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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 사냥, 과시용 ‘인증’…디지털 주류 1020 성범죄 늪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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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호 08면

n번방 등 성범죄 저연령화

불법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시킨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박사방’의 공동 운영자 ‘부따’ 강훈이 17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불법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시킨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박사방’의 공동 운영자 ‘부따’ 강훈이 17일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불법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시킨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박사방’의 공동 운영자 강훈(18)의 얼굴이 17일 공개됐다. 이날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선 강훈은 취재진 앞에서 “죄송하다.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죄송하다”는 말만 남긴 채 준비된 차량에 올랐다. 강훈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에 이어 두 번째로 신상이 공개된 핵심 피의자다. 10대 피의자 가운데 신상 정보가 공개된 첫 사례다.

성매매 강요 가해자 평균연령 18세 #집단 성폭행 촬영해 공유하기도 #미성년자 성폭력 2년새 876건 늘어 #청소년 범죄자 강간신화 쉽게 수용 #상대도 원한다는 인지적 왜곡 심해 #10~14세 ‘촉법소년’ 재범률 높아 #성범죄 일벌백계 메시지 강화해야

강훈과 같은 10대 가해자는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핵심 가해자 태평양(대화명) 역시 만16세 고등학생으로 밝혀졌다. 유사 성범죄 사건에서처럼 n번방 다수의 피해자는 10대 여성들이다. 이는 성범죄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인구학적 특성이다. 하지만 지능화된 성범죄를 저지른 핵심 가해자가 10대와 20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차 충격’을 주고 있다.

10~20대의 주요 성범죄는 꾸준히 발생해왔다. 지난해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2018 범죄백서’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성폭력 건수가 2015년 2207건, 2016년 2860건, 2017년 3083건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2019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 및 추세 분석’을 살펴보면 성매매 강요 가해자의 평균 연령은 18.3세, 음란물 제작 가해자는 25.1세다. 2015년 각 범죄의 평균 연령이 34.7세와 35.9세였던 것과 비교하면 4년 사이 가해자 평균 연령이 최고 10세 가까이 줄어든 모습이다. 성매매 알선(20.6세),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촬영(27.3세) 범죄 역시 가해자 평균 연령이 낮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화된 성범죄 수법이 10대를 성범죄의 늪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성범죄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물리적 힘으로 제압하는 유형이 다수였다. 하지만 기술과 온라인 플랫폼 발달로 가해자는 채팅방만으로 피해자들과 접촉이 가능해졌다. 현금보다 추적하기 힘든 ‘가상화폐’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모두 ‘온라인 주류’인 10~20대이기 때문이다. 김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10~20대는 중장연층보다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이 빠르고 디지털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한다”며 “기술이 발달할수록 10~20대가 범죄에 가담하거나 피해를 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특히 그들만의 문화가 성범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청소년 성범죄자와 성인 성범죄자의 차별적 특성(심진섭, 임성문)’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성범죄자의 1인당 평균 피해자는 2.02명이다. 성인인 경우 1.44명이다. 연구팀은 “청소년 성범죄자가 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피해여성이 자신을 유혹했다는 식의 왜곡된 강간신화를 더 쉽게 수용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우울, 분노로 범죄를 저지르는 성인과 달리 청소년 성범죄자는 주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학내 집단 성폭행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조윤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020세대는 온·오프라인에서 사소한 것조차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면서 자기들끼리 소위 ‘서열’을 가리려는 인식이 짙다”며 “집단이 저지르는 성범죄 역시 단순히 피해자를 괴롭히려는 것을 넘어 본인에 대한 ‘인증’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낮은 처벌 수위가 되려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메신저 ‘디스코드’ 내 성 착취물 영상방에서 ‘나는 촉법소년이니까 걸려도 문제가 없다’는 식의 대화 내용이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촉법소년이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 범법행위를 저질렀어도 형사상 책임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다. 지난 7일 검거된 이 방의 핵심 운영자 3명 중 한 명이 만 12세로 실제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보호처분에 그친 저연령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재범률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과 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은 총 4163명이었다. 이 중 1년 이내에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90.4%(3764명)다. 이는 같은 기간 성인의 1년 이내 재범률 67.3%(2746명)보다 높은 수치다. 차소영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북부지부 변호사는 “최근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도 부족한 실정인데,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가해자가 계속 나오면 성범죄는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자칫 다시 흐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온라인 청소년 성범죄를 불우한 환경에 놓인 ‘가출 청소년의 일탈 행위’로만 보는 인식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가 다를 바 없는 10대들에게는 온라인에서 오가는 대화, 거기서 벌어지는 성범죄 모의가 현실로 이어지는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범죄라고 사이버수사대만 나서면 안된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술적인 지원을 맡고 여성가족부·교육부·법무부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 전담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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