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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 이낙연, 생환 홍준표…‘쓴맛’ 김부겸·오세훈 아직 기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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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호 04면

총선 성적표 받은 여야 잠룡들

여야 잠룡에게 총선은 비룡으로 승천하기 위한 큰 관문이다. 이곳을 무사히 통과해야 비로소 ‘용좌’를 바라볼 수 있다.

이낙연 당권 꿰차면 유리한 고지 #친문과의 관계 설정 등 변수로 #홍준표 “당 정상화에 큰 역할” #김태호 “정권 창출 중심 설 것” #김두관 PK 대표 주자로 발돋움 #코로나 행보 박원순·이재명 주목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9대 총선 승리의 탄력을 받아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20대 총선 승리를 밑거름 삼아 대세론을 굳히며 이듬해 5월 대선에서 웃을 수 있었다. 여야 잠룡들에게도 이번 4·15 총선은 2022년 대선의 전초전 격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과 미래통합당의 참패로 요약되는 총선 결과에 따라 잠룡들의 대선 가도에도 서운(瑞雲)과 암운(暗雲)이 엇갈리고 있다.

전·현직 총리 경쟁 구도에도 관심

그래픽=이은영·김현동 lee.eunyoung4@joins.com

그래픽=이은영·김현동 lee.eunyoung4@joins.com

21대 총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가 발표된 지 5시간여 후인 지난 15일 오후 11시40분쯤 황교안 통합당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나라가 잘못 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건강한 야당이 꼭 필요합니다. 부디 인내를 가지고 통합당에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2월 27일 정계 입문 43일 만에 제1야당의 선장이 됐던 황 전 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무대 밑으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황 전 대표와 ‘종로 대전’을 치렀던 이낙연 전 총리는 순풍에 돛을 달았다. 종로에서는 황 전 대표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고 당 차원에서도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이낙연 대망론을 대세론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셈이다. 호남 의원들을 비롯해 ‘이낙연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곧 치러질 전당대회도 이 전 총리에겐 기회일 수 있다. 이해찬 대표의 임기는 올해 8월까지다. 이 전 총리가 당권을 거머쥔다면 당내 예비 주자 중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친문과의 관계 설정, 같은 호남 출신으로 또 다른 유력 주자인 정세균 총리와의 경쟁 구도 등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년 전 종로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셨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또다시 쓴맛을 삼켜야 했다. 오 전 시장은 지난해 초 일찌감치 광진을에 터를 잡고 총선을 준비했다. 상대는 이곳에서만 5선 고지에 오른 추미애 민주당 의원. 그런데 추 의원이 올해 1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지역에선 “추 의원에 대한 피로감도 있던 터라 오 전 시장에게 승산이 있었는데 새 얼굴이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투표함을 열어보니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승리였다. 오 전 시장도 47.8%로 선전했지만 승리까지는 한 뼘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오 전 시장의 상품성이 완전히 소멸된 건 아니라는 시각 또한 만만찮다. 총선 결과가 말해주듯 서울 등 수도권은 통합당으로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 만큼 서울시장 출신으로 중도층에도 어필할 수 있는 오 전 시장이 향후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재기의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아직 50대(59세)로 젊은 데다 험지에서 아깝게 졌기 때문에 얼마든지 또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희비 엇갈린 TK·PK 중진들

김두관(左), 오세훈(右)

김두관(左), 오세훈(右)

‘홍준표 낙천설’은 이미 총선 몇 달 전부터 여의도 주변에 나돌았다. 통합당의 한 중진 인사는 “당 지도부가 홍 전 대표의 컴백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홍 전 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남 출마를 준비하던 중 공천에서 탈락하자 대구 수성을 무소속 출마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생환에 성공했다.

황 전 대표와 대척점에 있던 홍 전 대표의 당선은 당내 권력 지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홍 전 대표는 “조속히 당으로 돌아가 당의 정상화에 큰 역할을 하겠다. 보수 우파 이념과 정체성을 바로잡고 2022년 정권을 가져올 수 있도록 다시 시작하겠다”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반면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던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4년 전엔 당시 여권 잠룡 중 한 명이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누르고 민주당 후보로는 31년 만에 대구에서 배지를 달며 일약 대선주자로 발돋움했지만 이번엔 TK(대구·경북) 정서의 두터운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하지만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는 여전하다는 분석이 다수다. 채 교수는 “불리한 줄 알면서도 원칙을 지키며 험지 출마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제2의 노무현’으로 평가받으며 새롭게 부상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2016년 총선 때 김포갑에 깃발을 꽂았던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당 지도부의 경남 양산을 차출 요구에 “김포시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바꿔먹었다. 카운터파트로 홍 전 대표가 유력했지만 공천에서 탈락하면서 나동연 전 양산시장과 맞대결하게 됐고,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접전 끝에 나 전 시장을 힘겹게 따돌렸다.

이번 승리로 김 의원은 일약 민주당의 PK(부산·경남) 대표 주자로 발돋움하게 됐다. 김 의원과 함께 낙동강 벨트 사수의 중책을 맡았던 김영춘(부산진갑) 의원이 아깝게 패하면서 대선 잠룡 중에서는 PK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됐다. 민주당은 선거 구도상 PK 출신 대선주자를 내세웠을 때 가장 유리하다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PK 출신이다. 김두관 의원에게 힘이 실릴 수 있는 구도인 셈이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도 주목할 만한 야권 잠룡 후보로 꼽힌다. 김 전 지사도 공천 탈락 후 우여곡절 끝에 고향인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승리를 거뒀다. 김 전 지사는 당선 후 “빠른 시일 내 당으로 돌아가 새로운 혁신을 요구하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따르고 정권 창출의 중심에 서겠다”며 벌써부터 복당 채비에 나섰다.

재기에 성공한 이광재 전 강원지사를 주목하는 시선도 적잖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 출마할 때 전략과 기획을 맡으며 ‘우광재’로 불렸던 이 전 지사는 이번 승리로 3선 고지에 올랐다. 이 전 지사가 여의도로 돌아오는 건 10년 만이다. 2011년 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지사직을 상실한 그는 지난해 말 특별사면을 받으며 복귀의 길이 열렸다. 이번 승리로 이 전 지사가 강원도와 친문을 발판 삼아 대선 정국에서의 입지를 적극 넓혀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안철수·유승민, 대안부재론·회의론 교차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4선에 성공했지만 ‘나홀로 승리’에 기뻐만 할 수는 없는 처지가 됐다. 심 대표를 제외한 정의당 지역구 출마자 전원이 낙선했기 때문이다. 3년 전 대선에 출마해 ‘진보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던 심 대표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는 평가다. 정당 득표율도 9.7%에 그쳐 꿈에 그리던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도 실패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비례 후보만 내는 틈새 전략으로 제3당을 노렸지만 목표치(20%)에 크게 모자란 6.8% 득표에 그쳤다. 안 대표가 외쳐온 중도실용 정치를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는다는 평가가 많다. 유승민 통합당 의원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총선 불출마로 여의도를 곧 떠나야 하는 데다 최근의 잦은 당적 변경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회의론과, 야권의 ‘대안 부재론’이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이 혼재돼 있는 상태다. 통합당 주변에서는 안 대표와 유 의원이 보수 진영의 대표 주자가 되기 위해 조만간 승부수를 띄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며 주목을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도 빼놓을 수 없는 여권 내 잠룡이다. 여권 관계자는 “코로나 총선으로 불린 이번 선거에서 박 시장과 이 지사가 적극적인 대민 행보를 보인 것도 민주당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며 “유능한 행정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믿음직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면 경쟁력이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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