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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합격자 수 결정하는 법무부 보고서 유출에 맞붙은 법조계

중앙일보

입력

2020년도 제9회 변호사시험이 실시된 지난 1월 8일 오전 응시생들이 고사장인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도 제9회 변호사시험이 실시된 지난 1월 8일 오전 응시생들이 고사장인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가 올해 변호사시험 적정 합격자 수를 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합격자 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법무부의 연구 용역 보고서가 일부 유출되면서다. 시장 포화로 변호사 증가에 반대하는 변호사 단체와 학생들이 늘어야 유리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단체가 맞붙고 있다.

법무부가 비공개했는데 심포지엄서 유출된 보고서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9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법무부의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연구 용역' 보고서 일부가 발표자를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법무부는 보고서가 완성된 지난 2월 이후 대한변호사협회와 로스쿨생들의 정보 공개 청구에도 비공개 방침을 고수했다. 오는 24일 올해 합격자 수를 결정하는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와 같은 날 있는 합격자 발표 전에 공개하면 혼란이 더욱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 용역보고서

법무부 용역보고서

심포지엄에서 일부 유출된 보고서의 내용은 주요 국가의 법조인과 변호사 수를 비교해놓은 자료다. 이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인구 1만명당 법조인 수는 미국이 40.85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국(32.09명), 독일(23.11명), 프랑스(11.58명)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5.01명에 불과했다.

법무사 등 법조 유사직역을 고려하지 않고 변호사만 따져봐도 결과는 비슷했다. 유사직역 없이 변호사만 있는 미국은 40.85명으로 같았고, 영국 31.2명, 독일 19.95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명으로 역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진 결과가 나왔다.

합격률(로스쿨 정원 기준)에 따라 2049년 한국의 인구 1만명당 변호사 수를 추정한 자료도 공개됐다. 합격률이 현행대로 75%일 경우 11.1명으로 예측됐다. 85%일 때 12.2명, 95%일 때 14.5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변호사 규모가 선진국과 비교해 월등히 적으니 변호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해외와 단순 비교하면 안 돼" vs "사안의 본질 봐야" 

이를 두고 변협 측이 발끈했다. 제시된 법조인 통계가 틀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필우 변호사(변협 상임정책특별보좌관)는 "비교 대상인 선진국들은 법무사와 세무사, 노무사, 행정사 등 법조 유사직역이 존재하지 않아 변호사가 해당 업무를 도맡아 하기 때문에 한국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며 "국내는 법무사 7000여명, 세무사 1만3000여명, 노무사 5000여명이나 되는데 해당 보고서에서 법조인을 3만1974명(변호사 2만5383명)으로 계산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변협 측은 지난 9일 "심포지엄 발제자들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용역보고서를 유출했다"는 성명을 내고 법무부에 진상조사와 유출자의 형사처벌까지 요구했다.

반대 입장인 로스쿨 측은 변협의 문제 제기가 사안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심포지엄에서 자료를 공개한 오수근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로스쿨 도입 취지대로 선진국 수준의 변호사 규모를 갖춰나가자는 본질적인 논의가 중요하다"며 "유사직역의 문제는 법무부의 연구용역에서도 충분히 고려됐다"고 말했다.

법무부 "24일 합격자 발표 이후 보고서 공개 검토"

법무부 관계자는 "법무부는 해당 보고서가 유출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며 "보고서가 미리 공개되면 변호사시험관리위원들이 합격자 수를 결정하는 데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어서 그 이후 공개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인 변호사시험관리위원회는 오는 24일 해당 보고서 등을 참고해 올해 변호사 시험 합격자 수를 결정한 뒤 합격자를 발표한다. 변호사시험법상 합격자 수는 입학 정원의 75%를 기준으로 변호사 수급 상황을 고려해 최종 합격자 수를 결정해 왔다. 다만 올해는 법무부가 합격자 결정 기준을 바꾸기 위해 연구 용역까지 진행한 만큼 그 기준부터 바뀔 수 있다. 해당 보고서에는 단일안이 아닌 복수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변호사시험 합격 인원은 1500~1600명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다만 매년 재응시자들이 누적되면서 합격률은 떨어지는 추세다. 2012년 1회 시험에서는 87.25%였지만 2018년 7회 시험에서는 49.35%로 낮아졌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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