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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팀서 17년, 우승 6번 ‘원클럽 맨’…“질수록 더 강해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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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농구 코트 떠난 양동근

경기도 분당 자택 근처에서 아들 진서군과 함께한 양동근 선수. 신인섭 기자

경기도 분당 자택 근처에서 아들 진서군과 함께한 양동근 선수. 신인섭 기자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에서만 17년을 뛰면서 6개의 우승 반지를 수집한 양동근(39)이 지난 1일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정든 코트를 떠났다. 코로나19로 2019∼20 프로농구가 중도에 끝나는 바람에 은퇴 경기도 못 했지만 양동근은 누구보다 큰 박수와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그는 ‘성실의 아이콘’이자 ‘원 클럽 맨 레전드’였다.

슈팅·드리블·패스 모두 능한 가드 #두 차례 아시안게임서 금·은메달 #중학 땐 키 작아 후보, 고교서 두각 #늦게 떠서 오래 빛난 대기만성형 #농구 잘하려면 불운 참는 게 중요 #체력도 좋지만 공 갖고 더 훈련해야

양동근은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다. 소위 대학농구 빅3인 연세대·고려대·중앙대의 러브콜을 받지 못했지만 한양대에서 공·수를 겸비한 포인트가드로 거듭났고, 2004년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빅3가 아닌 대학 출신 최초로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양동근은 프로 입단부터 은퇴까지 함께 한 유재학 감독의 지도 아래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겸하며 숱한 승리를 일궈냈다. 인터뷰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자택 근처에서 진행했다. 그는 농구 선수가 꿈인 아들 진서(11) 군을 데리고 나왔다.

드리블하는 양동근. [연합뉴스]

드리블하는 양동근. [연합뉴스]

요즘은 뭘 하고 지내시는지요.
“자전거에 푹 빠졌어요. 며칠 전에도 남한강 자전거 전용도로를 다녀왔습니다. 제주도 해안도로 일주도 해 보고 싶어요. 3년 전에 손목뼈가 부러져 쇠심을 박았는데 제거 수술도 해야 하고요. 미국 연수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모비스에서만 17년간 뛰었는데요.
“FA(자유계약선수)가 되면 여기저기서 오라는 데가 있는데 저는 오라는 팀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유재학 감독님과 (함)지훈이가 있으니까 다른 데 갈 생각도 없었지요. 어쨌든 한 팀에서 은퇴까지 하게 됐으니 복 받은 셈이죠.”
함지훈(36) 선수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저는 지훈이보다 농구 잘하는 선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좀 소극적인 것 빼고는 농구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해요. 패스 빼줄 때 빼주고 공격할 때 공격하고, 벤치에서 지시하는 거 다 실행해 주고…. 모비스에서 제 비중이 크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훈이 비중이 가장 큽니다.”

“유재학 감독은 선수 관리 입신의 경지”

유재학 감독은 왜 명장인가요.
“원래 정이 많으신데 일부러 냉정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신 것 같아요. 선수 관리에서는 입신의 경지에 오르신 분입니다. 제가 ‘저 선수는 뭔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순간에 정확하게 감독님이 지적하십니다. 전술은 프로 팀들이 대동소이해요. 그런데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약속된 패턴 플레이를 할 때도 슈터가 슛을 쏘기까지 중간에 다른 선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그려 주시거든요.”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양동근은 은퇴 기자회견에서 “33번을 달고 뛰지 못한 게 농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다”고 했다. 33번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2017년 사망한 크리스 윌리엄스가 모비스에서 달았던 번호다. 2005년부터 3년간 모비스에서 함께 뛴 둘은 형제 못지않은 정을 나눴다. “크리스를 보내고 나서 항상 ‘은퇴하기 전에 한번은 33번을 달고 뛰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리그가 중단돼 버린 거죠. 사고 나고 크리스 친동생이 ‘잘 깨어나서 재활 잘하고 있다’며 영상도 보여줬는데, 그러다 며칠 있다가 갔죠. 그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지금도 많이 그리워요.”

크리스와는 동료 이상이었나 봅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데 너무나 좋은 친구이자 형이자 가족 같은 존재였어요. 맛있는 거 먹으러 항상 같이 다니고, 제 결혼할 땐 귀국을 일주일 미루고 기다렸다가 결혼식 참석하고 갔어요. 제가 프로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제 아들 영어 이름이 크리스인데, 아들 태어나면 크리스로 지으려고 미리 생각했었어요.”
양동근은 어떤 선수였나요.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 라고는 할 수 없어요.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하게 한 거죠. 운이 많이 따랐고, 감독님, 지훈이, 그리고 좋은 외국인 선수들 만난 덕이죠.”
남다른 훈련법이 있었나요.
“그런 것도 없어요. 그런데 저는 대학과 국가대표 때 정말 많이 졌어요. 제가 대표팀 있을 때는 역대 최약체라는 혹평을 받았고, 한양대 시절에는 약팀한테도 많이 졌어요. 그런 경험들을 통해 많이 단련되고 강해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인내심만큼은 백점을 주고 싶다’고 했는데요.
“맞습니다. 중학교 땐 키도 작고 게임도 못 뛰는 후보였어요. 삼선중 뒤에 북악스카이웨이가 있어요. 고교·대학 형들이 와서 운동 가르쳐주면서 ‘야간에 북악스카이웨이 뛸래’ 하면 두말없이 따라 나갔어요. 어차피 게임도 못 뛰니까 체력이나 키우자 싶었고 ‘고등학교까지는 꾹 참고 해 보자’는 마음으로 견뎠죠.”
양동근 선수. [뉴스1]

양동근 선수. [뉴스1]

용산고에서 농구가 많이 늘었죠.
“용산고 양문의 선생님이 ‘중학교 때 쟤 때문에 게임 못 뛰었지? 내일 쟤 학교랑 게임 있으니까 넌 무조건 베스트야’ 하시면서 선발로 넣으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게임 져도 돼.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실력으로 안 되면 싸우고 나오기라도 해’라며 독기와 근성을 불어넣어 주셨어요.”
농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 참는 게 중요합니다. 중·고교 때 잘해서 좋은 대학 갔는데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최고였는데 대학 가니 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게임을 못 뛰는데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죠. 다치고 운도 안 좋고 해서 나가는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스무살 안팎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흔들리고 유혹도 많겠어요. 그걸 참아내는 선수가 여기까지 오는 겁니다.”

‘좋은 지도자란?’ 화두 안고 새로운 길

프로농구 인기가 옛날 같지 않은데요.
“그만큼 볼거리가 많아진 거죠. TV만 켜면 유럽 축구에 NBA 경기가 나옵니다. 대중 눈높이는 높아만 가는데 선수들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한 명 제칠 개인기 가진 선수가 별로 없어요. 지도자들은 학생 때부터 패턴 플레이 가르치고, 분업화시켜서 키 크면 센터 해라 하고, 센터가 드리블 치면 혼내고 합니다. 요즘은 키 2m인 최준용 선수가 가드 하려고 하고, 김선형·이대성 선수처럼 개인기를 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선수도 나옵니다. 하려면 목숨 걸고 연습해서 성공률과 완성도를 높여야겠죠.”
프로농구는 늘 심판 판정이 이슈인데요.
“그분들도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의를 갖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죠. 제발 보상 판정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한번 실수한 걸로 끝내야지 피해를 본 상대에 유리하게 판정을 하면 기준이 흐트러지고 더 나쁜 결과를 만들 수 있거든요.”
어떤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일까요.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누군가에겐 좋은 지도자였지만 또 누군가에겐 자신의 앞날을 막은 최악의 지도자로 기억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정말 좋은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어떤 지도자가 돼야 할까’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어떤 환경에서 농구를 했으면 좋을까요.
“공을 더 많이 만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체력도 중요한데 일단은 공이랑 친해져야죠.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기 위한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공을 갖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도자들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양동근 선수는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힘내’라는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은 젖먹던 힘까지 내서 살아오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힘내” 대신 무슨 말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라고. 어떤 결정을 했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해 봐야 한다고. 그리고 책임질 수 있는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후회 없는 결정을 했어요. 그래서 너무나 속이 시원합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5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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