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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소리에 음주 재니 0%···껌에도 반응한 '비접촉 음주단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삐-."
"차에서 내리세요. 알코올 감지됐습니다.”

20일 오후 10시 경기 광주시 역동삼거리. 경찰이 이날 처음 시범 운영한 ‘비접촉식 알코올 감지기’에서 "삐-" 소리가 나자 음주 단속 중인 경찰관이 운전자 김모(33)씨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김씨는 고개를 저으며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경찰은 김씨를 대기하고 있던 경찰차로 데려갔다. 기존 접촉식 음주측정기를 이용해 다시 음주 여부를 측정했다. 김씨의 알코올 농도는 0.000%로 나왔다.

껌에도 반응…3명 중 1명 검거

20일 오후 경기 광주시 역동삼거리 앞에서 경찰이 비접촉식 음주 감지기를 이용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정진호 기자

20일 오후 경기 광주시 역동삼거리 앞에서 경찰이 비접촉식 음주 감지기를 이용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정진호 기자

감지기를 반응하게 한 건 김씨가 음주단속 당시 씹던 껌이었다. 경찰은 비접촉 감지기가 김씨가 씹던 껌의 알코올 성분에 반응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별생각 없이 껌을 씹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갑자기 센서가 울려 당황했다”며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무섭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19로 접촉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이 취지이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가 이날 오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경찰과 동행한 동안 "삐" 소리가 3번 울렸고, 1명이 검거됐다.

"여기에 대고 불지 마세요"

비접촉 감지기는 내부 센서가 차량 내 알코올 입자의 양을 측정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경찰관이 운전석 창문을 통해 60㎝ 막대기 끝에 달린 감지기를 밀어 넣었을 때 차량 내 알코올 입자량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소리가 울리고 주황색 불이 들어온다. 단속에 나선 경찰은 습관적으로 감지기에 숨을 불려는 운전자들에게 “불지 말라”고 안내했다.

0.018%도 잡아냈다

음주단속을 위해 경찰이 사용하는 비접촉식 음주 감지기. 감지기에 비말 차단용 일회용 커버를 씌워 사용한다. 정진호 기자

음주단속을 위해 경찰이 사용하는 비접촉식 음주 감지기. 감지기에 비말 차단용 일회용 커버를 씌워 사용한다. 정진호 기자

오후 11시 5분쯤에도 감지기가 울렸다. 음주 측정기로 확인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071%로 나타났다. 0.071%는 면허정지에 해당한다. 해당 운전자는 광주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했다. 오후 10시 20분쯤에도 감지기 센서가 반응했다. 해당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18%. 훈방 조치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운전자가 숨을 뱉지 않더라도 감지기가 미세한 양의 알코올을 잡아낸 셈이다.

고민식 광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은 “비접촉 감지기가 잘못 울리더라도 현장에서 기존의 음주 측정기를 사용해 정밀하게 음주운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1주일간 시범 운영하는 동안 센서 민감도를 조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단속 직전에 창문을 열고 왔을 경우 공기 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져 감지기가 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음주 단속 10m 앞에서 경찰관이 차량 창문을 올렸다가 내리도록 했다. 창문을 올리고 5초만 지나도 음주감지기가 운전자의 음주 여부에 반응할 수 있게끔 설계했다.

선별 단속하자 음주사고 24.4% 증가

경찰은 지난 1월 28일부터 길목을 막고 모든 차량 운전자를 확인하는 ‘일제 검문식’ 음주운전 단속을 중단했다. 음주운전 측정기를 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전파 우려 때문이다. 음주가 의심되는 운전자만 대상으로 음주측정을 하는 선별 단속을 시행했다.

일제 검문식 단속을 중단하자 음주운전 사고가 늘고, 사망자도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음주운전 사고는 4101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296건)보다 24.4% 증가했다. 이 기간에 79명이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했다. 지난해보다 5명이 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회식 등 술자리가 줄어들었는데도 음주운전 사고가 늘었다.

1주일 시범 운영해 '미세조정'

경찰은 이날부터 1주일 동안 경기도 광주와 김포 등에서 비접촉 음주단속을 시범 운영한 뒤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알코올 손 세정제에도 감지기의 센서가 반응하는 부분 등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반영해 감지기 민감도를 보완하는 작업을 거칠 예정이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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