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모평 시험지 나눠주라"는 교육청 결정에 교사들 반발, 왜?

중앙일보

입력 2020.04.20 20:56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해 6월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교 학생들이 시험 시작 전 언어 영역 시험지를 받고 있다. 뉴스1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해 6월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교 학생들이 시험 시작 전 언어 영역 시험지를 받고 있다. 뉴스1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올해 첫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가 오는 24일 학교에서 시험지를 배부해 자택에서 치르는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교육청이 학생 등교 시 세부 방역지침이나 미응시 학생에 대한 원격 수업 대책을 학교 자율에 맡겼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데, 학생들을 학교로 부르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일 시교육청이 일선 고교에 보낸 ‘2020학년도 3월 학평 시행방법 변경 안내’ 공문에 따르면 이번 학평은 고1~3학년 전체 학생에게 시험지를 배부한 뒤 자택에서 풀어보는 형태로 진행된다.

공문에 따르면 학교는 당일 오전에 문제지 배부하되 학생 방문시간을 분산하고 발열체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또 드라이브스루·워킹스루 등 대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 문제지를 배부하도록 했다.

교육계에는 정부가 세부적인 방역지침도 세우지 않고 모든 책임을 학교에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전교생이 학교에 모이는 것 자체가 감염 우려가 큰 상황인데, 이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 없이 학교가 알아서 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방역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 3학년 교실 창문에 '합격 기원'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교실의 책걸상은 중간·기말고사, 수능 모의평가 등이 실시되는 시험일처럼 분단별로 일렬로 줄지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서울 용산고등학교 3학년 교실 창문에 '합격 기원'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교실의 책걸상은 중간·기말고사, 수능 모의평가 등이 실시되는 시험일처럼 분단별로 일렬로 줄지어 배치돼 있다. 연합뉴스

고교 교사들도 학생들이 시험지를 받기 위해 등교하는 게 사회적 거리두기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고교 교장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개학을 연기하고 온라인 개학까지 한 마당에 학생들을 학교에 오라고 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며 “학생이 학교에 오려면 대부분 버스로 30~40분 이동해야 한다. 교육청 지침대로 교문 앞 도로를 막고 ‘드라이브 스루’를 설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고교 교사도 “고3 학생 400여명에게 사설 모의고사를 나눠준 적이 있었는데, 시험지 배부에만 4시간 가까이 걸렸다”며 “오전에 시험지를 나눠주고 학생들이 시간표에 맞춰 시험을 볼 수 있게 하라는 교육청 지침은 현장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이 교사는 이어 “이번 모의평가가 전국 단위 채점과 성적 처리를 하지 않아 수능 모의평가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만큼 등교개학 후 시험지를 나눠줘도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 주관 학평은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 연기됐다. 당초 3월 12일 시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과 개학 연기가 이어지며 3월 19일, 4월 2일에 이어 4월 16일, 4월 17일로 한 달 이상 늦춰졌다. 시교육청 모의평가는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에 처음 치러져 ‘대입 가늠자’로 여겨진다.

서울시교육청 주관 학평이 사실상 취소되면서 5월 12일로 미뤄진 경기도교육청 주관하는 시험이 고3이 치르는 첫 전국 단위 모의고사가 됐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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