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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선거운동 열흘 만에 40석 넘게 날아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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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통합당 선대위원장 박형준이 겪은 총선 대참패

박형준 전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여당엔 현직 대통령과 대권 주자란 두 여왕벌이 있었지만 통합당엔 사실상 여왕벌이 없었다“며 ’그게 중도층 표심을 끌어들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고 패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박형준 전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여당엔 현직 대통령과 대권 주자란 두 여왕벌이 있었지만 통합당엔 사실상 여왕벌이 없었다“며 ’그게 중도층 표심을 끌어들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고 패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4·15 총선에서 역사적 수준의 대참패를 당한 미래통합당은 자중지란에 빠져 버렸다. 큰 충격파 속에 새 지도부를 어떻게 구성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낙선하고 최고위원도 7명 중 1명만 당선된 만큼 리더십 공백이 당을 진공상태로 만든 것이다. 당내 주요 인사들이 각자 자기주장만 펼치는 지리멸렬 속에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할 21대 국회 당선자 대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수·진보 총결집 선거서 대패한 건 #중도확장 없는 보수만으론 어렵단 뜻 #청년·캠페인 당으로 체질 확 바꾸고 #40대 리더 못 내세우면 대선도 난망”

당 일각에선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하려 하지만 ‘당선자 위주로 새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반대론과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함께 부딪쳐 논쟁이 논쟁을 낳고 있는 중이다. ‘보수 정당 재건’이란 현안을 해결하자면 정확한 패인을 찾아야 할 텐데 이걸 놓고도 중구난방이다. 사실상 자리다툼 양상이다.

통합당 참패는 대한민국 보수정치 세력에 많은 과제를 던졌다. 선거 전략의 실패 정도를 넘어 일각에선 한국에서 보수 이념이 생명력을 다한 것 아니냐는 근원적 의문까지 나온다. 전국의 보수 유권자가 총결집했지만 크게 진 데 대한 위기감 탓이다. 가뜩이나 정권심판론을 깔고 시작한 선거였다. 역대 총선에선 이런 경우 ‘견제와 균형’이 선택 기준이었다.

하지만 통합당은 보수 결집을 총선 승리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정권 심판론이 돼야 할 선거판은 오히려 야당 심판론으로 흘렀다. 왜 그렇게 됐을까. 선거 과정에서 보수 통합을 이끌어냈던 박형준 전 공동선대위원장에게 물었다.

대참패다. 기록적인 몰락 이유가 뭔가.
“의석수를 보면 참패가 맞는데 득표율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주워 담을 수 있는 보수표는 그런대로 많이 담았다. 지난 대선 때 24%, 지방선거 때 27% 얻었다. 이번엔 41%인데 의석수가 3분의 1에 불과한 건 지지보다 훨씬 못한 의석을 받았다는 뜻이다. 통합만 했을 뿐 확장성에서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한계를 말하나.
“총선 같은 큰 싸움은 여왕벌 싸움이다. 여당엔 문재인 대통령과 미래 여왕벌로 비친 이낙연 전 총리가 있어 친문, 호남 외에 일부 중도표를 흡수했다. 우린 사실상 여왕벌이 없었다. 황교안 전 대표는 아주 좋은 분이지만 부정적 이미지가 너무 많이 쌓여 우리가 선거 막판엔 내세우지 않으려 할 정도였다. ‘n번방’ 발언 등으로 여왕벌 효과를 만들기엔 굉장히 큰 한계가 있었다.”
황교안 n번방 등의 막말 때문에 졌다는 뜻인가.
“물론 거기에 다 돌릴 수는 없다. 기본적으론 제일 중요한 건 코로나 사태다. 끊임없는 이벤트로 대통령이 선거의 중심에 선데다 여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재난지원금으로 홍보한 게 먹혀 우리가 이슈를 주도하지 못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막말은 동시다발로 쏟아졌다. 결국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탄핵 이전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러내는 소환효과를 키웠다.”
야당은 어쨌든 정권 심판론을 파고들었어야 하지 않나. 선거판이 야당 심판론으로 흐른 건 선거 전략의 실패 아닌가.
“전략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지난 6번의 집권 중반 이후 총선엔 모두 정권 심판론이 작동했다. 이번엔 특히 지난 3년간의 실정이 널려 있어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 민생 실패와 조국 사태서 보여준 정권의 위선이란 두 가지를 공격 포인트로 잡았는데 제대로 안 먹혔다. 코로나 재난 앞에 위기를 해결하는 정부의 모습이 부각됐고 조국 사태도 큰 영향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슈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
공천은 어떤가. 눈에 띄는 새 인물 영입도 없었는데.
“실패한 공천이다. 부인할 수 없다. 물갈이할 땐 물갈이 원칙을 지켰어야 했는데 새 인물에 대한 준비가 안 돼 헝클어졌다. 돌려막기 하거나 물갈이 대상인 사람에게 추천받아 공천을 주다 보니 혁신 의미가 퇴색했고 심지어 공천이 희화화됐다. 경쟁력 있는 사람을 억지로 제치면서 경쟁력 없는 사람을 공천해 갈등이 커졌는데, 그걸 또 당 지도부가 뒤집어 이도 저도 아닌 모양이 됐다.”
20일 국회서 열린 미래통합당 비공개회의에선 당 수습 방안을 놓고 논의가 무성했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오종택 기자

20일 국회서 열린 미래통합당 비공개회의에선 당 수습 방안을 놓고 논의가 무성했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오종택 기자

왜 그렇게 됐나. 황교안·김형오 두 사람의 파워 게임 때문이었나.
“황교안 전 대표는 파워를 행사하지 못하고 공관위에 넘겼는데 거기서 이기는 공천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 판단이 명료하지 않은 결정이 많았다. 결국 공천을 통해 정권 심판론이 확 달아올라야 했는데 그걸 스스로 주저앉히고 ‘바뀐 게 없다’는 느낌을 만들었다. 결국 통합은 됐는데 혁신은 안 됐다. 그러니 젊은층이나 중도층으로 확장성을 키우지 못했다. 그게 패인이다.”
선거 패배에 가장 책임 있는 한 사람을 꼽자면 누구인가.
“그거야 어떻게 얘기하나. 나도 책임 있는 사람인데….”
선대위에선 뭐라고들 하나.
“아쉬운 걸 얘기하면 끝이 없다. 모두 다 책임질 일뿐이다.”
통합당은 리더십 부재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나.
“투표율이 66%까지 나온 건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총결집했다는 거다. 그런데도 7~8%가 모자란 건 과거처럼 보수가 결집한다고 되는 판이 아니란 뜻이다. 젊은층이나 중도층으로 확장하자면 새로운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 체질과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옛날 인물 분장해봐야 소용없다. 40대 정도의 젊은 여왕벌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선은 희망을 걸기 어렵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아니면 승산 없다고 본다.”
당이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김종인 비대위를 말하는 쪽은, 비록 차선이지만, 그나마 그분이 통합당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확장성을 높이려는 지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거다. 총선을 치러보니 통합당은 캠페인 전문 정당이 아니라 거의 행정 정당이었다. 그런 정당으론 대선 준비 못 한다. 청년 정당으로 확 바꿔야 한다. 그게 안 되고 자기 입지 강화하려는 분들의 당권 경쟁으로 가면 당은 아마 다시 깨지고 분열하는 길로 갈 거다.”
당내에선 안철수 영입론도 있던데 가능성 있나.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참여해야 하고, 그분도 기회를 가지려면 결국 여기서 링에 올라야 한다. 군소정당으로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철수 대표가 갖고 있는 확장성을 통합당이란 링에서 경쟁을 통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재난지원금 문제도 그렇지만 당내선 보수 색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당이 망하는 길이다.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반대하는 것과 정부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다른 얘기다. 위기 땐 위기에 필요한 정부 역할이 있다. 시장 활력을 살려야 하고, 시장을 못살게 구는 것도 안 되지만 국가 역할이 모두 시장으로 환원될 순 없다. 자유가 필요한 사람에겐 자유를 주고 복지가 필요한 사람에겐 복지를 줘야 한다. 복지 문제를 모두 자유 문제로 환원하면 타개할 방법이 없다.”

‘개헌 저지선 어렵다’고 말했던 배경은?

박형준 전 공동선대위원장에 따르면 2주간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 여의도연구원(여연, 미래통합당 싱크탱크)에서 여론조사를 3번 했다. 여연 조사는 샘플 수가 많고, 오랫동안 정성 들여 설계한 만큼 정확도가 높은데 선거 결과도 그랬다. 3월 말 선거운동에 들어가며 첫 조사를 했는데 해볼 만했다. 접전지역이 많기는 했지만 대전·청주 등에서도 앞서거나 어슷비슷했다. 지역구만 120석 정도 이기는 거로 나왔고, 민주당도 그 정도 남짓이었다. 막판으로 가면서 정권 심판론이 먹히면 비례 의석을 포함해 과반 경쟁이라고 봤다.

하지만 황교안 n번방 실언, 김대호·차명진의 세대 비하·세월호 막말이 쏟아지면서 현상 유지조차 어려웠다. 1주일 만에 지역구 100석, 열흘 뒤엔 80석으로 조사할 때마다 뚝뚝 떨어졌다. 대부분 지역구에서 5~10% 빠졌는데 특히 30~40대가 가팔랐고 50대와 60대에 영향을 미쳤다. 치고 올라가기는커녕, 수도권에선 호남표가 결집하고 많이 앞서가던 자영업자 지지도 내려앉았는데 그때 사전선거가 있었다.

설마 지역구 100석은 될 거라고들 생각했지만 개헌 저지선이 위태롭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기자회견을 자청해 결집을 호소했다. 그나마 모두 한 방향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일부서 엄살이라고 하면서 꼬이고, 엉켜 버렸다.

최상연 논설위원

※ 김서희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