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 정양모 신부 "동정녀 탄생 예수, 옆구리 탄생 붓다의 공통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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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찰 이전에 교리 중심으로 살 때는 삶이 편했다. 그저 교리를 외우기만 하면 됐으니까.”

정양모(85) 신부는 국내에서 ‘성서 신학의 일인자’로 꼽힌다. 그렇다고 성서의 문자적 해석에만 매달리는 학자가 아니다. 그는 15년째 다석학회장을 맡고 있다. 다석 유영모는 함석헌과 김교신의 스승이다. 서구에서 유입된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서 길어올린 ‘토종 기독교 영성’을 노래했던 영성가다. 다석의 글과 설교는 그만큼 깊이가 있고, 울림도 크다.

정양모 신부는 "신약성서에서 내게 가장 감동적인 말씀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이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정양모 신부는 "신약성서에서 내게 가장 감동적인 말씀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이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정 신부는 프랑스에서 3년, 독일에서 7년간 공부했다. 성서 신학으로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어ㆍ독일어ㆍ영어는 물론이고, 예수가 썼던 아람어와 히브리어, 그리스와 라틴어에도 능통하다. 광주 가톨릭대, 서강대, 성공회대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평소  ‘예수 공부’와 ‘예수 닮기’를 강조한다. 심지어 “교적에 이름만 올린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교리의 패러다임에 함몰되면, 자기 성찰을 통해 그리스도교 영성을 맛보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8일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정양모 신부를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정 신부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가톨릭신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젊었다. 고민도 그다지 없었다. 모든 게 쉽고, 간단하고, 확고했다”고 운을 뗐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당시 가톨릭 교리를 압축한 『천주교 요리(要理) 문답』이란 책이 있었다.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었다. 320개의 질문과 320개의 답변. 그때는 그것만 외우면 됐다. 그것만 받아들이면 됐다. 너무 편했다. 그래서 고민이 없었다.”
 정양모 신부가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고 있다.. 四海同春(사해동춘)’. 온세계에 똑같이 봄이 온다는 뜻이다. 장진영 기자

정양모 신부가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키고 있다.. 四海同春(사해동춘)’. 온세계에 똑같이 봄이 온다는 뜻이다. 장진영 기자

단순한 받아들임. 왜 그게 가능했나.  
“그때는 내게 신앙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성찰 이전에 교리 중심으로 살았다.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프랑스 유학을 간 뒤에야 깨달았다.”

정 신부가 가톨릭신학대 재학생일 때였다. 프랑스에서 장학생 추천서가 2장 왔다. 한국의 가톨릭 신학생 2명에게 유학비와 생활비를 프랑스에서 후원한다는 제안이었다. 정 신부는 장학생에 선발됐다. 군 복무를 마친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리옹에 있는 가톨릭대학에서 성서 신학으로 3년간 학사와 석사 공부를 했다. 정 신부는 “유학을 온 뒤에 처음에는 후회했다. 한국에서는 확고했던 나의 신앙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괜히 유학을 왔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후회했나.
“나는 리옹 가톨릭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전공했다. 신학이나 성서학을 전공하면 주로 공부하는 게 있다. 왜 이런 그리스도교 교리가 생겨났나, 그 뒤를 캐게 된다. 교리가 생겨난 과정과 해석의 역사적 과정을 따지게 된다. 그걸 통해 기성의 교리를 재이해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신앙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하니까.”
정양모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연을 맺고, 그분을 해석학적으로, 심층적으로 더 이해하고, 닮으려고 흉내내면서 사는 삶이 기쁘고 즐겁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정양모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연을 맺고, 그분을 해석학적으로, 심층적으로 더 이해하고, 닮으려고 흉내내면서 사는 삶이 기쁘고 즐겁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그런 과정을 거쳤더니 어땠나.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신앙의 패러다임, 교리의 패러다임이 흔들리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오히려 해방감을 맛보게 됐다. 기존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교 영성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이 말끝에 정양모 신부는 ‘동정녀 마리아’ 일화를 꺼냈다. 신약성서의 마태오(마태) 복음과 루카(누가) 복음에는 ‘동정녀’ 이야기가 나온다. 가톨릭에서 흔히 ‘동정녀 잉태’라고 표현하는 처녀 잉태설이다. 정 신부는 “우리는 ‘동정녀 마리아’를 너무 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이해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생물학적 접근이라면.
“처녀가 과연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낳을 수 없는가. 그것만 따진다. 그게 생물학적 접근이다. 그런데 ‘처녀 잉태설’을 이해하려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유대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 구약 성경에는 위대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출생은 남달랐다. 아이 출산이 불가능한 여성을 ‘돌계집’ 혹은 ‘석녀(石女)’라고 불렀다. 구약의 위인들은 주로 석녀나 노파에게서 출생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출생이니, 그만큼 남다르고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정양모 신부는 "예수 공부, 예수 닮기를 하는 자체가 내 마음 속의 낙원이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정양모 신부는 "예수 공부, 예수 닮기를 하는 자체가 내 마음 속의 낙원이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구체적인 인물을 예로 들면.  
“예수님 이전에 세례자 요한이 있었다. 그도 그랬다. 세례자 요한은 석녀이면서 노파인 여인에게서 출생했다. 그만큼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 제자들이 보기에는 어땠겠나. 구약의 위인들보다 예수님은 더더욱 위대한 분이다. 만약 예수님이 석녀나 노파에게서 출생했다고 하면 어찌 되겠나. 구약의 위인들과 동급이 되고 만다. 그건 기독교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세상에 잘난 사람 많고 많지만, 그 누가 우리 님과 같으리오. 그래서 석녀 잉태나 노파 잉태보다 더 위대한 출생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게 처녀 잉태인가.
“그렇다. 석녀 잉태나 노파 잉태보다 현실적으로 더 높고, 더 불가능해 보이는 무엇이 있어야 했다. 그게 처녀 잉태, 다시 말해 동정녀 잉태다. 그래야 예수님의 출생 급수가 기적이 된다. 동정녀 잉태는 결국 ‘예수는 비길 데 없이 위대하다’는 말을 출생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동정녀 마리아’는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가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게 성서학 연구의 한 단면이다.”
 45세에 요절한 조각가 장동호 씨의 작품을 정양모 신부가 들고 있다. 가시관을 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장진영 기자

45세에 요절한 조각가 장동호 씨의 작품을 정양모 신부가 들고 있다. 가시관을 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장진영 기자

이 말을 듣고 한국에서는 충격을 받는 신자들도 꽤 있지 싶다. 그동안 자신이 알던 성경 해석의 패러다임과 다르니까.  
“이게 세계 성서학계에서는 보편적 해석이다. 정말 꽉 막힌 사람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렇게 본다. 소위 말하는 문자적 해석이 아니고 심층적 해석이다.”  

정양모 신부는 ‘붓다의 출생’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2600년 전 붓다는 인도의 룸비니 동산에서 출생했다. 어머니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육방으로 일곱 걸음씩 걸었다고 한다. 무려 42걸음이다. 그러고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말이다.

정 신부는 “이 일화가 무엇을 말하겠나. 부처님은 비길 데 없이 위대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갓난아기가 나자마자 걸음을 떼고 말을 하는 게 가능하가, 아닌가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출생 일화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양모 신부는 "예수 공부, 예수 닮기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정양모 신부는 "예수 공부, 예수 닮기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생물학적으로 처녀 잉태가 가능한가, 아닌가 따질 필요가 없다. 그보다 거기에 담긴, 더 깊은 뜻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가 교리에 대한 문자적 해석의 패러다임에 함몰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용인=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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