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일기예보처럼 내 몸 상태를 예보할 수 있다면?

중앙일보

입력 2020.04.21 07:00

[더,오래] 유재욱의 심야병원(69)

오늘 연주곡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5번 중 사라방드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곡은 2018년 파리 개선문에서 거행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첼리스트 요요마가 비가 내리는 가운데 각국 원수와 내빈 앞에서 연주해서 전쟁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던 곡이다.

예측의학(Predictive medicine)

“내일은 우산을 준비하셔야겠습니다. 내일은 오전 9시부터 비 올 확률이 70%이고, 돌풍도 예고되어 있으니 옷차림을 단단히 하셔야겠습니다.”

매일 아침 ‘일기예보’시간에 나오는 이야기다. 외국 여행 계획을 짤 때 인터넷으로 가고자 하는 여행지를 검색해보면, 그곳의 여행 기간 날씨가 어떤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우산은 챙겨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아볼 수도 있다. 날씨도 이렇게 자세하게 예측이 가능한데, 나의 건강상태는 예측이 불가능한 걸까? 내가 살면서 어떤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안다면 그에 대한 대비도 가능할 텐데….

이미 선진국에서는 나의 ‘건강상태예보’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종합검사를 통해서 나의 현재 상태뿐만 아니라 가족력과 생활습관, 유전적 특성을 모두 종합해서 내가 살면서 어떤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바로 예측의학(Predictive medicine)이다.

이런 종합적인 분석의 신뢰성은 나로 하여금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만약 당신이 의사로부터 체중조절을 권고받았다면 마음은 있지만 생활습관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인공지능 로봇 닥터가 차가운 어투로 냉정하게 “당신이 지금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았을 때 앞으로 5년 후인 45세에 고혈압과 당뇨병이 발생할 확률이 75%입니다. 그리고 65세 이전에 암에 걸릴 확률이 20%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금연하고 운동을 꾸준히 해서 체중을 조절한다면 그 확률은 20%와 3%로 줄어듭니다”라고 한다면 누구라도 당장 금연을 하고, 당장 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개인 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

병원에서 나의 현재 상태와 가족력, 생활습관, 유전적 특성을 모두 종합해서 내가 살면서 어떤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예측의학(Predictive medicine)이다. [사진 pxhere]

병원에서 나의 현재 상태와 가족력, 생활습관, 유전적 특성을 모두 종합해서 내가 살면서 어떤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예측의학(Predictive medicine)이다. [사진 pxhere]

지금까지의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치료방법이 표준화되어있었다. 물론 과학적 통계에 의한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에 따른 치료방법이지만, 모든 사람의 평균치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기에 똑같은 약물을 사용하여도 어떤 사람은 전혀 효과가 없고, 어떤 사람은 너무 과한 효과를 내서 오히려 건강을 상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의사들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 의학의 기술로는 개개인의 특성을 쉽게 알아낼 길이 없었기에 통계적으로 가장 좋은 치료법을 최선의 선택으로 정하고 치료했던 것이다.

유전자분석기술이 앞당긴 예측의학과 개인맞춤의학

유전자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측의학과 개인맞춤의학이 가능한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유전자검사란 개인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내가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 예측하고, 그렇다면 그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유전적인 부분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환경적인 부분과 생활습관을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최선인지를 알아내는 방법이다.

유전자검사를 통해서 개인의 맞춤 치료를 시도했던 사례가 몇 가지 있는데,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2014년 양쪽 유방과 난소를 모두 절제했다. 그녀는 유방암을 억제하는 유전자(BRCA1)에 돌연변이가 있어서 암을 억제하는 기능이 떨어져 있었다. 같은 유전자 변이를 가진 그녀의 어머니도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56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정밀검사를 해본 결과 그녀가 향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진단을 받았고, 그녀는 수술을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전문가마다 이견이 있겠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을 예측하고 대비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인간 설계도를 이해하려고 연구를 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많은 부분을 규명해 내어서 우리의 건강을 예측해 개인 맞춤 치료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사진 piqsels]

지금도 세계 각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인간 설계도를 이해하려고 연구를 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많은 부분을 규명해 내어서 우리의 건강을 예측해 개인 맞춤 치료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사진 piqsels]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으로 사망하기 전 유전자 서열 분석을 통해 암을 정복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나는 DNA 분석을 통해 암을 치료에 성공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거나, 혹은 이러한 방법을 썼음에도 죽게 된, 거의 마지막 사람 중 한명이 될 것이다 (I'm either going to be one of the first to be able to outrun a cancer like this, or I'm going to be one of the last to die from it)”라는 말을 보면 연구에 상당한 진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의 유전자를 분석했던 연구소는 현재 ‘파운데이션 메디슨’이라는 유전자검사회사로 바뀌어 암 환자의 조직검사 자료를 바탕으로 암과 관련된 유전자 236가지를 분석한다. 그 중 어느 유전자에 이상이 있으면 어떤 치료제를 처방하는 것이 좋은지를 의사에게 권고하고 있다.

의대 학창시절 ‘휴먼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30억쌍이 넘는 염기서열을 언제나 밝혀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불과 십여 년 만인 2003년 인간은 신이 만든 완벽한 ‘인간 설계도’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설계도만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인간은 새로운 벽에 가로막혔다. 정작 설계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젊은 과학자들은 설계도를 이해하려고 연구를 하고 있고, 지금은 그 일부만 밝혀져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많은 부분을 규명해 내어서 우리의 건강을 예측해 개인 맞춤 치료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재활의학과 의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