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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년전 자격루 만든 ‘장영실의 후배들’ 4명 밝혀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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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조선 중종 31년(1536) 완성된 물시계 ‘자격루’(自擊漏) 항아리에 새긴 제작자 12명 이름 중 그동안 온전히 확인되지 않은 4명의 정체가 1년 7개월에 걸친 보존처리를 통해 드러났다. 각각 이공장(李公檣·?~?), 안현(安玹·1501~1560), 김수성(金遂性·?~1546), 채무적(蔡無敵·1500~1554) 등 4명이다.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 중종 31년(1536) 완성된 물시계 ‘자격루’(自擊漏) 항아리에 새긴 제작자 12명 이름 중 그동안 온전히 확인되지 않은 4명의 정체가 1년 7개월에 걸친 보존처리를 통해 드러났다. 각각 이공장(李公檣·?~?), 안현(安玹·1501~1560), 김수성(金遂性·?~1546), 채무적(蔡無敵·1500~1554) 등 4명이다.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이공장, 안현, 김수성, 채무적.

중종 때 다시 만든 조선 표준 물시계 #현존 항아리 표면 등 보존처리 완료 #12명 제작자 중 흐릿했던 이름 복원 #이공장·안현·김수성·채무적 확인

마침내 밝혀진 국보 제229호 물시계 ‘자격루’(自擊漏)의 ‘이름 없는’ 제작자 4명이다. 이들은 조선 중종 31년(1536) 완성된 ‘자격루 항아리’에 새긴 제작자 12명 중 일부로, 그간 글자가 마모돼 식별이 안 되다가 최근 보존처리를 거치며 전체 이름이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2일 “과학기술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의 보존처리를 1년 7개월 만에 마쳤다”면서 이 같은 성과를 발표했다.

자격루는 물이 증가하고 감소하는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 조선시대 국가 표준 시계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에서 세종대왕(한석규)이 노비 신분 장영실(최민식)의 재능을 알아보고 의기투합하는 핵심 계기로도 등장했다. 사료에 따르면 세종 16년(1434) 임금 지시로 장영실이 물시계를 제작했지만, 이것은 전해지지 않는다. 1536년(중종 31년) 다시 제작됐는데,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은 사라지고 물통들만 남아 있다.

조선 중종 31년(1536)에 완성돼 덕수궁에 전해져 온 자격루의 일부.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 중종 31년(1536)에 완성돼 덕수궁에 전해져 온 자격루의 일부.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이번에 보존 처리된 것은 이렇게 전해진 파수호 3점과 수수호 2점이다. 파수호(播水壺)는 물을 보내는 청동 항아리이며 수수호(受水壺)는 물을 받는 길쭉한 원통형 청동 항아리다. 애초 이들은 창경궁 보루각에 남아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덕수궁 광명문으로 옮겨졌고 2018년 6월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져 보존처리를 받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보존처리를 마치자 그간 정확한 관찰이 어려웠던 수수호(왼쪽) 상단의 명문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조 당시 주조 돋을새김(양각)한 명문에는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의 직책과 이름이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그동안 몇몇 글자가 마모돼 12명 중 4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는데, 이들이 온전하게 밝혀진 것이다. 각각 이공장(李公檣, ?~?), 안현(安玹, 1501~1560), 김수성(金遂性, ?~1546), 채무적(蔡無敵, 1500~1554)으로, 『조선왕조실록』『국조인물고』『문과방목』에는 자격루 제작 시기에 이들이 명문의 직책을 맡았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이들 사료에는 안현, 김수성, 채무적이 천문 전문가로 자격루 제작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나머지 제작자 8명은 영의정 김근사와 좌의정 김안로를 비롯해 유보, 최세절, 박한, 신보상, 강연세, 인광필이다.

보존처리를 마친 자격루는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는 대로 국립과천과학관 전시를 거쳐 조선 왕실 유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져 소장될 예정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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