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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스페인 독감 뚫고 솟은 원불교 "코로나 사태가 준 큰 깨달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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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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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최고지도자 전산 종법사 #다음주 창교 105년 대각개교절 #“물질문명 개벽으로 욕심도 커져 #상생의 마음 갖는 정신개벽 해야”

원불교는 민족종교다. 일제 강점기 때 왜색 불교에 밀려 한국 불교는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소태산 대종사(본명 박중빈, 1891~1943)는 어려서부터 삶과 세상에 대해 물음이 많았다. 20여 년에 걸친 구도 끝에 1916년 4월28일 대각(大覺)을 이루었다. 깨달음 직후에 소태산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주창했다.

일제 강점기 때 소태산 대종사와 제자들이 전남 영광의 길룡천을 막아 농토로 바꾸는 방언공사를 하고 있다. 1918년 당시 스페인 독감이 조선땅을 강타했다. [사진 원불교]

일제 강점기 때 소태산 대종사와 제자들이 전남 영광의 길룡천을 막아 농토로 바꾸는 방언공사를 하고 있다. 1918년 당시 스페인 독감이 조선땅을 강타했다. [사진 원불교]

소태산은 전남 영광 출신이다. 당시 영광 농민들은 무척 가난했다. 소태산은 바다를 메워 농토를 개간하는 대공사를 감행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무오년(戊午年) 감기”로 불리는 신종 독감이 조선땅을 강타했다. 조선총독부 자료(1918년)에 의하면 조선 인구 1759만 명 중 288만 4000명이 감염됐다. 사망자는 무려 14만 명에 달했다. 무오년 감기는 다름 아닌 1918년 지구촌을 뒤덮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소태산과 제자들은 스페인 독감을 뚫고서 간석지 개간사업을 성공시켰다. 1918년 12월, 한겨울의 얼음장을 깨고 물에 들어가 공사를 했지만 감기에 걸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원불교 교단사 초기의 신심과 정신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오는 28일은 원불교 창교 105년을 맞는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이다. 14일 전북 익산의 총부에서 원불교 최고지도자 전산(田山) 김주원(72) 종법사를 만났다. 그에게 ‘물질과 정신, 그리고 개벽’을 물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주석하던 종법실 앞에 선 전산 종법사는 "원불교의 대각개교절의 표어는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고 말했다.

소태산 대종사가 주석하던 종법실 앞에 선 전산 종법사는 "원불교의 대각개교절의 표어는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원불교의 대응은 빨랐다. 일찌감치 오프라인 법회를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이웃 종교와 비교해도 모범적이라는 평가다.  
“원불교에는 사은(四恩ㆍ네 가지 은혜)이 있다. 그중 하나가 법률은(法律恩)이다. 나와 이웃과 세상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고 살게 해 준 은혜다. 그러니 하라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안 하면 된다. 교단만 생각하지 말고, 대한민국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원불교도 힘들지 않나.
“어떤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원하지는 않다. 지금은 당하다 보니 답답하고 고통스러워도, 결국은 지나간다. 그러니 고통 속에서도 앞날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가 크게 깨달은 것도 있다.”
그게 뭔가.
“코로나만큼 세상이 하나임을 즉각적으로 보여준 일이 있었나. 한국 사람이 미국의 확진자 수를 걱정하지 않나. 미국 사람이 유럽의 확진자를 걱정하지 않나. 코로나 때문에 지구촌 왕래가 끊기니까,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지 않나. 코로나는 우리가 하나임을 자각시킨다.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깨닫게 한다.”
전산 종법사는 "물질이 개벽하는데 정신이 개벽되지 않으면,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뜻이다.

전산 종법사는 "물질이 개벽하는데 정신이 개벽되지 않으면,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뜻이다.

전산 종법사는 “스페인 독감을 극복하고 일어선 교단 창립사를 이번에 돌아보며 많은 걸 생각했다. 지금도 다들 앞만 보며 달려가지 않나. 코로나 사태가 지구촌 사람들이 크게 한번 멈추고, 자신의 삶을 크게 한번 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올해 대각개교절 표어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다. 이유가 있나.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원불교 대각개교절 표어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 그게 대종사님의 대각 정신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바깥 세상은 더 화려해졌다. 우리의 향유도 커졌다. 덩달아 그걸 취하려는 우리의 욕심과 집착도 커졌다. 문제는 그 욕심이 결코 충족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정신 개벽이 필요하다.”
정신이 개벽되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물질 문명의 노예가 되고 만다. 사람들은 물질을 더 갖기 위해 싸움만 하게 된다. 빈익빈 부익부는 더 커진다. 사회적 갈등과 상처도 더 커진다. 가령 정말 물건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걸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돈을 벌겠나. 그런데 물건을 사가는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자. 어떡해야 되나.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그래야 상생(相生)이 된다. 그런데 공산주의식으로는 안 된다.”
전산 종법사가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에서 소태산 대종사가 머물며 생활했던 종법실 앞을 거닐고 있다.

전산 종법사가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에서 소태산 대종사가 머물며 생활했던 종법실 앞을 거닐고 있다.

공산주의식이라면.
“공산주의도 목표는 같다. 그런데 방식이 다르다. 정치적으로 강제성이 들어간다. 부자에게서 빼앗아 빈자에게 나눠준다. 자꾸 그러면 누가 돈을 벌려고 하겠나. 결국 모두가 가난해진다. 대종사님 말씀도 ‘스스로 마음이 나서 나누라’고 했다.”
스스로 마음을 내는 건 쉽지 않다. 어떡할 때 그게 가능한가.
“돈을 내가 번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 은혜로 벌었다. 이게 억지인가. 아니다. 이치에 맞는 말이다. 이걸 스스로 깨쳐야 한다. 그래야 그 이치가 내 이치가 된다. 그럼 물건 사는 사람의 역량이 커지고, 파는 사람은 더 많이 팔게 된다. 그렇게 상생이 되서 상승이 된다. 원불교에서는 그걸 ‘진급(進級)’이라 부른다. 그런 식으로 강자도 진급이 되고, 약자도 진급이 되는 거다. 나의 존재는 나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기다. 인공지능을 비롯해 급격한 물질개벽이 진행된다. 머지 않은 미래의 인류에게는 엄청난 시간이 주어진다. 어떻게 써야 하나.
“정산 종사(제2대 종법사)님은 ‘앞으로 세상이 밝아지면 하루 벌어서 한 달 먹고, 한 달 벌어서 일 년 산다’고 하셨다. 미래 인류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다. 원불교는 그 시간을 마음 공부에 쓰라고, 정신개벽에 쓰라고 말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정신이 자꾸 맑아진다. 지혜가 맑아진다. 그럼 물질이 아무리 개벽해도, 그 발달된 물질을 잘 활용하게 된다. 그럼 힘을 얻게 된다.”
전산 종법사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자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산 종법사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자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 직후 이렇게 오도송을 읊었다. “만유(萬有)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萬法)이 한 근원이로다..” 전산 종법사에게 뜻을 물었다.

인류가 한 공동체라고 했다. 만유가 한 체성임을 알면 어찌 되나.
“큰 대(大)자가 나온다. 우리는 통상 작은 나만 알고 산다. 상대방한테서 늘 가져오려고만 한다. 나의 이익이 침해당하면 죽기살기로 싸운다. 전체가 하나임을 알면 달라진다. 줄 것은 주고, 가져올 것은 가져온다. 무조건 손해를 보라는 게 아니다. 나도 이롭고, 상대방도 이롭게 하면 된다. 그게 자리이타(自利利他)다. 국가 지도자에게는 이런 견지가 더욱 필요하다. 부모가 말 잘 듣는 아이만 내 아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럼 부모 노릇을 할 수 없게 된다.”
원불교 총부의 종법실에는 일원상 진리의 법어를 써놓은 기다란 병풍이 세워져 있었다. 원불교에서는 제단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대신 진리를 상징하는 일원상을 올려 놓는다.

원불교 총부의 종법실에는 일원상 진리의 법어를 써놓은 기다란 병풍이 세워져 있었다. 원불교에서는 제단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대신 진리를 상징하는 일원상을 올려 놓는다.

“만법이 한 근원”이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우리 몸을 보라. 손 있지, 발 있지, 머리카락도 있지. 다 다르다. 그런데 이게 하나의 몸이다. 사지육신이 다 달라도 한 몸이다. 세상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가 그렇다. 만 가지 법이 있어도, 한 마음이 들어서 움직여간다. 그 한 마음을 찾는 게 원불교의 마음공부다.”

원불교의 총부는 전북 익산에 있다. 내년에는 미국에도 원불교 총부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럼 미국 종법사를 따로 임명하게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찍이“각 나라마다 종법사(원불교 최고지도자)가 생길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해외에 지부를 두는 것이 아니라, 원불교가 태동한 한국과 동급의 총부와 종법사를 해외에 두는 일이다. 자치권과 교화권도 갖는다. 세계 종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원불교 세계 교화의 보폭이 크다.

전산 종법사가 세계 지도를 보면서 원불교 세계교화의 거점을 설명하고 있다. 원불교에 세계 교화에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산 종법사가 세계 지도를 보면서 원불교 세계교화의 거점을 설명하고 있다. 원불교에 세계 교화에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 정문에는 '정신개벽'이라고 써놓은 바위가 우뚝하게 서있다. 정문에는 '코로나' 관련 표어와 방지법 등을 새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 정문에는 '정신개벽'이라고 써놓은 바위가 우뚝하게 서있다. 정문에는 '코로나' 관련 표어와 방지법 등을 새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원불교는 교단 개혁의 템포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모두 전산 종법사 취임  후 1년6개월간 벌어진 일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원불교 총부의 정문을 나섰다. 바위에 네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精神開闢(정신개벽)!

익산=글ㆍ사진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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