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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뉴스]"중학교 가라" 엄마말 안 듣던 아이, 여든 넘어 12억 대학기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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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가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던 아들은 여든살을 훌쩍 넘긴 노인이 된 뒤 대학교에 12억원을 기부했다. 서울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명품 수선점으로 손꼽히는 '명동스타사'의 이름값을 쌓아 올린 김병양(84) 어르신의 이야기다.

명동스타사 김병양씨 전남대학교에 12억원 기부 #국민학교 졸업하고 어렵던 집안에 보탬되려 취직 #박정희 대통령·백선엽 장군도 구두 맡기던 장인 #지금도 자신 이름 내세워 가죽제품 수선하는 현역

전남대학교에 12억원을 기부한 김병양 어르신이 자신의 손때가 묻은 공업용 재봉틀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 전남대학교

전남대학교에 12억원을 기부한 김병양 어르신이 자신의 손때가 묻은 공업용 재봉틀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 전남대학교

김병양씨는 2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광주광역시에 있는 식용유 공장에 취직하니까 어머니께서 학교나 다니지 뭐하러 일을 하느냐면서 안타까워했다"며 옛날을 떠올렸다. 김씨는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국민학교(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생업에 뛰어들었다.

김씨가 어렵던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내린 결정을 그의 어머니는 마뜩잖아했다. 김씨는 "공부 머리가 없어서 직장에 눌러앉았지"라고 했지만, 자식을 공부시키지 못해 아쉬워하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공부의 때를 놓친 게 후회된다"고 했다.

김씨는 부지런한 성격 덕에 하는 일마다 인정받았다. 돈도 곧잘 벌었다. 1960년대에는 광주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명동 곳곳에 납품했다. 명동스타사는 김씨가 가죽과 단추를 납품했던 곳 중 하나였다.

김씨는 "1965년쯤 명동스타사 본래 주인이 가게를 내놓자 모은 돈으로 곧장 인수했다"며 "워낙 이곳저곳에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가죽이나 구두 수선 기술도 배웠던 터라 욕심이 났다"고 했다.

김병양 어르신이 지난 20일 전남대학교에 12억원을 기부했다. 사진 전남대학교

김병양 어르신이 지난 20일 전남대학교에 12억원을 기부했다. 사진 전남대학교

명품이 흔하지 않던 과거에는 작은 흠집도 국내 수선은 어려워 해외로 보냈다가 돌려받아야 했다. 김씨가 꼼꼼한 손기술로 명품을 고쳐내자 명동스타사의 이름이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다. 박정희 대통령과 백선엽 장군이 그에게 구두 수선을 맡겼고, 하춘화씨 등 당대 내노라던 연예인들도 김씨의 가게를 찾았다.

대기업도 그의 솜씨를 인정했다. 해외 배송기간만 3개월 넘게 걸렸던 터라 한 대기업에서는 김씨의 가게를 명품 하자보수 전문 업체로 지정해 수선 일감을 맡기기도 했다. 해외 수선보다 빠른 일 처리에 단골도 점차 늘었다.

김씨는 "1990년대에 한창 많을 때는 직원이 30명 가까이 됐다"고 했다. 어려운 때도 있었다. "한 번은 김포 공장에 불이 나 손님 물건이 모두 타버려 아주 힘들었다"고 했다. 몇몇 손님들은 불탄 물건값도 받지 않으며 어려움에 빠진 그를 도왔다.

'명품 수선장인 김병양'이란 이름값은 아직도 그대로다. 명동스타사는 현재 자신의 딸에게 물려줬지만, 일부 가죽제품 등을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고치기도 한다.

김씨가 중학교에 가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못 지킨 대신 거액을 기부하기로 결심했을 때 떠오른 곳이 전남대학교였다. 김씨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얻었던 직장인 식용유 공장의 당시 위치는 전남대학교의 옆 동네인 광주광역시 신안동이다.

김병양 어르신이 지난 20일 전남대학교에 12억원을 기부했다. 사진 전남대학교

김병양 어르신이 지난 20일 전남대학교에 12억원을 기부했다. 사진 전남대학교

김씨는 지난 20일 12억원을 기부하기 위해 전남대를 찾았을 때 "이곳에 수시로 드나들며 놀곤 했었다"며 "그 당시엔 빨간 벽돌공장도 있었고 주변은 온통 논밭이었는데 지금은 다르지요"라며 관계자에게 묻기도 했다. 또 "죽기 전에 고향(전남 장성)에서 제일 좋은 전남대학교에 좋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고 했다.

전남대학교는 김씨의 기부금을 디지털도서관 건립에 사용할 계획이다. 대학생과 일반인까지 다양한 서적과 자료를 전자책 형태로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전남대학교 관계자는 "김씨의 뜻깊은 기부를 기릴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검토 중이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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