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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경찰인데요"보이스 피싱에 속지 않는 간단 대응법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28)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바로 주민등록번호다. 주민등록번호에는 태어난 날짜와 성별, 지역 등 여러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개인정보로 취급된다. 그런데 주민등록번호만으로도 출신 지역을 유추할 수 있어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차별 논란이 생겼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오는 10월부터 주민등록번호 중 뒷자리의 지역 번호를 없애고 임의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주민등록번호 부여체계를 개편하는 것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되듯이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우리나라는 상당히 체계적인 사건번호 부여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건번호만 봐도 사건의 종류와 단계 등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평소에는 필요 없지만 알아두면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는 사건번호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검찰 사건은 ‘형제’
우선 검찰 수사단계에 있는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 사건번호는 ‘00 지방검찰청 2020년 형제 000호’로 표시한다. 사건번호를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겠지만 사건을 담당하는 검찰청, 사건접수 연도, 사건접수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보통 검찰 사건번호를 ‘형제 번호’라고 부르는데, 사건 경험이 없는 사람은 형제번호가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묻는 경우도 있다. 형제 번호는 사건마다 하나씩만 있는 것은 아니고 사건 경과 등에 따라 한 사건에 여러 개의 사건번호가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느 검찰청에서 사건을 담당하다가 다른 검찰청으로 사건이 이송된 경우 사건을 받은 검찰청의 형제 번호가 새로 부여된다. 또 사건이 기소중지 또는 참고인중지 되었다가 재개되면 새로운 형제 번호가 부여된다.

형제 번호를 알면 보이스 피싱 피해를 예방하는데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관 또는 검사라고 하며 전화가 왔는데,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형제 번호를 물어보자. 만일 형제 번호가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거나 위와 같은 형식이 아닌 엉뚱한 번호를 말한다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형제 번호를 그럴듯하게 말한다면 우선 전화를 끊은 뒤 검찰청 홈페이지에서 사건을 검색해 보거나 검찰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실제 수사 중인 사건인지 확인해 보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나라는 상당히 체계적인 사건번호 부여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건번호만 봐도 사건의 종류와 단계 등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사진 Pixabay]

우리나라는 상당히 체계적인 사건번호 부여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건번호만 봐도 사건의 종류와 단계 등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사진 Pixabay]

법원 형사 사건은 ‘고, 노, 도’
검사가 사건을 수사한 뒤 죄가 있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기면 이때부터는 법원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법원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심급에 따라 1심은 ‘고’, 2심은 ‘노’, 3심은 ‘도’라는 부호가 부여된다. 그중 1심은 또다시 사건의 성격에 따라 부호가 다른데, ‘고단’은 판사 1명이 재판하는 단독사건, ‘고합’은 판사 3명이 재판하는 합의부 사건을 의미한다. 정식재판이 아닌 약식명령이 청구된 경우에는 ‘고약’이라는 부호가 부여되고, 피고인이 약식명령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한 경우에는 ‘고정’이라는 부호가 새롭게 부여된다.

예를 들어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고단1234호’라는 사건번호가 부여되어 있다면 202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돼 형사 1심 단독 판사가 재판하는 사건이라는 의미다. 만일 ‘고단’이 아닌 ‘고합’이라는 부호가 있다면 합의부에서 재판하는 사건으로서 비교적 중한 사건임을 의미한다. 또 ‘대법원 2020도3455호’라는 사건번호가 있는 사건이라면 이미 1심과 2심을 마치고 3심인 대법원에서 2020년에 접수해 재판 중인 형사사건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법원 민사 사건은 ‘가, 나, 다’
다음으로 민사사건의 경우에도 기본적인 형식은 앞에서 설명한 형사 법원 사건번호와 동일하다. 다만 중간에 들어가는 한글 부호가 다르다.

민사 본안에 대해서는 심급에 따라 ‘가, 나, 다’ 순으로 부호가 부여된다. 그런데 민사 1심의 경우에는 소가(訴價)를 기준으로 3000만원 이하 사건은 소액사건으로 분류되고, 2억원을 초과하는 사건은 합의부에서 사건을 담당한다. 그래서 소액사건의 경우에는 ‘가소’, 1심 단독사건의 경우에는 ‘가단’, 1심 합의부 사건의 경우에는 ‘가합’으로 표시한다.

민사소송법에는 채권자가 쉽고 빠르게 판결을 얻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받을 수 있도록 독촉절차(지급명령이라고도 한다)가 마련되어 있다. 이처럼 지급명령이 신청된 사건의 경우에는 ‘차’라는 부호가, 만일 전자소송으로 지급명령을 신청했다면 ‘차전’이라는 부호가 부여된다. 지급명령에 대해 채무자는 2주 이내에 이의신청할 수 있는데, 채무자가 이의신청하면 지급명령은 효력을 잃고 소가 제기된 것으로 보아 앞서 설명한 기준에 따라 새로운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이 외에도 민사조정사건의 경우 ‘머’라는 사건번호가 부여되는데, 본안사건을 진행하다가 중간에 조정에 회부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지급명령에 대해 이의신청이 있어 소송으로 이행된 경우나 소송 도중 조정절차에 회부된 경우처럼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절차 진행 경과에 따라 서로 다른 사건번호가 부여될 수도 있다.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른 사건번호가 기재된 서류를 받더라도 놀랄 필요가 없다.

다른 형식으로 사건번호가 표기되어 있거나 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착오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속이려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사진 Pixabay]

다른 형식으로 사건번호가 표기되어 있거나 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착오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속이려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사진 Pixabay]

한편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본안 소송 전 단계에서 미리 채무자의 재산 등에 대해 가압류 또는 가처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카’라는 부호가 부여되는데, 형사사건과 비슷하게 합의부 사건의 경우에는 ‘카합’, 단독 판사가 맡는 경우에는 ‘카단’이라는 부호가 사용된다.

부동산 등 경매 사건의 경우에는 ‘타경’, 회생 사건의 경우에는 합의부 사건이나 단독 판사 사건이냐에 따라 ‘회합’ 또는 ‘회단’, 파산 사건의 경우에는 ‘하합’(합의부), ‘하단’(단독)으로 표시된다.

가사 사건은 ‘드, 르, 므’
가사사건의 경우 심급에 따라 ‘드, 르, 므’ 순으로 부호가 부여된다. 민사사건과 마찬가지로 가사 1심의 경우 합의부 사건은 ‘드합’, 단독 판사 사건은 ‘드단’으로 표시된다. 이 외에도 사건의 종류에 따라 부여되는 많은 부호가 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대표적인 사건에 대해서만 살펴보았다.

사건번호는 사건처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기 때문에 자신이 관련된 사건의 사건번호를 기억하거나 메모해 두면 어떤 사항에 대해 문의하거나 서류를 제출할 때 좀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사건 진행 상황을 알 수도 있는데, 특히 법원 사건의 경우 재판 날짜와 장소 등 재판 진행에 관한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으므로 사건번호를 알아두면 매우 편리하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사건번호의 공통점은 한글과 숫자로 이루어져 있고, 알파벳이나 특수문자는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형식으로 사건번호가 표기되어 있거나 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착오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속이려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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