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끌어내린 유가…사상 첫 마이너스, 다음달에도 또?

중앙일보

입력 2020.04.21 16:58

업데이트 2020.04.21 17:00

미국산 유가가 대폭락을 연출하면서 마이너스권으로 추락했다. 최초다. [연합뉴스]

미국산 유가가 대폭락을 연출하면서 마이너스권으로 추락했다. 최초다. [연합뉴스]

“유가 시장이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블룸버그 통신)  “유가 시장 최후 심판의 날이 가까워졌다.”(CNN) “이건 그냥 미친 거야!”(피터 자이한, 국제 에너지 전문가)

국제 유가가 20일(현지시간)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관련 시장이 초토화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원유 저장고 포화, 선물(先物) 만기일 등의 합작품이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 텍사스산원유(WTI)의 5월물 종가는 배럴당 -37.63달러. 지난 17일 종가인 18.27달러보다 306%나 폭락했다. 이론상으로는 공급자가 소비자에게 1배럴의 원유와 함께 4만6318원을 줘야 팔 수 있는 셈이다. 1983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원유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최초다.

WTI 유가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WTI 유가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세 개의 키워드=코로나ㆍ쿠싱ㆍ선물    

WTI는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미국의 기준이다. 영국 런던 거래소의 브렌트유 가격과 함께 국제 원유 시장의 기준이 된다. 그런 WTI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것은 원유 시장을 넘어 국제 경제 전반에도 적신호로 해석된다. 증시는 바로 반응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592.05포인트(2.44%),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51.40포인트(1.79%), 기술주 중심인 나스닥은 89.41포인트(1.03%)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휘발유 가격은 떨어졌지만 반길 일만은 아닌 이유다.

국제유가 하락 여파가 이어지면서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12주 연속 하락했다. 19일 경기 고양시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리터당 1,197원에 경유가 997원에 판매되고 있다. [뉴스1]

국제유가 하락 여파가 이어지면서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12주 연속 하락했다. 19일 경기 고양시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리터당 1,197원에 경유가 997원에 판매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신종 코로나로 인한 수요 급감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 16일 자로 발간한 ‘월간 국제 유가 리포트’는 “신종 코로나로 인해 세계는 초유의 수요 (급감) 충격파를 맞았다”며 “특히 교통 에너지 수요가 위축됐으며 불확실성으로 인해 하향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OPEC와 러시아 등 비(非) OPEC 산유국의 연합체인 OPEC+가 5~6월 하루 97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지만 역부족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례 없는 큰 규모의 감산이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는 비관적 전망이다.

이미 생산된 원유도 애물단지 신세다. 미국 내 대표적 원유 저장고는 오클라호마의 쿠싱인데,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쿠싱의 저장 용량 8000만 배럴 중 5900만 배럴 분이 가득 찼다고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가 미국에서 본격 확산하기 전인 2월 말까지만 해도 쿠싱 저장고는 절반 정도만 차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원유를 저장할 곳만 찾을 수 있다면 돈 벌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쿠싱 원유 저장소. 이미 70% 가까이 차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쿠싱 원유 저장소. 이미 70% 가까이 차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조선도 포화상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갈 곳을 잃은 유조선들이 현재 싣고 있는 원유 용량은 1억2000만 배럴에 달한다. 유조선 임대료까지 급등하고 있다. WSJ는 유조선의 6개월 계약 요금이 1년 사이에 2만9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뛰었다고 전했다. 1억2000만원을 줘야 유조선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돈을 얹어줘야 원유를 팔 수 있는 마이너스 가격이 형성된 배경이다.

회복돼도 다음 달 또 마이너스 가능성  

그런데 왜 하필 미국 기준 20일에 이런 사달이 났을까. 선물 거래에 답이 있다. 5월에 현물 원유를 넘겨받기로 하고, 미리 가격을 정했던 WTI 5월물의 만기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WTI의 선물 만기는 매달 25일에서 3영업일 전으로, 이달은 21일이다. 5월물 WTI 만기일을 앞두고 선물 투자자들이 원유를 실제로 인수하는 대신, 대부분 6월물로 넘기는 롤오버(rollover)를 택하며 마이너스 유가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컨설팅업체 IHS 마킷의 에너지 담당 부사장인 로저 다이완은 트위터에 “쿠싱의 남은 저장고 역시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라서 돈을 아무리 줘도 저장할 곳을 찾을 수 없으니 투자자들이 원유를 되팔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적었다. 투자자들의 패닉으로 인해 마이너스로 유가가 추락했다는 분석이다. WTI의 6월물 선물 종가는 18%포인트 떨어지긴 했지만 20.43달러로 마이너스는 면했다.

미국 텍사스의 한 주유소의 가격판. 국제 유가 폭락 영향으로 미국 휘발유 가격도 내렸다. [신화=연합뉴스]

미국 텍사스의 한 주유소의 가격판. 국제 유가 폭락 영향으로 미국 휘발유 가격도 내렸다. [신화=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라는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달에 유가가 조금이나마 회복을 한다고 해도 5월 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올 6월물 만기일 하루 전엔 또다시 마이너스로 유가가 고꾸라질 수 있다. 다이완 부사장은 “5월 중순 전에 원유 수요가 조금이라도 회복을 해서 (WTI) 6월물이 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적었다.

한편 WTI와 함께 세계 유가 기준이 되는 영국의 브렌트유는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25.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8.9% 떨어지긴 했지만 WTI처럼 마이너스 종가라는 운명은 피했다. 영국 북해(北海)에서 시추하는 브렌트유는 WTI에 비해 해상 운송이 용이하기에 저장고 고갈에 대한 패닉이 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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