 운영자는 분명 영업상 손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손해액을 밝히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스크린골프 운영자의 문제가 된 골프장의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영업이익 중에 필드 골프장 대신에 스크린골프장을 이용한 고객으로 인한 영업이익을 추려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법원은 적절한 선에서 손해배상을 인정했습니다. 법원이 인정한 금액은 논란보다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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