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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뽑으려 원주서 서울 오는 장애인" 그래서 25년째 치과봉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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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최재영 원장이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장애인 치과진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매월 둘째주 목요일마다 복지관에서 무료진료를 한다. [사진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최재영 원장이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장애인 치과진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매월 둘째주 목요일마다 복지관에서 무료진료를 한다. [사진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

“중증장애인은 스스로 양치질하는 게 쉽지 않아 치아관리가 잘 안 돼요. 뇌성마비 장애인이 치과에 가는 걸 상상해본 적 있으세요? 진료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는 게 불가능해요. 진료 중엔 소리를 지르거나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죠. (의사들이) 진료도 잘 안 해줍니다”

25년째 장애인 치과진료 봉사활동 #“진료 중 소리지르거나 경기일으켜 # 익숙한 환경 제공하는게 중요해요” #일반치과 대부분 장애인진료 꺼려 #의원-권역별센터 협력체계 갖춰야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서 25년째 치과 진료 봉사를 하는 최재영(51) 원장의 말이다. 최 원장이 그동안 이곳에서 만난 장애인 환자만 1400명. 그는 “일반 치과 의원에서 장애인 진료를 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의료사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 입장에선 진료 자체가 쉽지 않고, 수익 내는 것도 어렵다는 부담도 사실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국 치과 의원 2만여곳 중 장애인 진료를 하는 의원은 302곳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또 “전국에 10개 권역별로 대학병원과 연계한 ‘장애인 구강치료센터’가 있지만, 거리가 멀고 예약도 수 개월간 밀려있어 장애인이 치과 진료를 받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재영 원장은 ’장애인 진료봉사에 참여하는 후배들이 줄어들어 걱정“이라며 ’장애인진료가 어렵지만 치과의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뜻있는 후배들이 생업에 부담 없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최재영]

최재영 원장은 ’장애인 진료봉사에 참여하는 후배들이 줄어들어 걱정“이라며 ’장애인진료가 어렵지만 치과의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 뜻있는 후배들이 생업에 부담 없는 범위 내에서 꾸준히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최재영]

 최 원장은 왼쪽 다리 소아마비로, 지체 장애 4급이다. 대학에 다니던 1995년엔 다리 수술을 했다. 1년간 온전히 목발 신세를 지면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절감했다고 한다.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장애인 치과 진료 봉사를 하러 복지관에 간다.

최 원장이 장애인을 위한 봉사자로 나선 건 우연히 듣게 된 수업이 계기가 됐다. 그는 “국내 대학 최초로 개설된 경희대 이긍호 교수의 ‘장애인치과학’ 강의를 듣게 됐다”며 “이 교수님의 권유로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에 따라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지금보다도 장애인 치과 진료시설이 부족해, 이 하나 뽑으려고 강원도 원주에서 온 장애인도 있었다”고 전했다.

최 원장은 졸업 후 개원한 뒤 더 적극적으로 장애인 진료에 나섰다. 스마일재단 장애인치과,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도 무료진료 자원봉사를 한다. 장애인 치과 진료 확대에 힘을 쏟은 공로로 지난해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았다. 최 원장은 “장애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접근성과 익숙함인데, 장애인복지시설에 치과 진료실까지 갖춘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또 "동네 의원에서 장애인 치과 진료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험상 70~80% 정도의 진료는 신체고정용 전신 감싸개인 패디랩(Pediwrap)만 갖추면 충분히 진료할 수 있다”며 “간단한 진료는 장애인복지시설 내 치과 진료실과 일반개원 치과 의원에서 맡고, 특수장비가 필요한 전문치료를 권역별 장애인 구강치료센터가 맡는 체계가 갖춰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으로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최 원장은 석 달째 진료 봉사를 못 하고 있다. 최 원장은 "그동안 진료해 준 환자들이 치아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걱정”이라며 “코로나 19가 얼른 종식돼 환자들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유진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연구위원
roh.you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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