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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kg 견딘 신발끈으로 기네스북…'소문난 등산광'의 야심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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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1922~2014))은 소문난 등산광이었다. 그래서 경영 철학도 등산에 빗댄 게 많았다. “어떤 산이고 한 걸음 한 걸음 서두리지 않고 가다 보면 반드시 정상에 이르게 된다”( 자서전『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중 )는 좌우명도 이 중 하나다. 이런 그가 산에 오를 때마다 눈여겨보는 점이 있었다. 교련복이나 군복을 입고 불편하게 산에 오르는 산악인들이었다.

1980년대 코오롱스포츠 화보. 사진 코오롱스포츠

1980년대 코오롱스포츠 화보. 사진 코오롱스포츠

이 명예회장은 “등산가를 위한 전문적인 옷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꽂혔다.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한 시절 얘기다. ‘한가한 여가 활동’을 위한 아웃도어 상품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당대엔 파격이었다. 교련복보다 편한, 등산하기 좋은 옷을 만들자는 발상은 1973년 한국의 첫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장수 브랜드] 35. 코오롱스포츠

마나슬루 원정대 후원, 모험의 시작

코오롱은 한국에 나일론 소재를 처음 소개한 기업이다. 코리아(KOREA)와 나일론(NYLON)을 합성한 사명에서도 자부심이 드러난다. 코오롱의 전신, 한국나일론을 통해 53년 나일론을 처음 들여온 인물이 바로 이 명예회장이다. 그는 “국민을 따뜻하게 입히는 것이 애국의 길”이라고 자주 말했다. 그는 곧 코오롱상사를 설립해(1968년) 나일론 제품 생산ㆍ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주요 제품은 나일론, 폴리에스터 양말, 스타킹 등이었다. 코오롱 상사에서 제품 개발을 해본 경험은 코오롱스포츠 출범의 발판이 됐다.

코오롱스포츠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모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80년 히말라야 14좌 중 8번째로 높은 마나슬루 등반 지원을 시작한 이래, 극지 모험의 현장엔 코오롱이 빠지지 않았다. 마나슬루만해도 앞서 71년, 72년, 76년 세 차례나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전문 아웃도어 브랜드의 체계적인 지원이 더해지자 결실을 낼 수 있었다. 덕택에 한국은 일본ㆍ독일(서독)ㆍ스페인ㆍ이란에 이어 마나슬루에 오른 다섯 번째 국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코오롱스포츠가 제작한 의류를 입은 K루트 원정대. 사진 코오롱스포츠

코오롱스포츠가 제작한 의류를 입은 K루트 원정대. 사진 코오롱스포츠

암울했던 80년대, 이어지는 고산 원정 성공 소식은 국민에게 많은 힘이 돼 널리 회자했다. 83년 무명에 가까웠던 허영호 대장이 마나슬루를 무산소 단독으로 성공적으로 정복한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이런 낭보 뒤엔 빠짐없이 코오롱스포츠가 있었다. 83년 세계 최초 등정에 성공한 악우회의 바인타브락(파키스탄) 원정, 86년 한국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 88년 대한산악연맹(대산련)의 에베레스-로체 원정 등을 포함해 무수한 등반을 함께 했다. 또 세종기지, 남북극 기지, 남극 코리아 루트(K 루트) 원정대의 여정에도 의류 스폰서를 하며 함께 하고 있다.

극한 지역 테스트로 얻은 제품력

모험은 코오롱스포츠로써도 자산이 됐다. 극한의 환경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고심해 개발한 상품은 가장 위험한 현장에서 저절로 검증됐고, 코오롱스포츠의 제품 경쟁력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재수 대장이 2010년 8월 가셔브롬 1봉에서 코오롱 로고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옆 사진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함께 나섰다가 2009년 7월 낭가파르밧에서 사고사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 사진 코오롱스포츠

김재수 대장이 2010년 8월 가셔브롬 1봉에서 코오롱 로고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옆 사진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함께 나섰다가 2009년 7월 낭가파르밧에서 사고사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 사진 코오롱스포츠

이 과정에서 코오롱스포츠만의 자랑거리도 많이 생겼다. 널리 알려진 것은 세계에서 가장 질긴 신발끈, ‘헤라클레이스’다. 고강도 원사 ’헤라크론‘을 소재로 한 끈은 600kg의 인장력(물체를 늘어뜨리거나 잡아당기거나 하는 작용으로, 섬유나 실의 인장력을 일정한 힘을 가했을 때 절단 현장이 일어나는 무게)과 강력한 마모력을 지녔다. 튼튼한 만큼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제품이다. 2015년 3차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714kg을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질긴 신발끈‘으로 기네스 공식 인증까지 받았다.

2015년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질긴 신발끈' 기네스월드 레코드 인증식. 사진 코오롱스포츠

2015년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질긴 신발끈' 기네스월드 레코드 인증식. 사진 코오롱스포츠

계속되는 상록수의 변신

50년 가까이 스포츠 브랜드를 이어오면서 풍파도 적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아웃도어 브랜드가 대거 등장해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이 중 하나다. 해외 고가 아웃도어 브랜드의 한국 시장 잠식도 빨랐다. 이 속에서 코오롱스포츠는 분투하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80년대 중반 시작된 코오롱등산학교 수업 현장. 사진 코오롱스포츠

80년대 중반 시작된 코오롱등산학교 수업 현장. 사진 코오롱스포츠

브랜드의 메인 로고는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창업 초기엔 보빈(원단 등을 직조하기 전에 원사를 감아놓은 실패) 모양과 나무 모양의 로고, 영문 에버그린(Evergreen) 로고를 혼용해 썼다. 우리 눈에 익숙한 상록수 로고와 브랜드 아이덴티티(영문 KOLONSPORT)가 자리 잡은 것은 78년 이후의 일이다.

상록수는 코오롱스포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심축이다. 초기엔 소극적으로 사용했지만 이후 과감한 와펜(Wappon·문장) 등의 형태로 활용된다. 코오롱스포츠는 2011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상록수 로고를 활용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스웨트셔츠, 각종 아우터, 스카프 등의 소품에 상록수 로고 플레이가 과감하게 쓰인다.

코오롱스포츠가 밀레니얼을 겨냥해 선보이는 솟솟상회. 상록수 로고를 한글로 형상화해 '솟솟'으로 표현했다. 사진 코오롱스포츠

코오롱스포츠가 밀레니얼을 겨냥해 선보이는 솟솟상회. 상록수 로고를 한글로 형상화해 '솟솟'으로 표현했다. 사진 코오롱스포츠

최근 상록수 로고는 또 한 번의 변신을 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일명 ‘솟솟’ 상록수다. ‘솟아라 솟아라’라는 뜻을 담은 솟솟은 두 개의 상록수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한류를 타고 한글이 세계적으로 트렌디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나온 시도다. 코오롱스포츠는 지난해 하반기 변화를 알리는 콘셉트 스토어 ’솟솟618‘과 ’솟솟상회‘ 등을 열면서 앞으로의 반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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