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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5인 회동’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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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기자·변호사

임장혁 기자·변호사

“누구의 무슨 말을 믿어야 할지….”

지난 2월 26일 서울 마포의 한 한정식집 문간방에서 터져나오는 더불어민주당 실세 5인방의 결기어린 소리를 듣게 된 후배 A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윤호중 사무총장, 이인영 원내대표, 전해철·홍영표·김종민 의원이 미래한국당에 맞서는 위성정당 추진에 결의를 모으는 자리였다. 정치부에 온 지 한달 남짓 됐던 A에겐 “저들이 저렇게 나오면 우리도 사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는 윤 총장의 발언이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바로 며칠 전 식사자리에서 “우리는 원칙을 지킨다”고 말하던 그의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날 ‘도원결의’의 대의명분은 단 하나 ‘쟤들도 하니까’ 였다.

본지의 ‘마포 5인 회동’ 보도 후 민주당은 오히려 거리낌 따윈 접어둔 채 대놓고 위성정당 창당에 힘을 실었다. 선거기간 모든 선대위 회의를 함께 했고 돈도 빌려줬다. 더불어시민당은 후보들이 ‘더~불어’라고 소리치다 끝나는 영상 외 보여준 게 없지만 17석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노트북을 열며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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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야의 꼼수 대결 속에 비례성·대표성 강화라는 선거제 개혁의 취지는 무너졌고 무수한 유권자들의 투표권이 침해됐다. 주변에서 ‘맨 위에 찍고 아차했다’ ‘3번인줄 알고 찍었는데 5번이더라’는 등의 후일담을 듣기란 어렵지 않다. 유권자들의 분노는 비례대표 선거에서 나온 122만6532표의 무효표에 담겼다. 20대 총선(66만9769표)보다 두배 가까이 많은 수다.

그런데 압승을 거둔 민주당에선 ‘쟤들이 한다면 우리도’라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위성정당 꼼수를 위성교섭단체로 이어갈 수 있다는 엄포다. 상임위원장 배분, 공수처장 추천위원 지명권, 정당보조금 등이 걸려서라고 한다.

위성정당을 곧 해소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위성교섭단체를 만드는 건 이미 아프게 뒤틀린 민의를 부러뜨리는 짓이다. 방법은 “공천 불복 탈당자 복당은 없다”는 말을 뒤집거나 ‘적과의 동침’에 나서거나 의원꿔주기 공작을 감행하는 것 중 하나 뿐이다.

민주당이 ‘쟤들도 하니까’라고 외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180석의 의미다. 행정·사법·지방 권력에 이어 의회 권력까지 손에 쥔 거대 여당이 또 꼼수 경쟁에 나선다면 유권자들은 ‘쟤들’에게 쓰는 것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통합당과 미래한국당 상황과 관계없이 더불어시민당과 합당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는 강훈식 수석대변인의 지난 20일 발언이 바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그래도 한다는 ‘쟤들’이 있다면 유권자들이 다시 응징할 것이다. 대선이 머지 않았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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