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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꽃 사진, 예술이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주기중의 오빠네 사진관(20)

봄입니다. 빛 좋은 날들이 이어집니다. 눈이 부십니다. 따뜻한 봄볕을 쐬며 몽롱한 현기증을 즐기기도 합니다. 봄꽃들이 바통터치 하듯 차례로 피면서 무채색의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풍경은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자연의 섭리에 감탄하게 됩니다. 빨간 동백이 ‘툭툭’ 떨어질 때면 매화가 하얗게 산과 들을 뒤덮습니다. 산수유가 산골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고, 볕 잘 드는 곳에 있는 개나리가 기지개를 켭니다.

산에서는 진달래가 수줍은 듯 꽃잎을 엽니다. 하얀 목련도 팝콘 터지듯 꽃을 피웁니다. 이어서 벚꽃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도시와 산과 들을 하얗게 물들입니다. 올해는 유독 꽃 사진을 많이 봅니다. ‘코로나19’ 때문일까요. SNS마다 봄꽃 사진이 차고 넘칩니다.

카톡방에도 하루가 다르게 꽃 사진이 올라옵니다. ‘사회적 격리’로 쌓인 스트레스를 자연에서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다른 즐거움이 있으면 눈에 띄지 않는 법입니다. 코로나19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깨닫게 해줍니다.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齐放, 百家争鸣)’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갖 꽃이 같이 피고 많은 사람이 각기 주장을 편다’는 뜻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구호이지만 꽃 사진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전 국민의 사진작가 시대입니다. 휴대폰 성능이 좋아져 이제 누구나 손쉽게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꽃 사진은 눈으로 보면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열심히 찍었지만 결과를 보면 남들과 비슷한, 그렇고 그런 사진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대개 접사 렌즈를 이용해 꽃을 찍습니다. 클로즈업하면 배경이 아스라하게 흐려지면서 꽃이 선명하고, 예쁘게 나옵니다. 당연합니다. 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아름답게 찍는 것은 약간의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꽃 사진을 찍는 것은 물리적인 복사나 생물 도감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 입니다. 비슷한 사진을 많이 보면 식상합니다. 예술을 위한 사진이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독창적인 느낌과 감성을 표현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비단 꽃 사진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영상 홍수 시대입니다. 시각의 내성을 벗어나야 좋은 사진이 나옵니다.

꽃을 소재로 일가를 이룬 사진가들은 대개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사진(Making Photography)’으로 시각의 내성을 극복하고 꽃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담습니다. 미국의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46-1989)나 일본의 아라키 노부요시(1940- )는 스튜디오에서 꽃을 정교하게 연출해서 찍습니다. 두 작가는 꽃을 매우 관능적으로,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나라의 구성수(1970- )는 꽃을 뿌리까지 통째로 석고를 이용해 본을 뜹니다. 그리고 이를 부조로 만든 다음 채색해서 다시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합니다. “사진은 자연의 연필”이라는 작가의 철학을 담습니다.

인위적인 연출 없이 자연상태에서 독창적인 꽃 사진을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진에는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다른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톤·밝기·콘트라스트·피사계심도·셔터타임·렌즈 등 기계적인 장치부터 앵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색, 프레이밍 등 사진가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조합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꽃을 보고 느끼는 자기만의 감성입니다. 꽃에 대한 마음의 이미지, 즉 심상을 정리한 다음 이에 맞는 카메라 테크닉을 이용해야 합니다.

필자는 꽃 사진을 찍을 때 “인상파 화가가 되라”고 말합니다. 모네(Claude Monet, 1840~1926)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어떤 대상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전통적인 재현의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을 관찰하며 사실성보다는 느낌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세세한 형태를 포기한 대신 감성의 리얼리티를 추구했습니다.

사진1 꽃양귀비. [사진 주기중]

사진1 꽃양귀비. [사진 주기중]

사진1은 개양귀비 꽃입니다. 해마다 봄이면 울산 태화강 변에 수만 송이의 개양귀비 꽃이 핍니다. 관상용이지만 이름에 걸맞게 강렬하고 고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멀리서 보면 푸른 초원에 빨간색 물감을 뚝뚝 찍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망원렌즈를 이용해 멀리서 찍었습니다.

사진2 모네 양귀비가 있는 들판.

사진2 모네 양귀비가 있는 들판.

연상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모네가 그린 ‘양귀비가 있는 들판(사진2)’입니다. 물감을 뚝뚝 찍는 고흐 특유의 거친 붓질이 양귀비를 꽃을 멋들어지게 재현했습니다. 이를 사진의 문법으로 흉내 낸 것입니다. 꽃 사진은 빛의 방향과 배경에 따라 색도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집니다. 꽃을 찍을 때는 꽃보다 빛과 색을 먼저 봐야 합니다. 세세한 모양보다는 느낌을 담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3 목련.

사진3 목련.

사진3은 산비탈에 핀 목련입니다. 필자는 목련을 찍을 때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비스듬히 내려오는 역광 빛을 자주 이용합니다. 꽃이 흰색이기 때문에 역광을 받으면 반짝거리며 아주 밝게 보입니다. 이때 꽃잎을 기준으로 노출을 맞추고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하면 꽃과 배경의 밝기 차이가 커집니다. 배경이 어둡기 때문에 꽃이 도드라져 보이고, 나뭇가지와 마른 풀 등 어지러운 것들이 어둠에 가려지게 됩니다. 하얀 목련이 허공에 둥둥 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시적인 비유로 접근하는 방법도 중요한 차별화 포인트가 됩니다. 시인들은 어떤 대상을 오래 관찰하고 이를 독창적인 시어로 표현하는 데 뛰어납니다. 어떤 대상을 보고 느끼는 존재론적인 인식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목련을 보고 “팝콘이 터지는 것 같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합창하는 것 같다”고 희망적으로 표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슬프다. 금세 떨어져 사람들 발굽에 짓이겨진다”고 안쓰러워합니다.

사진가도 시적인 감성을 창의적인 사진 문법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꽃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시어 한두 마디로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잘 쓰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감정과 느낌에 충실하면 됩니다. 사진을 찍은 다음에 시를 써 붙여보는 것도 감성훈련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다음은 필자가 사진을 찍을 때 느꼈던 감정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진4 동백 2017. 한 줌 봄 빛/은밀한 열락/동백은 떨어져야 꽃이 된다.

사진4 동백 2017. 한 줌 봄 빛/은밀한 열락/동백은 떨어져야 꽃이 된다.

 사진5 개망초 2015. 꽃잎도/밤이면/눈을 감는다/별이 된다.

사진5 개망초 2015. 꽃잎도/밤이면/눈을 감는다/별이 된다.

사진6 분갑의 꽃 2015. 두껑을 열면/엄마 냄새가 나는/분갑의 꽃/노스탤지어의 향/엄마는 ‘꽃가라’를 좋아했지.

사진6 분갑의 꽃 2015. 두껑을 열면/엄마 냄새가 나는/분갑의 꽃/노스탤지어의 향/엄마는 ‘꽃가라’를 좋아했지.

 사진7 낙화 2012. 보도블록 위에 새겨진/꽃잎 점묘화/빛과 바람의 협주곡.

사진7 낙화 2012. 보도블록 위에 새겨진/꽃잎 점묘화/빛과 바람의 협주곡.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사진, 그리고 거짓말, 2018, 아특사〉를 바탕으로 재편집했습니다.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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